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학4리인 이 마을은 기룡동과 반탁골로 이루어졌으며, 도성마을에서 1988년에 분리되었다.
지명유래
이 마을의 지명인 기룡동은 마을 앞에 있는 함평모씨의 선산인 마갑산(馬甲山, 또는 마실산)에서 비롯된다. 또한, 무점이라고도 불렀다. 옹기를 구웠던 가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형성(입향조)
입향조는 모찬경(자-시숙,1722-1832)이다. 공은 함평모씨 22세손으로 1700년대 중반에 양매리 외분마을에서 이 마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씨가 해제에 들어온 것은 250여 년 전 13세 모수진공이 함평군 손불면에서 양매리로 입향한 것이 최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갑산의 지세가 앞에 있는 대섬강을 향해 힘차게 건너는 형국이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마을의 이름을 기룡(騎龍)이라 하였다. 대섬강은 금산 간척지가 형성되기 전 마갑산 앞에 있었던 강이다. 현재는 종교시설이 들어선 대섬은 풍수상 말 구시통에 해당한다. 속칭 해제 8명당 중 하나에 해당하는 마을로 추마도강(捶馬渡江) 또는 갈마음수(渴馬飮水)의 지형을 안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성씨
모씨 등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기룡동, 도성동, 장성동, 이방리, 학천동을 합하였으며, 기룡과 학천의 이름을 따서 용학리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용학리는 도성, 장성, 이방, 기룡 등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으로 살펴 본 이 마을의 지명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고 1912년의 자료에 해제면 기룡동(騎龍洞), 1917년의 자료에는 해제면 용학리 기룡동으로 나온다. 이후 1980년의 자료에는 나오지 않다가 근래에 다시 해제면 용학4리 기룡동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마을의 오른쪽에 도리갱변(돌아가는 강변)이라 부르는 곳에 옹기 가마터가 있었다. 주민들은 똑점이라고도 부르는데 현재도 조금만 파면 옹기 파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마을은 농지가 없었다. 금산간척지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다 간척이 되면서 비로소 벼를 심을 수 있는 농지를 갖게 된 것이다.
주요시설
이 마을에는 1926년에 설립된 용학교회가 해제에서 제일 먼저 들어섰다. 용학교회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교회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교회이다. 특히 교회 건물도 한옥으로 지어져 다른 교회와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 마을에는 기독교의 열렬한 신자인 모씨(牟氏)가 살고 있었다. 모씨 여인의 간절한 기도로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서 갯샘 위에 교회당이 들어선 것이다. 그 해가 1926년 3월 1일이었다. 그러다 마을 가운데로 옮겨진 후 현재의 오류리로 옮긴 것이다
마을변화
도리갱변 밑에 갯샘이란 샘이 있었다. 지하수가 개발되기 전에는 마을의 모든 주민이 이 물을 먹었는데 물의 양이 풍부했고 맛이 뛰어났다. 이 샘은 하루에 두 차례만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유는 바다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썰물이었을 때만 사용이 가능했다. 해서 주민 중 집안에 큰일을 준비하는 가정은 하루 종일 물을 길러다 저장해야 했다. 당시 주민들은 각 가정마다 이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독을 가지고 있었다. 광복 이후 마을 건너편에 있는 성포로 금을 채취하러 가던 한 미국인이 이 물맛을 맛보고 약샘이라 하면서 주변에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특히 나병 등 피부병 환자에게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했다. 현재는 간척이 되어서 없어지기도 했지만 지하수가 개발되면서 물길이 끊어져 주민들의 의식 속에만 남아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가 있다.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갑산, 대섬강, 도리강변의 옹기가마터, 갯샘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용학리 곳곳에는 옹기를 구웠던 흔적과 점등 무점이란 지명과 현재 팬션이 있는 자리를 개니라고 부르고 있으며 잔등, 목냉기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마갑산에는 1947년에 건립한 함평모씨의 재각인 모선재가 있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삼문을 갖추고 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마갑산에는 모씨의 중시조인 모호(牟皓,자-서숙, 호-충모재)의 묘가 있다. 공은 평장사가 되어 1293년에 원병(元兵)을 격퇴시킨 일도 있으며 묘지 앞에는 신도비가 서있다.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옆 마을인 유월리 물암 마을에 한뿌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그곳에 농지가 있어 경작을 하였는데 물이 한 곳에 나온다 해서 한뿌리라 불렀다. 하지만 한뿌리마을 사람들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즉 마을 뒤에 소나무로 둘러싸인 잿등이 있는데 그 등의 맥이 서해안을 향해 하나로 쭉 뻗어 있다 해서 한뿌리라 부른다고 했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참고로 마을회관 앞에 있는 표지석에 적혀있는 글을 옮긴다.
〈기룡(騎龍)>
용을 타고 신선이 내려 기룡인가?
용의 기상 서렸기에 기룡인가?
용상 주인 점지되어 기룡인가?
용꿈 꾸고 살아가는 선량들 마을?
표지석 옆에는 마을회관을 짓는데 도움을 준 해암 박영천 선생의 공적비가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