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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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묘5리 운남면 신촌 작성
  • 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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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72세대, 인구 108명(남53, 여55) / 2025.12.기준.
자연마을 구성
「신촌」마을은 망운면 소재지에서 운남면으로 가는 4km 지점에서 왼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청계만을 마주보며 바닷가에 형성된 마을이다. 점등, 새몰, 하능골, 부수막골로 이루어졌으나 사람이 사는 곳은 점등을 포함한 새몰과 하능골이다.
지명유래
물이 풍부한 마을이라 하여 「새몰」이라고 부르다가 동네 옆 하늘골과 합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촌(新村)」이라 불리고 있다. 하능골이란 지명은 새몰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란 주민들의 말처럼 하능골, 하롱골, 하능골 등으로 불렸다고 하나 확실한 마을 이름을 알고 있는 주민은 없었다. 《마을유래지》에는 ‘하늘골’로 표기되어 있어 하늘골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하묘리(荷苗里)란 마을 이름이 연을 닮은 마을의 모습을 보고 붙인 것이라 했을 때 여기에 견주어 하능골, 하롱골의 지명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荷)란 연꽃과에 속하는 수생 식물을 나타내며 롱(弄)이 마을이나 동네를 나타내기도 해 하롱(荷弄)골로 불려졌지 않나 여겨진다. 즉 연(蓮)이 자라는 마을이란 의미다. 물론 롱(隴-고개이름, 땅이름을 뜻하기도 함), 롱(壟-언덕을 나타내기도 함)의 한자도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한 주민이 어렸을 때 마을 앞 방죽에 연꽃이 많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 마을에 4개의 큰 고랑이 있어서 그곳에서 뛰어놀았던 일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연이 자라고 있는 언덕이란 의미의 하롱골, 또는 하능골이 원래 이름이 아닌가 한다. 일부 주민은 하능골도 옆 골짜기인 부수막처럼 불을 때는 골짜기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원래 이웃 마을(원하묘)로 입향한 평산신씨(平山申氏) 후손 신현인(申鉉仁)이 1866년에 농사짓기 좋은 곳을 찾아서 이곳에 왔다고 한다.(증언 申錦溶) 신씨를 제외한 강릉유씨, 평산신씨 입향 유래는 알 수 없다.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는 현경면 평산리에서 이주해온 신창서를 입향조로 했으나 족보를 볼 수 없어 확인할 수 없다. 다행히 마을 동쪽에 부수막골 또는 ‘부수동’ 또는 ‘부수메기’라고 불리는 이곳에 신씨들 문중산 묘비에 의해 선조 때 이 마을로 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을유래지》를 보면 원래 신씨들은 현경면 평산리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자손이 늘고 생활이 불편해 수원이 풍부하고 농사에 알맞은 터를 찾아 나선 곳이 원하묘이다. 이곳에 세워진 신창서의 비에는 무덤이 있는 자리를 ‘부흥동’이라 표기하고 있어 부수동과의 관계가 궁금하다. 논에 수렁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신뚜성’ 이란 지명도 있으며 마을 앞에 박병대 언장도 있다.(이번 재조사 시 ‘박병대 언장’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으나 찾을 수 없고 주민들도 존재조차 몰랐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미기재
마을성씨
평창신씨, 강릉유씨 외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1789년의 《호구총수》에도 1912년의 《지방행정명칭일람》에도 1917년의 《조선면리동일람》에도 신촌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행정구역 변경
조선시대에는 영광군 망운면 소속, 1910년 목포부에 편입, 1983년 운남면으로 분리되면서 두곡 둔전 팔학 원하묘 신촌 등 5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현재 이 마을은 농촌마을 치고는 인구가 많은 편이며 주로 밭농사를 하고 있다.
주요시설
미기재
마을변화
이곳에 새롭게 마을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옆 마을인 새몰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건너와 정착하면서 지금의 마을이 이루어졌다. 일부 주민들은 광복 이후 일본인들의 재산 처분 과정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능골에는 일제강점기 때 꽃회사를 운영하는 오사끼라는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 마을 주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주민들 대부분이 그의 소작인이었다. 오사끼는 마을 앞 갯벌을 막아 많은 농경지를 확보하고 주민들에게 소작을 준 것이었다. 마을 중간에 이른바 오사끼방죽이라는 독샘을 만들어 천수답을 상수답으로 만들었다. 광복 이후에는 그의 집 일부가 해체되어 망운중학교의 전신인 청운고등공민학교를 세우는 데 활용되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계장 박정옥), 동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경로당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주변에는 산이 없고 거의 개간된 밭으로 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들판에 벌건 황토와 푸른 배추와 무우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민들은 야산이 개발되기 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던 마을이라고 전한다. 마을 주변을 눈여겨보면 여기저기 깨진 그릇 조각이 널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전에 그랬듯이 점등마을은 옹기를 굽는 동네였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현대화된 그릇 제작 기술이 들어오면서 경쟁력을 잃어 자기 굽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점등마을은 자연 소멸되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부수막골, 부수메기, 하능골, 하롱골, 하능골,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펴낸 《무안군의 문화유적》에 따르면 이 마을에 지석묘군이 두 군데나 있다. 하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7기가 있었으나 밭으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모두 유실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칠성바위, 장사바위라 부르며 7기가 마치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 한 군데는 마을의 남서쪽에 있는 밀양박씨 세장산에 위치하였으나 민묘 확장과 주변 밭경작으로 모두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다. 주변에서 석부편으로 보이는 석기 1점이 수습되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1. 《무안향토문화자료 제1책》(무안군, 1987) 2. 《마을유래지》(무안군, 1987) 3. 《마을역사자료조사》(무안문화원, 2017) 4. 《무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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