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창은 유월4리에 속한 마을로 어은동(어은동을 빨리 발음하면 언동이 된다)과 창등의 합성어이다. 이 마을은 창등, 어은동, 아래촌(샘바다) 등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지명유래
창등은 일제강점기 때 세곡을 보관했던 창고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창고는 현재 폐교가 된 해제동초등학교 옆에 있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유래가 있다. 조선시대 때 무기 창고가 있어서 창터라 불리다 창등으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마을형성(입향조)
입향조는 1830년경에 밀양 박씨로 참봉을 지냈던 박봉기 공이 자연환경이 좋아 살기 좋은 곳이라 여겨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언창마을의 입향조는 오류촌 마을의 입향조와 같이 전주이씨 이장길(1568-1638, 호-漁隱)이다. 이장길은 경기도 포천 운담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왜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그 전공으로 통훈대부 행전의(全義)현감을 지냈으며 조정에서는 그 공을 높이 사 원훈록(原勳錄)에 기록하였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이 마을은 니성산을 주산으로 하여 능선을 사이에 두고 어은동과 창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어은동은 소쿠리형의 지세로 현경 해제간 도로의 용학교회 앞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만나는 마을이다
마을성씨
금령김씨, 밀양박씨, 파평윤씨 등 복합성씨의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언창은 유월4리에 속한 마을로 어은동(어은동을 빨리 발음하면 언동이 된다)과 창등의 합성어이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으로 마을 이름의 변화를 살펴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과 1917년의 자료에는 어은동이 나온다. 그러나 1987년의 자료에는 어은동이 나오지 않고 창등이 나온다. 이후에 어은동과 창등을 합친 언창이란 지명이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창등은 어은동에서 언덕 너머 북향으로 칠산바다를 바라보고 형성되어 있다. 예전에 어은동은 오류촌 마을과 한 마을이었다. 그러다 인구증가와 행정구역 조정으로 분리가 되면서 독립 마을이 되었다. 양파, 양배추가 주요 특산물이다.
주요시설
주유소, 용학교회,
마을변화
이 마을에는 큰샘이 있었다. 지금은 지하수 개발로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예전에는 수량도 많았고 물맛 좋기로 주변 마을에 널리 알려졌다. 해서 정월 보름이면 다른 마을에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민들이 물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들고 밤을 새기도 했다. 주민들의 표정이 모두 편안해 보인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의 주산은 니성산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에 의해서 금굴이 4개가 있을 정도로 금광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산이다. 또한 금방앗간이라 부르는 금을 추출해내는 곳이 네 군데나 있었다. 해서 어은동을 비롯한 주변 마을이 금 채굴에 나서 상당한 수익을 올려 당시에는 넉넉한 생활로 흥청거린 적이 있었다. 이러한 생활의 여유 때문에 이 마을주부들의 음식솜씨는 해제면에서 알아주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니성광산과 조선인이 경영하는 대해제광산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봉대산 금광과 비교되는 이곳의 금은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순도가 높아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였다. 현재 비어있는 굴에는 붉은박쥐가 서식하고 있다. 예전에 이 산의 정상에서 봉홧불을 올리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동/식물
황금박쥐.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금광이 있었던 옹챗골이 있다. 다랑이 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해제동초교 부근에 합챙이골도 있다. 큰골 물과 작은골 물이 합쳐서 내려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은공골도 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유물, 유적
어은동 마을 입구에 1988년에 세운 해은함평이공효행비가 서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대부분 기독교 신자인 주민들은 서로 화합과 양보를 통해 마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해서 주민들의 목소리가 마을 밖을 벗어난 적이 없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