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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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산2리 해제면 광천 작성
  • 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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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67세대, 인구수 109명(남 52 여57)
자연마을 구성
광산리(廣山里)는 해제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으로 약 2km가량 진행하여 해제에서 지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원래 광천리와 발산리에서 이름을 따서 부른 광산리에는 현재 발산, 광천, 대척마을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광산2리에 속하는 광천마을은 해제의 진산인 봉대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 때문에 마을이 나뉘어져 있다. 해제면 소제지에서 임치진 방향으로 약 2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땅골, 소라테, 어룩골, 광천 등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지명유래
해제의 진산인 봉대산에는 큰봉대 작은봉대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그중에 제일 넓은 골짜기가 이 마을로 뻗어있다.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을 막아서 농업용수 등으로 쓰기 위한 여러 저수지를 막기 전에는, 그 큰 계곡을 우리말로 ‘너른 잿’ 또는 ‘너루 내’라고 불렀던 것이 한자로 변하면서 ‘광천(廣川)’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형성(입향조)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는 ‘이 마을의 최초 입향 성씨는 서(徐)씨와 석(昔)씨였다고 하지만 흔적이나 자료가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1680년경 충남 천안에서 살던 밀양박씨 박종대(朴宗大)가 벼슬을 지내다 유배당하여 방랑하다가 해제면 신정리를 거쳐 지세가 좋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1740년 이후로는 한양조씨, 김해김씨가 입향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10여 성씨가 모여서 사는 마을에서 밀양박씨의 후손 중 한 분이 7대조 조상까지 제사를 모시고 있어서, 이 마을의 최초 입향 성씨는 밀양박씨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은 봉대산 기슭인 독산을 주산으로, 오른쪽으로는 진구지, 왼쪽으로는 관음골이 있으며, 그 앞에는 동발섬이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형국은 풍수상으로 해제의 8명당 중 하나인 구룡쟁주(九龍爭珠)의 명당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리하여 마을 아래쪽에 거북이와 용이 다투는 형국의 구룡동이라 부르는 지명의 진주강씨 선산에 구룡단(龜龍壇)이 있다. 1920년 진주강씨 다섯 분 선생의 제자들이 마련한 제단으로, 그 옆에는 1984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구룡단기적비’가 있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미기재
행정구역 변경
1789년의 《호구총수》에 나온 기록을 보면 이 마을의 행정구역은 원래 함평현 해제면에 속했으나, 1912년의 자료에서 무안군 해제면 광천리로 변경되었다. 1917년에는 해제면 광천리로 나온다. 1987년의 자료에서 현재대로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에 속한 광천마을로 표기되고 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선사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 임치와 강산 사이의 간척으로 약 85정보의 넓은 들이 있다. 당시에는 이 마을 주변에만 8개의 저수지를 만들 정도로 넓은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었다. 그만큼 전통적으로 농업을 주업으로 해왔으며 지금도 마을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주요시설
미기재
마을변화
예전에 이 마을은 해제 54개 마을 중에서 주변 환경정리나 주민들의 단합에서 가장 앞서가는 마을 중 하나였다고 한다. 현재도 광산리의 여러 마을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주민들이 모여서 사는 이 마을에서는 화합과 단결을 최우선 과업으로 삼고 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동과 참여로 폐비닐, 농약병, 고철 등을 모아서 마을기금으로 형성하여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어르신들 대상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오기도 했다. 매월 2회씩 전 주민들이 나서 마을청소를 하고, 농사철에는 부녀회원들이 공동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들판에서 함께 나누어 먹고 있다. 특히 다른 마을과는 달리 50~60대의 젊은 층들이 많아 마을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공동이용시설
광천마을회관. 광천경로당.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미기재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마을 뒷산인 ‘독산’의 옆으로 물이 잘 나온다는 ‘샘정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으며, 관음골을 부르는 다른 이름인 ‘가는골’, 솔개재, 어리굴, 당골(唐谷), 뱀형국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인 ‘진구지’, 절터고랑, 범바위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원래부터 넓은 들을 가진 농경지여서 노동요를 비롯한 농사와 관련된 놀이가 있었을 터이지만 구체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놀이나 노래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마을 앞에 아름드리의 당산나무가 있어서 이를 대상으로 당산굿과 마을놀이 등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러한 당산목이 사라져서 주민들이 대단히 아쉬워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에서 매년 정월 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2월 1일에는 동계인 마을회의를 열어 마을잔치를 하고 있다.
