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장」마을은 대박산 서남 방향 기슭과 대박산맥에서 이어진 망매산(望梅山) 기슭에 걸쳐 이루어진 바닷가 마을이다. 대박산과 마을 사이에는 운해로가 놓여있다.
현재와 같이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 바닷물이 들어차면 새우가 누워있는 모양이었다 한다.
지명유래
「항장」마을은 원성내마을에 성이 있어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였으나 이곳을 목장(牧場)으로 이용하면서 목장마을로 불렀으나 이후 목(牧)을 항(項)으로 고쳐 항장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은 원래 말을 기르기 좋은 곳으로 이곳을 포함해 운남면과 망운면 일대에 조선시대 거대한 목장이 있었고, 망운에는 종6품의 감목관을 두어 목장을 관리할 정도로 많은 말과 목장지가 있었다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의 입향조는 광산김씨와 창령성씨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항장」마을은 두 성씨가 모두 아랫마을 「남촌」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갈라져 나온 후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입향시조와 성씨자료》(1996)에 따르면, 남촌의 광산김씨 입향조인 김헌문(金憲文, 1555~1592, 자는 공칙(公則), 호는 지당(智堂))이 영광에서 살다가 성내리로 왔고, 창령성씨 성기인(成己仁, 1584~1645, 호-기은(箕隱))은 광산김씨와 혼인해 나주에 살았는데, 그의 후손인 성몽령(成夢龍, 자-일수(一秀))이 이기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에 근거하면 마을형성은 400여 년 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마을성씨의 한 축을 이루는 진주강씨는 강열희(1781~미상)가 마을로 들어오면서 부터라고 한다.(《마을역사자료조사》, 2017)
풍수지리(마을형국)
이 마을은 대박산의 맥을 이은 망매산(望梅山)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풍수적 지형이 새우형국이다. 이 마을을 포함하여 주변마을을 간척하기 전에는 마을 양옆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마치 새우가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한다. 솔랑끝이라 부르는 곳이 새우의 끝을 말한다.
마을성씨
마을성씨는 광산김씨, 진주강씨, 제주양씨, 창령성씨, 김해김씨 등 복합성씨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오랜 시간 목장마을로 불리던 이 마을은 1900년대 들어 주민들이 목장이란 마을 이름의 의미가 좋지 않다해서, 목(牧)자를 항(項)자로 훈(訓)에 따라 고쳐서 항장마을이 된 것이다. 실제로 《호구총수》(1789)에는 영광군 망운면의 다경진 성외마을로 기재되어 있다. 이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서 비로소 망운면 항장리로 등장한다.
행정구역 변경
조선시대의 「항장」마을은 영광군 망운면 다경진성내(多慶津城內), 다경진성외(多慶津城外)라는 포괄적인 지명으로 불렸다.(《호구총수》, 1789) 1910년 지방관제개정(조선총독부령 제7호)으로 잠시 목포부에 통합되었다가 1914년 면리통폐합(조선통독부령 제111호)정책으로 무안군 망운면(내화촌, 양곡, 연동, 저동, 항장리 일부)으로 구획되었다. 이후 1983년에 망운면에서 운남이 분면(分面)되면서 무안군 운남면 성내리 7개리 중 성내2리로 재편성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작물은 양파, 마을, 배추 등이다.
주요시설
성내보건소, 성내교회, 한국SIG 무안자연학습원
마을변화
현재 마을의 농지는 2차례 둑막이 공사로 형성되었다. 1차는 조선시대이며, 2차는 1930년대 초반 일본인 마츠나가우타로우(송영묘태랑(宋永卯太郞))에 의해서이다. 지금도 노인들은 마츠나가(송영(宋永))농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동계, 부녀회, 노인회 등
공동이용시설
항장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대박산(大朴山)’: 대박산은 운남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84.5m이다.
‘밈섬’: 마을 앞에 있는 섬으로 지명유래는 알 수 없으나 40~50년에는 그곳에 염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업 상태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섬 사이 낮은 지대가 바닷물에 잠겨 두 개의 섬으로 보인다.
‘솔랑끝’: 남촌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돌출된 지형으로 마을 끝 오른쪽 산능성이다. 지도를 들여다보면 굽은 새우 몸의 머리 부분으로 보인다.
