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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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석1리 해제면 송계 작성
  • 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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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110세대, 총172명(남96, 여76) / 2024.5.기준.
자연마을 구성
송계마을은 해제면소재지에서 7km 정도 떨어진 함해만을 사이에 두고 함평군 손불면과 마주하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해제면 송석1리인데 송계, 삼봉, 도리포, 저동(楮洞-닥섬, 닥나무가 나는 섬이라는 뜻. 두 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비어있음)을 합하여 송계마을이라 부른다.
지명유래
《마을유래지》에는 마을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에서 ‘송(松)’을, 마을 뒷산의 이름인 성계동(成溪洞, 성적동이라고도 함)에서 ‘계(溪)’를 합하여 송계(松溪)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마을 앞 소나무 숲이 마치 시내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해서 송계라 했다하나 송계라는 지명은 이미 조선시대에 있었던 이름이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 형성은 최초의 입향조가 남양홍씨(홍대훈)로 함평에서 살다가 1480년경 뒷산인 니성산 북쪽으로 이주한 이후에 이곳으로 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1530년경 김해김씨(金璀)가 경기도 양주에서 이곳으로 와 남양홍씨와 함께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나 주민들 중 입향조와 관련된 사항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송계마을은 예로부터 해제면에 전해져 내려오는 8개의 명당 중 하나인 천마시풍(天馬嘶風-마치 천마가 바람을 가르며 우는 모습과 같다)의 혈처가 있다는 마을로 길지(吉地)로 여겨지고 있다. 천마시풍 자리에 묘를 쓰면 은관자와 금관자 서 말이 쏟아질 정도로 후손들이 발복한다는 말이 전해지나 혈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마을성씨
남양홍씨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1914년 송계동 삼봉리 입석리 도리를 병합하여 송계와 입석의 이름을 따 송석리라 하였다. 주변에 도리포구와 닥섬이 있다.
행정구역 변경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함평현 해제면 입석(立石)리, 송계(松溪)리, 도리포(道里浦)리, 저도리가 나오며 1912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해제면 ‘입석리, 삼봉리, 송계동, 도리로 표기되었다. 1917년의 자료에는 해제면 ‘송석리 송계동, 삼봉리, 입석리, 도리”로 나온다. 1987년에는 현재와 같이 해제면 송석리 송계와 입석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에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다는 동중계(洞中契)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계의 출발은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삼봉산의 수문 근처에서 도리포 뒷산까지 연결되는 백사장에 소나무를 심으면서 비롯되었다. 버려져 있다시피 한 땅에 방풍림(防風林)으로 한 두 그루 소나무가 심어지면서 가치 있는 땅으로 변하여 30,000여 평의 마을 공동재산을 형성할 수가 있었다. 주민들은 이 산을 송동산(松洞山)이라 이름 짓고 공동으로 관리하여 내려왔으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주민들에게 싼 이율로 대출해주거나 주민 복지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계원은 현재 40여명으로 원주민들의 후손만이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2023년 무안군에서 매입을 하여 현재는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주요시설
갯벌체험관
마을변화
이 마을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마을 주변에 펼쳐져 있는 천혜의 자원인 갯벌을 이용하여 마을 자체적으로 갯벌생태체험학습관(청정해역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 갯벌생태학습, 머드체험, 어패류잡기체험, 대낛시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도리포와 영광군 향화도로 연결되는 칠산대교가 2012년 착공하여 2019.12.18. 완공되었다. 선착장 현대화 사업 등 관광산업 조성을 위한 주민들이 참여가 활발하고 수협 위판장이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동중계
공동이용시설
수협위판장, 주유소
전통식품/특산품
농어 숭어 김 등 해산물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영광, 함평, 무안 등 3개 군이 마주 보고 있는 도리포는 각종 어족자원의 못자리이다. 평소에는 이곳에서 볼 수 없는 어족들이 새끼 때는 볼 수 있는 것은 여기서 산란하여 큰 바다로 나갔기 때문이다. 고기가 잘 잡힐 때는 숭어, 돔, 농어, 준치 ,낙지, 방어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힐 만큼 황금어장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태원간척 등 각종 간척사업으로 물길을 막는 바람에 고기들이 산란장으로 오지 못해 어족 못자리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해서 주민들은 웬만하면 간척지를 허물거나 현경의 토성목을 잘라서 물길을 틔어주어야 도리포가 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부터 4~50년 전에는 고개미(새우보다 더 부드럽고 기름기가 많은 김치 담는 젓갈)가 많이 잡혀 김장철에는 양동이를 머리에 인 주부들이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준치도 많이 잡혔으나 현재는 잘 잡히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는 마른 새우는 조선시대 진상품이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제 김의 생산지가 이곳이다. 그래서 마을에는 다른 마을에 비해 청년들이 많이 살고 있다. 김을 재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생산과 가공이 분리되면서 예전의 맛있었던 해제 김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제품이 아닌 원료만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원료인 물김은 진도 해남 등지의 물김에 섞기 위해서 잘 팔리고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도리포는 해제의 옛 이름이 도제현으로 나오는데 거기에서 도리포구가 되었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도리포에는 그에 걸맞게 '항상바우'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의 한자어 표기는 환선(還船)바위이기도 하다. 