유물, 유적
이 마을에서는 곳곳에서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한 주민이 독산으로 부르는 마을 뒷산을 개간하다가 돌칼과 돌도끼 등 4~5점을 발굴하여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탐방에 참석한 주민 중 5~6명이 밭을 경작하거나 산을 개간하면서 발견했던 유물이나 석실분묘로 추정되는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였다. 마을에서 수포마을로 넘어가는 도중에 있는 ‘나무다리’라는 곳에서 밭을 경작하는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밭을 소로 갈다 보면 자주 움푹 꺼진 곳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 외에 주민들도 밭을 개간하다 보면 옛 생활도구인 주전자, 그릇, 수저 등이 많이 나온다고 전한다. 그리고 2004년부터 실시한 마을조사에서 ‘구룡단’을 안내했던 진주강씨의 후손이 밭에서 주운 돌칼과 돌도끼는 석질 자체가 특이한 재질이었음을 직접 확인하였다. 현재 ‘땅골길’로 지정된 봉대산 기슭의 ‘땅골’에서는 오래된 토기가 여러 점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5기의 지석묘가 남아있다. 이처럼 이 마을 여러 곳에서 선사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마을 주변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고대문화가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이외에도 샘정골 주변의 노씨 재각 옆 산비탈에도 놓여있는 두 기의 고인돌이 확인되며, 그중 한 개의 고인돌은 특이하게도 여근 바위처럼 보이는 가운데에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숲이 우거져 접근할 수 없었다.
설화
속칭 ‘가는골’이라고 부르는 관음골에 용덕사라는 사찰과 관련한 설화가 전한다. 1965년에 건립된 이 사찰은 선산김씨 문중의 며느리와 관련된 절이다. 젊어서 남편을 여윈 며느리는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했다고 한다. 시묘살이하면서 나타났던 각종 이적(異蹟)으로 절을 세우게 되었다는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지난 마을조사를 통해 이 마을에서 동학의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야기도 채록되었다. 무안 동학군의 연병장이 있었던 석용리 옆에 있는 마을이지만 동학 관련된 흔적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지명 중에 석용리가 보이는 산등성이에 '장군봉'이 있는데, 이는 용동에서 샘정골로 오는 길목에 있는 산등성이로 현재 ‘중군봉'으로도 부르고 있다. 그런데 한 주민의 이야기로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이 봉우리가 옛날에 장군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의 장군들이 반드시 동학의 장수라고 할 수는 없으나, 지리적인 상황과 시대적인 정황을 고려하면 동학의 장수들이 이 봉우리에 모여서 큰 계획(大計)을 세우는 자리가 아니었을까를 추정해본 것이었다.
기록물, 문헌
마을 입구에 1989년에 세운 ‘효열부밀양박씨기행비’가 있다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이 마을에는 진주강씨 문중의 강운영, 강일수, 강민수, 강화경, 강대석 등 5분의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이 있다. 1920년에 마련된 구룡단(龜龍壇)으로 구룡쟁주의 지형을 보이는 구룡동의 진주 강씨 선산에 있다. 그 옆에는 1984년에 세운 ‘구룡단기적비’와 진주강씨 선조들의 비석 20여 기가 세워져 있다. 구룡단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진주 강씨들의 제각인 경의재가 있다. 이곳에서는 진주강씨로 해제면에 최초로 입향한 강안국 선생을 모시고 있다.
거처/생가/묘소
마을 앞에 동발섬이 있는데, 그 섬의 정상에는 파평윤씨(윤성민 전 국방장관 집안)의 묘가 있다.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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