‘동낭꼬지(동남곶이, 동남곶)’: 항장마을과 학례마을 사이 바닷가의 돌출된 지형이다. 솔랑끝이 항장마을의 지형인 새우형국의 머리라면 이곳은 꼬리에 해당된다. 곶은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끝부분으로 성내리 특히 항장마을과 학례‧도원‧대박마을에는 곶(꼬지)이 붙는 지명이 여러 곳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각골’은 성내초등학교터 아래 지점으로 골짜기가 각지게 생겼다 해서 부르는 이름이라 하는데 정작 현재 주민들은 모르는 내용이라 한다. 각골에 최근까지 각골샘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진 상태이다. ‘쩍들(쩍도리)’는 혜운사 아래쪽의 들판을 가리킨다. ‘망매들’은 망매산 옆, 원성내 입구 근처의 들판이다. ‘새언안들’은 농장마을 간척지를 가르킨다. ‘각시샘’은 학례마을에 있는 샘의 이름이다. 이 외에도 현재의 마을 주민들은 모르는 ‘챗들’이 알려진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예전에 마을 앞에는 조작나무, 소남, 구수나무 등 세 그루의 당산나무가 있었으나 소나무와 구수나무는 일찍이 고사했고, 최근에 조작나무마저 고사해버렸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얼마 전까지 정월보름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하며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유물, 유적
‘경모재(敬慕齎)’: 광산김씨 재각(齋閣)으로 불리는 재각으로 성내초등학교터(한국SIG 무안자연학습원) 우측, 대박산 기슭에 있다. 《마을역사자료조사》(2017)에 따르면 이곳은 슬라브로 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붉은 벽돌의 기와지붕이 얹어져 있다. 또한 위의 같은 자료에는 이곳과 망매산 아래에서 깨진 그릇과 옹기파편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한다.
‘연화재’: 진주강씨 재각으로 이곳은 운남면 진주강씨 문중이 연화도수로 자랑하는 곳이다. 재각 옆에는 지금도 못이 남아있다. 이 재각은 1981년에 지은 것으로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에 삼문을 갖추고 있다. 연화재 안에 강필주의 교지가 3점 걸려 있다고 하는데, 현재 연화재 옆에 조성된 진주강씨문묘에서 시제를 지내므로 재각은 사용되지 않는다.
‘혜운사(慧雲寺)’: 청화스님이 토굴을 파고 용맹정진했던 자리에 들어선 사찰로 1953년에 창건되었다. 청화대종사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에서는 ‘청화스님의 가르침을 잇는 염불선을 비롯해 간경, 참선, 염불, 주력 등 불교수행프로그램 운영과 혜운사 소유부지 일대를 정비해 역사와 힐링, 문화공간이 함께하는 힐링공간 조성’을 위해 2022년 3월 26일 청하스님 선양사업 착공식을 거행했다. 당시 3만평 규모에 대웅전과 종각, 청하스님 기념관, 명상관, 템플스테이 수련원 등의 건립계획을 세웠으며, 현재 상당규모가 진척되어 있다.
설화
간척지가 형성되어 농지가 마련되었으나 마을 지형이 저수지를 막을 수가 없어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었다 한다. 마을 뒤에 새언안(현재 농장마을)이라 부르는 간척지가 있는데 이곳도 일본인 마쓰나가가 막은 곳으로 그곳의 중바위에는 인신공양의 설화가 전해진다.
대박산에 있는 혜운사 일주문에는 ‘대박산혜운사(旲朴山慧雲寺)’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박산(大朴山)의 ‘큰 大’가 다른 ‘햇빛, 해가 클 旲’로 썼으므로 의아해 했다. 이에 사찰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이 사찰을 세우신 큰스님(청화스님)의 가르침대로만 표기했다’라는 답변만 받았다(《마을역사자료조사, 2017》) 하니 그 연유는 알 길이 없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죽으면 사체를 솔랑 끝에 있는 소나무에 매달아 놓기도 하였다 한다. 지금은 고구마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청화대종사’(1923~2003): 속명은 강호성이며, 운남면 저동마을에서 출생했다.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화상을 은사로 출가해 대흥사와 혜운사, 칠장사 등에서 수행정진하였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승(禪僧)으로 엄정한 계율준수와 염불선을 주장하며 40여 년 동안 눕지 않고 정진하는 장좌불화(長坐不臥)를 실천하였고,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지켰으며, 1985년부터는 3년간 묵언수행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청화스님의 염불선 사상을 연구하는 ‘청화사상연구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추모다례재’도 봉행하고 있다. 운남면 내에서도 청하스님의 행적을 찾을 수 있다. 청운중학원(靑雲中學院, 현재 망운중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비석거리의 의로운 청년의 1인인 ‘국사박채진선생공적비’의 비문(碑文)을 짓는 등 주민들로부터 존경받으며 마을의 발전에 기여했다. 혜운사 앞 도로 맞은편의 진주강씨세장산에 청화스님의 공적비가 있다.
거처/생가/묘소
진주강씨세장산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마을노인회장께 마을자랑거리를 여쭈니 ‘인심좋은 마을’이라한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현재 한국SIG 무안자연학습원 자리는 원래 성내초등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2세 교육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보람으로 주민들이 토지를 희사하고,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울력과 봉사로 마련한 곳이었다. 하지만 학생 수가 감소해 폐교된다는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부득이 이곳을 매각하게 되면 사전에 주민들과 협의하기로 교육장과 약속했다 한다. 그런데 교육청이 이를 어기고 매각해버려 주민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