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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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암11리 일로읍 취락동 작성
  • 취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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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72세대 인구는 130여명이 산다.
자연마을 구성
취락동, 백련빌라 나동, 다복아파트로 구성되었다.
지명유래
월암이란 지명은 우리 지역에 많이 있는데 이 마을은 서쪽 등성이에 있는(현재 일로초등학교 안) 달바위에 의해 월암이라 이름하였다. 문헌으로 지명의 유래를 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후 1912년과 1917년의 자료에 비로소 월암리가 나온다
마을형성(입향조)
월암은 월암4리에 속했다가 13년전 월암11리로 분리되었다. 마을로 200여년 전부터 천안전씨 김해김씨 등 십여 호로 형성되었다. 이후 천안전씨나 김해김씨 등은 다른 마을로 이주하고 현재는 복합성씨의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 최초의 입향조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로면 내화촌(현재는 목포시 삼향동 내화촌)에서 이주한 나주정씨 정순섭(자-봉원. 1892-1981)이다. 공은 일로역 보선사무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이 마을에 정착하여 일가를 이룬 것이다.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도 ‘나주정씨 정봉원이 1886년경 삼향면 하당에서 이주했다. 정씨가 이곳에 이주할 당시 노씨 김씨 임씨 등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사람들은 일로읍에서 제일 좋은 터 두 자리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토지개량조합이 있는 자리이고 또 하나는 이 마을의 보해상사가 있는 자리다. 보해상사 터는 예전에 죽산리에 있었던 면사무소가 옮겨 온 자리이기도 하다. 또한 보해상사 앞은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옹기배가 다녔던 선착장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 영화농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사 주변을 파면 수많은 옹기 파편들이 발견된다. 이 상사 앞에서 무전산까지 둑이 있었는데 지금도 주민들은 둑방길이라 부른다.
마을성씨
현재는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월암리를 포함한 오늘날의 일로읍 소재지는 일본세력이 진출하기 전에는 매우 한적한 농촌 취락지였다. 1915년 지적원도를 보면 역전통 부근에서 대지는 3개 지번밖에 없었고 일로초등학교 부근에는 조그만 마을이 있었을 뿐이다. 일제가 철도역과 면소재지를 월암리에 설치하면서 신흥 중심취락으로서 기능을 갖추기 시작한것이다. 1913년 처음 일로역이 개통될 때의 이름은 삼향역이었다. 당시에는 일로보다는 나주의 영내 삼향의 위상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이후 1924년에 일로역으로개칭한다...
행정구역 변경
13년전 월암4리에서 분리되엇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벼농사가 주업이다. 외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주로 상인이다. 고물상을 주로하는 2호가 있다.
주요시설
무안중학교학교가 있다.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 동계가 있다.
공동이용시설
미기재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에는 길 옆의 깡샘을 비롯한 4개의 샘이 있었다. 철뚝넘어 큰샘은 식수와 빨래 등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 겨울철에도 물이 따뜻하여 빨래하기 좋았다. 농사철에 양수를 하여 사용하였고 한해 때 인근 4개 마을이 사용 할 수 있도록 물이 풍부했다. 큰 일이 일어나면 물이 뒤집어진다고 표현하는데 물이 흐려진다고 하고 사고가 났다고 한다. 보해상사 안에 샘이 있고, 타래박질을 해서 먹었다. 잔등위의 샘과 마을회관 앞에도 샘이 있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무안중학교 뒷길을 죽사동길(3호 인구4명) 앞길은 청솔길(13호에 인구30명)이며 주민들과는 전혀 교류가 되지 않는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미기재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마을 주민들은 월암이 일로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 중에 하나라고 자랑한다. 주민들이 텃세가 없어 외지인들도 쉽게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주민들의 화합이 잘 되어 다투는 목소리가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학교, 병원, 버스, 시장도 가까워서 살기가 좋아서 집이 나오면 바로 팔린다고 한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일로읍에서는 마을이 제일 성해 한때는 마을에 두 사람의 무당이 자리 잡기도 했다. 평정에 있었는데 중할매라는 분은 동냥도 다니고 아픈사람을 보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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