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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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정3리 해제면 양간3 작성
  • 양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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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131세대, 총215명(남113, 여102) / 2024.5.기준.
자연마을 구성
「양간리」는 해제면소재지로 현경면에서 신안군 지도로 향하는 2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양간이란 지명은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다리를 중심으로 동쪽은 개니(가양이란 마을이름에서 변화, 개웅의 끝이라는 개미의 뜻), 서쪽은 고읍내라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시 마을의 중심인 현재의 동아약국 앞에 나무다리가 있어 양간이라 하였다.
지명유래
해제면은 ‘예전의 큰 고을 터였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고을 터가 어떤 배경과 역사를 지녔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지만 기록상으로는 ‘해제면 일대에 백제시대 때 이미 도제현(道際縣)이라는 현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백제시대부터 현이 설치될 정도로 지리, 역사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되었던 해제가 사료나 유물 부족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 사실 봉대산에서 백제시대 성터로 추정되는 성벽이 발견되었고 봉대산 주변 밭에서 수습되는 백제~통일신라시대 때의 많은 토기편들은 오래된 이 고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은 150여 년 전에 밀양박씨에 의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해제면소재지가 되면서 각 마을에서 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마을에는 새마을금고, 중앙교회, 순복음교회, 해제신협, 해제축협, 보건소, 중앙의원, 우리마트 등을 포함하고 있는 해제면의 중심마을이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이 서래산 기슭에 위치해 노서하적(老鼠下積)의 형국이기 때문이다. 쥐는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데 이 마을은 재물이 모이고 경제적으로 항상 넉넉했기 때문이다. 크게 넘치지도 않았으나 모자라지도 않았다. 주민들은 쥐가 찾아오는 마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서래산은 함풍이씨 문중 산으로 구등 마을의 이재록 목사와 관련이 있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양간리는 해제면소재지로 현경면에서 신안군 지도로 향하는 2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양간이란 지명은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다리를 중심으로 동쪽은 개니(가양이란 마을 이름에서 변화, 개웅의 끝이라는 개미라는 뜻), 서쪽은 고읍내라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시 마을의 중심인 현재의 동아약국 앞에 나무다리가 있어 양간이라 하였다. 주민들은 다리독으로 부르기도 했다.
행정구역 변경
행정적으로 해제면소재지를 중심으로 양간리라 불러왔으나 점차 인구가 많아지면서 분리하게 됐다. 즉 30여 년 전부터 구도로를 중심으로 양간1, 양간2, 양간3, 양간4로 나눴다. 현재는 별도로 양간리라는 법정리를 두지 않고 양간1, 양간2는 양매리로, 양간3 양간4는 신정리에 속하게 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5일, 10일에 열리는 해제시장이 이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한동안은 대단히 성황된 시장이었는데 몇 해 전에 시장 기능이 폐지되어 열리지 않고 있다. 해제시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경 처음 양간2마을인 우체국 밑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다 이 마을의 중앙교회 옆으로 옮긴 후 활성화 되었다가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시장기능이 폐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시장의 형태는 남아있어 현재의 도로변에 개설된 것이다. 금광이 활성화되던 시기에는 면사무소 아래에서 난장을 트기도 했다. 도깨비 시장이 있었다. 오전에 잠깐 열렸다 없어지는 시장인데 장작 등 나무와 시금치, 상추, 등 푸성귀를 파는 시장이었다.
주요시설
이 마을에는 해제면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연 교회가 있다. 중앙교회이다. 이 교회가 신도가 많아 확산이 되면서 가지를 쳤는데 서래산 기슭에 있는 순복음교회가 그것이다. 서래산은 함풍이씨 문중산으로 순복음교회는 예전에 해제면사무소가 있었던 자리이다. 면사무소는 처음 신흥마을 앞에 있었는데 순복음교회 자리로 옮긴 후 현재의 또뚜레미로 이전했다. 순복음교회 옆에는 예전의 면사무소 건물과 숙직실이 그대로 남아있다. 예전에 좋은 샘이 있었다. 현재 옥이네 식당 주변에 있었던 샘인데 양간리 주민 모두가 사용했던 샘이다.
마을변화
지금은 복개되어 다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예전에는 다리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포구였다. 양간의 한자는 양간(兩間, 兩干, 兩澗) 등으로 표기되나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나 다른 자료에는 양간(兩干)으로 표기하고 있다. 양간(兩干)으로 쓴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치진이 있는 해제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군사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양간(兩間)으로 쓴 이유는 개니와 고읍내 사이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간(兩澗)은 봉대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개니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진다는 의미에서 쓰여진 한자이다. 예전에는 개니 고랑에서 양간다리를 거쳐 성포 앞까지 사금채취가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 노인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새마을금고, 중앙교회, 순복음교회, 해제신협, 해제축협, 보건소, 중앙의원, 우리마트 등이 있는 해제면의 중심마을이다.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지금은 복개되어 다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예전에는 다리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포구였다. 양간의 한자는 양간(兩間, 兩干, 또는 兩澗) 등으로 표기되나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나 다른 자료에는 兩干으로 표기하고 있다. 兩干으로 쓴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치진이 있는 해제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군사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兩間으로 쓴 이유는 개니와 고읍내 사이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兩澗은 봉대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개니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진다는 의미에서 쓰여진 한자이다. 예전에는 개니 고랑에서 양간다리를 거쳐 성포 앞까지 사금채취가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금광이 활성화되던 시기에는 면사무소 아래에서 난장을 트기도 했다. 도깨비 시장이 있었다. 오전에 잠깐 열렸다 없어지는 시장인데 장작 등 나무와 시금치 상추 등 푸성귀를 파는 시장이었다. 예전에 좋은 샘이 있었다. 현재 옥이네 식당 주변에 있었던 샘인데 양간리 주민 모두가 사용했던 샘이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양간3 마을은 금촌 서래마을<서래산(鼠來山)-아래에 있는 마을>, 신간마을로도 불린다. 금촌은 광산김씨들이 사는 마을이라고도 하나 해제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주민들은 서래마을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마을의 뒷산인 서래산에는 큰 고총이 있었다. 주민들이 장군무덤으로도 불렀는데 서래산이 개발되면서 무덤을 파게 되었다. 석곽묘로 이뤄진 무덤은 부장품으로 한질 반이나 되는 큰 칼이 나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온 석곽은 하천 다리로 사용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