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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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암3리 운남면 죽산 작성
  • 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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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43세대, 인구 63명(남34, 여29) / 2025.12.기준.
자연마을 구성
이 마을은 운남면 소재지에서 망운 쪽으로 1km쯤 가다 우회전하여 영해로를 따라 한참 가면 나오는 마을이다. 마을 뒤는 광산김씨 문중의 망제산과 맞은편엔 여산송씨 문중의 당제산이 있다. 그리고 마을 왼쪽에 안산이 있다. 앞에는 간척으로 인한 농지가 조성되어 있어 지형으로 봤을 때 전형적인 소쿠리형의 마을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운남면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의 하나였다’라고 말한다.
지명유래
「죽산」은 동암3리에 속하는 마을로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중촌(中村)」으로 나온다. 《마을유래지》에 중촌은 동암리의 중간에 있다 해서 부르는 이름이라 하나 「동암」이란 지명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형성된 이름이다. 추정컨대 중인(中人)들이 사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주변에 전좌리, 하전좌리 등의 민촌(民村)에 해당하는 마을 지명이 있었던 것이나 나중에 지명을 바꾼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반촌(班村)이었다고 한다. 이후에 나온 지명이 「죽산(竹山)」이다. 원래부터 대나무가 많이 있었던 자리다. 입향조로 여겨지는 광산김씨 김남중의 호가 죽암(竹菴)이었으며,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마을 주변이 개발되기 전에는 마을을 대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듬성듬성 대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광산김씨 김남중(金南重, 1595~미상, 자-士重, 호-竹菴)이다. 공은 광주 판정에서 세거하였으나 명리를 멀리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조용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 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마을유래지》에는 여산송씨 송명길(宋命吉)이 최초의 입향조라 하나 여산송씨 족보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주민들이 말하는 여산송씨의 입향조인 송충명(宋忠命, 1625~1670)은 광산김씨보다 약간 늦게 나주 금안동에서 이 마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광산김씨와 하동정씨가 많이 살고 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소쿠리형
마을성씨
광산김씨, 하동정씨 외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처음 마을이 형성될 때는 동암리의 중간에 있다 하여 「중촌(中村)」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말엽부터 대나무가 많다 해서 「죽산(竹山)」이라 하였다. 한때는 마을 이름을 「금산(錦山)」이라 했다. 마을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일부 주민들이 마을 이름을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행정기관에서 지명 변경이 어렵다고 하여 「죽산」으로 부르고 있다. 지금도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는 「금산」과 「죽산」이 함께 쓰이고 있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상 지명 변화는 1789년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현화면 증촌리, 하전좌리, 전좌리 등으로 나온다. 1912년 자료에는 현화면 동암리, 죽산리, 신기동, 서촌으로 나온다. 1917년에는 망운면 동암리 동암, 죽산, 신기동, 영해촌, 석교촌, 서촌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보현정사」를 창건한 정각스님 출생지이다. 이름난 한문 서당 선생이 있었는데, 운남에서 가장 많은 학동들이 몰렸다 한다. 그중 한 사람이 마을 노래를 만들었다. 공동체 의식을 가진 선각자(지식인)들이 많은 마을로 자부심이 강하다. 고구마, 마늘, 양파 등 밭농사를 주로 한다.
주요시설
야산이 개발되면서 아늑하고 포근한 전경의 마을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다. 마을 앞의 간척은 1960년대 중반에 이루어졌다. 영해로는 지형적 특성상 예전에 야산의 능선에 형성된 오솔길이 도로가 된 것이며 동암리에 속한 마을은 대부분 영해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광산김씨문계
공동이용시설
죽산마을회관, 죽산경로당, 마을창고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마을의 샘은 물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어 주변 마을 특히 신기 마을에서 매년 정월 보름이면 주민들 몰래 물 타러 오기도 했다. ‘물 타러 온다(간다)’는 일종의 민속놀이로서 물을 소중하게 여겼던 마을 샘에 관련된 놀이다. 이 마을의 샘은 암컷이고 신기 마을 샘은 수컷이어서, 이 마을의 물을 퍼다가 신기 마을 샘에다 부으면 물이 잘 나온다 해서 행해진 민속놀이다.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무등골, 들넘어(들너매), 마을 뒤 서당골(서당너매) 옹개 등이 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이 마을은 매년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걸궁을 포함하여 샘굿과 거리굿을 함께 지냈으나 현재는 당산나무 아래서만 제를 모시고 있다. 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있는 당산목인 팽나무는 둘레가 3m 50cm가 될 정도의 크기와 250여 년 수령이며, 전체적으로 수형이 잘 잡혀진 나무다. 1982년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유물, 유적
마을 옆에 있는 망제산(망개산이라고도 함)은 조그만 야산으로 보이지만 예전에는 제 올리는 당이 있었고 비가 안 올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곳에 커다란 바위(고인돌) 1기가 있었는데 기우제의 단으로 사용했던 돌이다. 주민들은 현재도 기우제의 단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올라가서 확인해보니 이미 마을 샘 앞에 다리를 놓으면서 가져다 사용해 버렸다. 주민들은 그 고인돌 위에다 촛불을 켜고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망제산은 높이가 꽤 되어 운남면과 청계면 일대의 측량기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실지로 올라가 보니 청계만과 운남면이 훤히 보인다.
설화
운남에서는 유일하게 발견된 작자 미상의 마을노래가 있는데 가사는 <망제산 북쪽에 두고/남으로 흘러가는 여수의 강물/씩씩하다 죽산학교 배움의 노력/오천년 역사를 가슴에 품고/남으로 흘러가는 여수의 강물/씩씩하다 죽산학교 배움의 노력>이다. 전 노인회장 김영유(81세) 씨의 말에 따르면 목포 보현정사를 창건한 정각스님(김태현)의 형님이신 김길현(전 운남조합장, 이장) 씨가 작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영유 씨는 마을에서 신파극이나 문화 행사를 할 때 주민들이 마을가를 합창했다고 한다. 김용국(1957년생, 조선대 교수) 씨에 따르면 한국전쟁 후 1953년에 죽산마을에 태암 배종홍 선생이 서당을 열고 한문을 가르쳤는데, 학문이 높아 운남에서 학생수가 가장 많았다. 그때 김길현 씨와 한문을 같이 배웠던 김영길(82세로 8년 전 사망) 씨로부터 마을노래는 김길현 씨가 지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하였다. 두 분의 증언으로 미루어 볼 때 죽산마을 노래는 김길현 씨 작사가 확실해 보인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김태현(정각스님, 목포 보현정사 설립자), 배희철(전 무안군청 서기관), 김용국(광주고 졸업, 조선대학교 교수)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이 마을에서도 예외 없이 한국전쟁 때 10여 명 이상이 희생을 당했다. 특히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던 예비검속 때부터 주민 중 말깨나 했던 사람들이 많이 희생당했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이 마을의 마을회관은 무안에서 유일하게 한옥으로 지어진 회관이다. 2007년 한옥 시범마을로 선정되어 군의 지원을 받아서 지은 것인데 색다른 느낌을 준다. 2007년 무안군으로부터 건축문화상을 받았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1. 《마을유래지》(무안군, 1987) 2. 《마을역사자료조사》(무안문화원, 2017) 3. 《무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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