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동이란 지명은 건지봉에서 등잔걸이를 지나 계서등으로 뻗어 내린 맥이 닭의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또한 만복동은 마을유래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많은 복이 깃들어 번창하고 생기를 잃지 않는 마을’이 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계룡동은 몽탄초교 주변이며 만복동은 대부분 면사무소 뒤 피난민촌이 해당된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이 형성된 것은 150여년 전(기존 조사 기준)으로 보이며 입향조는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창녕조씨이다. 조봉한 일가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와 오랫동안 이 마을에 거주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지금은 조씨들이 살고 있지 않다. 이어 하동정씨와 김해김씨 나주김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 이후 1913년 몽탄역이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마을 형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 뒷산에 등잔걸이[괘등-풍수에서 대체로 좋은 터로 본다]라는 지명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터가 있었던 자리로 주변이 모두 나주김씨 문중산이다. 등잔걸이라는 지명이 등잔 밑은 어둡다는 뜻도 가지고 있어 한때는 산 밑의 주민들이 어렵게 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등잔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의미의 행정기관도 들어서 있어 지명의 연관성을 갖게 한다. 또한 몽탄역 주변은 소쿠리 형으로 큰 부자는 나오지 않지만 그런대로 살만한 터라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초등학교는 병아리터(닭)라 하고 면사무소는 문서터(두꺼비터라고도 한다)라 했으며 파출소 자리는 꾀고리터로 알려졌다.
마을성씨
미기재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문헌으로 살펴 본 지명의 변화는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박곡면 간기곡리 신기리 사천리 죽림리 묵방리 우적리로 나온다. 1917년의 자료에는 박곡면 사천리 죽림동 간기곡 매곡리 월천리 우적동으로 나온다. 1987년의 자료에는 몽탄면 사천리 만복동 사천 봉서동 우적동 등으로 나온다.
행정구역 변경
斜川里는 몽탄면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다. 만복동과 봉서동 앞으로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본래 무안군 박곡면 지역으로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림동, 간기곡리, 매곡리, 월천, 우적동 등을 합하여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만복동, 사내, 봉서동 등으로 이루어졌다.
만복동과 봉서동은 하나의 행정구역이었으나농업인 위주의 봉서동과 상업인 위주의 만복동 간의 주민 구성원 차이로 인해 분구되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구산리에 속하는 유곡 마을과 함께 몽탄면 소재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주도로가 지나고 있다.
몽탄면 소재지의 상권은 발달했었지만, 800번 버스가 개통되면서(20여년전)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의 왕래가 편리해지면서 소재지 상권이 그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이 마을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았다.
한국전쟁 무렵에는 피난민촌이 되어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이 거주하기도 했다.
※기존의 자료에는 3채가 남아 있다고 적혀있고 마을 주민들 말은 6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주요시설
이 마을에 있는 공공기관으로는 몽탄 초등학교, 몽탄면사무소 몽탄역과 파출소 우체국 보건소 등이 있다. 또한 한 마을에 천주교 몽탄성당 그리고 한샘교회와 몽탄중앙교회 등 세 개의 교회가 있으며 향토식당인 안성식당도 있다. 이중 몽탄초등학교는 1929년에 개교하였으며 몽탄면에서는 유일한 초등학교이다. 면사무소는 석진면과 박곡면이 합쳐서 석곡면이 되었으며 1939년에 몽탄면으로 개칭되어 사무소와 함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3년에 개통된 몽탄역은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현재의 驛舍는 2001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몽탄성당은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목포 산정동성당은 호남에서 맨 먼저 세워진 교회였다. 이 성당의 공소가 바로 몽탄 공소였다. 호남의 첫 한국인 사제인 이내수 아오스딩신부가 초대 신부로 몽탄면 우적동에 부임한 것은 1899년 5월이었다. 이곳에서 1년 7개월 간 사목활동을 하다가 선종하고, 이곳에 묻히셨다.
예전 역전교회라고도 불려졌던 한샘교회 자리는 일제 강점기 때는 주재소 자리였다. 한샘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간 중앙교회는 구산리로 나갔다가 현재의 자리로 들어선 것이다. 마을 뒤에는 몽탄 배수지가 있다.
소재지에서는 오래전 몽탄장이 열렸었다.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미기재
공동이용시설
미기재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만복동은 건지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성당 안에는 고인돌로 여겨지는 커다란 바위가 새남정이란 쉼터에 마련되어 있어 이채롭다. 이 바위는 사내 마을에서 예전 방식대로 굴려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 성당 공사를 하면서 부숴버려 사라졌다. (사내마을에서 옮기 신 분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마을 뒤에 나주김씨 제각이 있다. 현판은 없지만 1959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23년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함)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이내수 신부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복합성씨로 이루어진 이 마을은 현안이 불거질 때 단합이 잘 된다. 조그만 이해관계로 다투다가도 마을 전체의 이익에 관계되는 현안이 발생하면 하나같이 단합하여 해결한다. 아직까지는 주민의 목소리가 마을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전쟁 때는 드물게 주민들의 피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