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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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룡5리 일로읍 두레미 작성
  • 두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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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미기재
자연마을 구성
두레미 마을은 와우산을 주산으로 하고 인의산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 앞은 넓다랗게 형성된 영화농장의 간척지가 있으며 무안의 대표적인 축제장인 회산백련지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지명유래
첫 번째로 頭南里다. 1987년에 무안군이 발행한 마을유래지에는 ‘마을이 형성될당시 마을 앞에 있는 바닷가에 두루미가 많이 모여 들고 있었는데 그 자리가 남쪽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頭南里라 했다’한다. 이는 마을 주민들이 이야기하다시피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마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름으로 행정관서에서만 쓰여지는 이름이다.   두 번째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두레미’이다. 이것은 마을 형국을 간척지 농장의나락 묶음[斗]들이 이 마을을 향해 오는[來] 쌀[米]들로 본 것이다. 해서 붙여진 ‘두래미’가 ‘두레미’로 바뀌어 졌다는 이름으로 현재 마을 사람들이 쓰고 있는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일로읍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풍족한 마을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두루미’마을이다. 마을이 영산강가에 있어서 학이 즐겨 찾는 위치이다. 마을 어른들의 증언이 요즈음에는 오지 않지만, 해마다 많은 학들이 날아와 와우산이 백산(白山)이 될 정도로 하얗게 앉아 있다 날아갔다고 한다. 또한 마을의 형국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는 듯한 모습이어서 ‘두루미’라고 했다 한다. 네 번째는 마을공동체인 ‘두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형성이 일제강점기 영화농장이 조성되면서 경향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당시주민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양보와 협동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해서 마을 이름도 공동체를 뜻하는 ‘두레’에서 변형되어 두레미라 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마치같은 여건에 있는 의산리의 돈도리 마을이 주민들의 화목을 강조하는 의미의 지명인 것을 생각게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의 형성은 100여년 전 이웃 마을인 회산에서 한 가구 두 가구 이주하면서 형성되었다 한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미기재
마을성씨
미기재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나 1912년 1917년의 자료에는 마을이름이 나오지 않고 1987년에 가서야 두남리로 나온다(참고로 섬이었던 양도의 주산이 두남산이기도 하다).
행정구역 변경
미기재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영산강을 막기 전에는 소뎅이 나루에서 몽탄면 명산까지 마을 앞에 펼쳐진 뻘밭은 맛과 양에서 최고의 수산물을 주민들에게 안겨주었던 곳이다. 이런 수산물은마을 주민들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었으나 영산강 유역의 개발로 막히면서 황금어장을 잃어버렸다.
주요시설
미기재
마을변화
간척지에서의 콩 재배는 풍작을 안겨주었다. 마땅한 농지가 없어 논두렁재배를 통한 콩 수확은 웬만한 밭 작물보다도 많은 소득을 안겨준 것이다. 또한 이를 특성화시키기 위하여 소비자들이 제품의 생산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체험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체험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연근을 비롯한 연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민박도 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엔 캠핑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민박은잘 되지 않는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미기재
공동이용시설
미기재
전통식품/특산품
주민들의 아쉬움을 모아 마을 특산품을 생산하기로 해 흑콩, 연꽃, 연근, 연씨, 연잎 등을 이용한 제품을개발하기도 했다. 즉 2006년도에 테마마을로 지정되어 마을 특산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미기재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마을에는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주산인 와우산을 비롯하여 멍에자리 소머리그리고 용당끝 앞의 구수개 등이 있다. 또한 용당끝에서 돈도리까지의 원둑은 소의코뚜레를 연결하는 줄로 생각했다. 특히 원둑을 막기 위해서 소의 어깨에 해당되는 고씨 문중의 산을 헐어 흙을 파냈는데 소에게 상처를 줬다 해서 고씨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나기도 했다. 남아있는 지명으로 용당끝이 있다. 용의 꼬리로도 알려진 이곳은 와우봉 끝 자락을 돌아오는 모퉁이를 말하는 지명이다. 영화농장은 용당끝과 의산리 돈도리 마을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되었다. 나드리가 있다. 축제장과 마을로 들어오는 삼거리를 말하는데 예전에는 이곳이 개바라지를 하는 등 바다를 오가는 빈번한 길이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이 마을에서는 마을 축제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마을 소득의 최대 수입원인 백련축제가 열리기 전 날이나 일정한 날 등을 택해 마을의 단합과 발전 그리고 백련 축제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마을 축제를 계획하기도 했었다
유물, 유적
마을 왼쪽에는 장흥 고씨들의 제각인 ‘장영재’가 있으며 37세대에 11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마을에서 배출한 인물도 많다. 은퇴한 육군중장이 있었고 의사 등 사회각계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이 많다.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마을 주민들의 단합이 잘 되어 마을 공동의 일에는 한 가구도 빠짐이 없이 모두 참석한다고 한다. 특히 마을이 무안의 대표적 관광지인 백련지 입구에 있는 관계로 조경의 필요성을 느껴 마을 앞 소공원 조성에 대한 의견이 나오자 모두들 공감을 표시하여 공원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가구당 50만원이 넘는 많은 기부금을 출자하여 부지를 매입하고 가꾸어 소공원을 조성하여 마을 공동의 재산으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솔선수범과 화합이 잘 이뤄져 주변마을에서 모두 부러워하고 있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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