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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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월6리 해제면 유투 작성
  • 유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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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35세대, 총70명(남37, 여33) / 2024. 5. 기준.
자연마을 구성
유투정은 유월6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유투 외 신촌, 성촌, 잿등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유투정은 유투로도 불려지는데 지명의 유래가 확실치 않다. 주민들도 유투정의 유래를 확실히 모르고 있는데 《마을유래지》와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두 가지 유래가 전해 온다. 예전에 마을에는 인근에 널리 알려진 샘이 있었다. 용산이나 물암, 오류촌 주민들이 사용했던 샘이다. 샘 옆에는 아름드리가 넘는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샘에 떨어져 있는 버드나무 잎의 모습이 좋아 유투정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마을 서편에 앵소유지라는 묘지가 있는데 꾀꼬리들이 버드나무 가지를 물고 오다 이 마을에 떨어뜨려 버드나무가 무성해졌다 하여 유투정이라 불렀다는 설이 그것이다.
마을형성(입향조)
입향조는 상주주씨, 전주최씨, 김해김씨 들이라고 주민들은 말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성씨는 상주주씨 뿐이었다. 주씨의 입향조는 주영태(자-장순, 호-암은)로 영광 염산에서 살다가 살기 좋은 이 마을로 이주하였다. 주씨 족보에 의해 추정키로는 1800년대 후반에 이 마을로 들어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시기에 전주최씨도 들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유래지》에는 ‘1860년경에 전주이씨 이찬일(李贊一)이 전남 영암에서 거주하다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의식이 풍족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이곳을 보고 마을의 좌우측에 어장과 농사를 같이 하면 300년 이상 안주할 수 있는 곳이라 여겨 정착하였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주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 전주이씨는 살고 있지 않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은 버드나무와 풍수적 지형인 앵소유지(鶯巢柳枝)와 관계가 있다. 앵소유지는 꾀꼬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집을 짓는 형국을 말한다.
마을성씨
이 마을의 세대수는 35호이나 대부분이 다른 성을 사용하고 있을 만큼 혼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유월리(柳月里)는 니성산을 주산으로 각 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해제면소재지로부터 현경면 방면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남으로 현경-해제를 잇는 24번 지방도로 가 지나고 있다. 본래 유월리는 조선시대에는 함평현에 속했다가 조선조 말에는 목포부 해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이후 1914년 오류동, 물암리, 월암리, 어은동을 합하여 무안군 해제면에 편입되었다. 오류와 월암의 이름을 따서 유월리라 불렀으며 지금은 유투마을로 이루어졌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으로 살펴 본 이 마을의 변화는 조선시대 자료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의 자료에 비로소 휴투정(柳投亭)이라 나온다. 1917년엔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 유투정(柳投亭), 1987년엔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 유투로 나온다. 마을회관 앞 표지석에는 유투정(柳投井)이라 표기되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은 가난했던 마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박과 술 폭력 등이 넘쳐났기 때문에 주변에서 이 마을과 사돈 맺기를 지극히 꺼려하기도 했다. 얼마나 도박이 심했던지 신촌 주변의 땅들은 매년 땅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고 주변 야산을 개간하면서 농지를 조성하고 마을 앞바다에서 굴 등을 채취하여 소득을 올리면서 경제에 여유를 갖게 되었다. 원래 주민들이 근면하고 부지런해 해제면에서 유일하게 당난구지와 함께 농협이나 금융기관에 빚이 없는 마을이 되었다. 크게 부유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생활해 주민들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마을의 주 소득원은 양파와 양배추다. 마을에 텃세가 없어 외지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쉽게 적응 할 수 있다. 또한 서로 협조하고 양보하여 다툼이 없으며 주민들의 목소리가 마을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주요시설
나그네식당, 실로암싱크대, 푸른건강원, 아시아마트, 유투슈퍼, 유투부동산.
마을변화
마을 안에는 웃달이, 아랫달이로 나뉘어져 있으며 예전에는 당난구지, 한뿌리 등과 함께 물암리로 통했으나 지금은 행정구역이 나뉘어져 있어 유월6리로 독립되어 있다. 신안 지도읍으로 연결 되는 도로와 무안황토갯벌랜드가 들어서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한 영양으로 여러 시설물과 상가가 들어서 예전보다 인구가 늘어나는 마을이 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은 니성산의 맥을 이은 나바릿등 또는 뒷맷등을 주산으로 마을 앞은 간척으로 형성된 농지와 해제, 도리포, 무안, 지도로 가는 사거리가 놓여있다. 나바릿등이란 지명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는 울창한 산림지대로 40여마지기 넓이의 전주이씨 산이다. 이 산에 묘지를 중심으로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마을의 짜임새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고 한다.
동/식물
황금박쥐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나바릿등, 당당구지, 웃다리, 아랫다리 등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갯벌축제
유물, 유적
미기재
설화
정월보름이면 온 주민들이 나서서 물 지키기에 밤을 새웠다. 특히 겨울이면 모락모락 김이 났던 샘물이 김이 나지 않으면 물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다른 마을에서 물을 타 가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다음 해에는 어린아이들도 나서서 물을 지켰다. 고 한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주정재(경찰총경)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한국전쟁 때 이 마을은 위기의 순간을 맞은 적이 있었다. 좌익들이 마을에 들어와 시비를 걸면서 주민들을 죽이려고 했으나 다행히 국군들이 때맞춰 들어와 위기를 넘겼다. 해서 주변 마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으나 이 마을은 한 사람도 피해가 없었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마을에 유명한 샘이 있었다. 유투정이란 지명도 이 샘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마을 앞 농사를 이 샘물로 다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량이 많았다. 해서 정월보름이면 온 주민들이 나서서 물 지키기에 밤을 새웠다. 특히 겨울이면 모락모락 김이 났던 샘물이 김이 나지 않으면 물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다른 마을에서 물을 타 가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다음 해에는 어린아이들도 나서서 물을 지켰다고 한다.
기타사항
마을주민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에 ‘백달수 지나갔다’라는 말이 있다. 이 사람이 지나가면 온전한 것이 없다 할 정도로 주변이 피해를 입어서 생긴 말이다. 백달수는 힘이 장사로 유명한 마을 깡패였다. 화투와 술 폭력을 일삼는 사람으로서 주민들은 공포에 떨기도 했다.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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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1.03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