배가 돌아오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리포는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도 나오는 지명이다. 조선시대엔 도리포(道里浦)로 썼으나 일제강점기 때는 도리(道里)로 불렀다. 해방 이후 다시 도리포로 불렀으나, 한자는 도리포(道理浦)로 쓰고 있다. 주민들은 도리포로 한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예전에 이곳 사람들은 ‘도로포’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때와 박정희정권 때 영산강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을 막으려 계획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해서 자조적으로 ‘도로 포구’ 라는 의미의 ‘도로포’라 한 것이다. 이 마을에는 말(馬)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이웃 마을인 입석 마을 뒤에 천마산이 있고 말이 질마(길마-수레를 끌 때 말이나 소 등에 안장같이 얹는 제구)를 벗어버리고 갔다는 질마재와 말방울을 버렸다는 꽃밭굴(꽃바꿀) 등이 있으며 굴레넝쿨과 깔등을 비롯한 여러 곳의 지명이 남아 있다. 주민들은 ‘이 마을에 있는 말은 숫말이고 마을 앞 바다 건너 영광군 안마도에 암말이 있는데, 송계 마을의 형국이 말이 바람을 가르며 암말을 찾아 바다를 건너려고 하는 형상이다’라고 한다. 마을 서북쪽에 갈나무가 많아 갈숲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뒤에는 뒷갱변이라는 들이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들을 밧안들이라 하며 북쪽에 있는 긴 논을 실배미라 한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이 마을에는 다른 마을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매년 5월 8일 마을 공동 행사와 설날과 추석에 갖는 출향민에 대한 마을보고회이다. 즉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밖에 나가 있는 모든 자손들이 돌아와 마을 공동으로 어버이날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또한 설날과 추석날 저녁에는 고향을 떠나 객지에 있는 출향인들을 위하여 ‘위안의 밤’ 행사를 개최하여 1년 동안 진행되었던 마을의 활동상황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방학을 이용해 마을회관 2층에 컴퓨터 학습장을 설치하여 청년회 주관으로 주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체 교육을 실시하여 다른 마을과 비교할 때 앞서가는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교육장에서 형성된 수익금은 마을 앞 백사장에 해당화(1,000주)를 심어 예전 명사십리 해당화의 명성을 살리고 있다. 도리포(道理浦)는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매년 1월 1일에는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유물, 유적
오래 전에 마을 동쪽의 해안가에서 석검 4개를 발견하였으며 이웃 마을인 입석에서는 철기시대로 추정되는 패총지대가 발견되기도 해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주민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도리포구 앞 바다에서 14세기 경 고려청자 639점이 인양되어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무안에서 가장 큰 포구로 예전에는 100여척이 넘는 어선이 드나들었다. 이 마을에는 송파이기연공적비(1978) 후계김공기적비(1984) 함평노씨열효비(1985), 효열부신창표씨현창비(2012), 월계영성정공효행기적비(2008), 해헌영성정공행적비(2010), 월정, 영성정공행적비(2011) 등이 있다.
설화
도리포에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바위가 있다. 바위의 이름이 항상바위 (항상같은 바위로 있다 해서, 항상(港上) 또는 항구에 떠 있는 바위라 해서), 황상바위(皇上-중국황제의 가족에 관련된 전설이 있다 해서), 환생바위(還生-살아서 돌아오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해서), 환선바위(還仙-신선이 돌아온다 해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 바위는 현재의 방파제가 만들어지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물이 빠져야 건널 수 있었다. 또한 얼마 전까지 군 초소가 있어 가려있었으나 현재는 제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이 바위에 망부석과 시비(詩碑)가 설치되어 있다. 그 바위 위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팽나무가 자라고 있어 여러 가지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함평 손불이나 현경 월두마을 주민들이 큰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갈 때 반드시 이 바위에 고사를 지내고 갔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나동주, 박준선(전 무안군청 사무관), 박정배(행시36회, 전 부산지방식약청장), 김형수 전 구리시의회 의장(2022~2023)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송계 마을은 우리 지역에서 유일하게 8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어서 이른바 송계8경이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송계팔경> 화전청풍(花田淸風)-꽃밭굴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적동명월(積洞明月)-성적동에 떠오르는 밝은 달 도포어가(道浦漁歌)-도리포의 어부가 흥겨워 부르는 뱃노래 저도귀범(楮島歸帆)-닥섬을 돌아 포구에 들어오는 고깃배 갈등소송(葛登疎松)-깔등에 듬성듬성 자라는 소나무 삼봉낙조(三峰落照)-앞마을 삼봉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 봉대귀운(烽臺歸雲)-봉대산을 넘어 뭉게뭉게 피어 오는 구름 니성모연(尼城暮煙)-저물녘 니성산을 감싸는 저녁 안개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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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0.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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