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과 당월촌 삼천동 조치미 마을은 호암산(虎岩山)을 주산으로 하고 있다.
큰동네, 작은동네, 삼천동으로 나뉘며 삼천동은 죽산6리에서 분구했다.
지명유래
죽산 마을은 죽산1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조리형국이다. 안산과 뒷산 주변에 대가 많아 조선시대에는 화살촉을 만드는 마을이란 의미의 ‘죽고지(竹고지)’라 불렀다.
‘고지’는 순 우리말로 명사인데 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참나무고지’는 활을 만들기 위하여 다듬어 놓은 참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해서 ‘죽고지 마을’ 하면 활을 만들기위하여 대를 다듬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지’는 해안선이나 육지 또는평야지대의 산기슭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지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원래 죽산 마을은 피난지였으며 장목등 아래의 마을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이기도하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장수황씨로 임진왜란 이전부터 살고 있었는데임란으로 폐촌이 된 후에 남양홍씨와 전주최씨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족보등 자료가 없어 언제 누가 들어왔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호암산에 있는 범바위는 남창천의 노루를 바라보며 누워있는 형국이라 한다
마을성씨
전해지는 말로는 당시 최씨가 들어올 때는 이곳에 17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집들이 집이라 할 수도 없는 곳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양세(현재의 세금)를 내지 않기 위해 반듯한 집이 아닌 굽은 나무로 집을 짓고 문도가마니를 올리고 내리는 형태였다고 한다. 현재는 전주이씨 김해김씨 등 여러 성씨가 사는 복합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안산과 뒷산 주변에 대가 많아 조선시대에는 화살촉을 만드는 마을이란 의미의 ‘죽고지(竹고지)’라 불렀다. 그러나 일로면의 초대 면장인 김상면(호-죽헌, 1862-1928)씨가 현재의 이름인 죽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행정구역 변경
미기재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마을이다. 실지로 할미재를 사이에두고 삼천동과 이 마을의 겨울과 여름 기온 차이는 시베리아와 제주도의 차이라고한다. 여름에는 시원해 일로읍의 사람들이 피서를 올 정도라고 한다. 마을 앞에 큰샘이 있다. 물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68 · 69 가뭄 때도 넘쳤던 물이다. 당월촌이나 도장포 등 인근 마을에서 물을 길러 가기도 했다.
마을은 여러 성씨가 사는 복합성씨의 마을이지만 주민들의 목소리가 마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주민들간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협의를 통해서 처리했으며 단합과 양보의 미덕이 주민들 사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전 마을회관을 지을 때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거출해서 건축하였다
“100세 타운”을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실시하여 공동거주와 식사를 하고 있다.
벼농사를 짓고 콩, 참깨, 시금치, 갓, 마늘 등의 밭농사를 짓는다.
주요시설
마을에 공공기관이 많다. 진료소가 있으며 교회가 들어서 있다. 또한 2010년에 일로초등학교로 통합된 죽산분교가 있다.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와 노인회, 청년회가 있으며 동계와 초복에 복달임 행사를 한다.
공동이용시설
마을 앞 큰 쌍샘을 하나로 합쳐서 만들었다. 한해 때도 150가구가 물을 먹고 살았다. 깨끗하고 나쁜일이 없었다.
“물 지킨다”-보름에 야밤에 물을 떠가서 물을 지키는 것으로 웃샘과 아랫샘은 큰 돌이 둘러서 있어서 빨래터로 좋았다.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미기재
동/식물
죽산 마을에는 세 그루의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이암나무골의 이팝나무, 당월촌에서 넘어오는 고개의 팽나무 그리고 할미재의 괴목나무이다. 이중 이팝나무는 오래 전 태풍에 없어지고 팽나무와 괴목나무가 남아 있다. 주민들은 해년마다 이 괴목나무에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정월 보름에 거리굿을 지내고 마을의 안녕과 한해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지내는데 한참 동안 지내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산제를 지내지 않으면서부터 마을에 변고가 자주 생기자 주민들의 합의로 다시지내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옛날에는 새끼를 꼬아서 줄다리기를 했다. 당산너미라 하여 정월 14일에 금줄을 치고 소원지를 썻다, 웃당산과 아래당산이 있었고 장구를 치고 대나무로 달집을 만들어 달집태우기를 하였다. 1970년대 까지 당산에서 노래자랑도 하였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죽산 마을과 삼천동 마을 사이에는 호암산의 맥을 이은 재가 있는데 주민들은 할미재라 부른다.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지만 예전에는 신작로로 구루마(손수레)길이었다.
남아있는 지명으로 이암나무거리 뒷잔등 자작골 마당바위 살망태 도투마리골 개골 바윗등 도장포마을 뒷산인 중매산 등이 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마을 뒤에는 토기를 구웠던 곳이 있다. 지금도 그 주변에는 옹기와 토기 등이 나온다고 한다.
설화
할미재는 사연이 있다. 죽산 마을에는 자식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날씨가 좋으면 언제나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일로읍으로 이고 가서 팔아 생활비에 보태 썼다. 그렇게 근근히 생활하던 어느날 나무를 머리에 이고 재를 넘으려던 할머니가 넘지 못하고 나무를 안고 길에서 고꾸라져 숨을 가뒀다. 지나가던 길손의 통고로 할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할머니를 재에다 묻고 재의 이름을 할미재라 부르며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넋을 위로했다. 이후 할미재의 당산나무에 제를 올리고 있다. 할미재는 무섭고 높아서 다니기가 어려웠다. 귀신(도깨비)가 나무에서 무엇인가를(흙, 모래) 뿌리고 뭐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려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이 마을은 5-60년대 연날리기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지형적인 조건이 바람을잘 타는 곳이 있어 연날리기에 안성마춤이다. 또한 마을 주변에 연 만들기의 주 재료인 시누대가 많이 있어 너도나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산제때 연날리기, 풍등날리기를 하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다. 어머니들은 소고도 치셨다고 한다.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이 마을에는 1940년에 향교로부터 열부상을 받은 주민이 있다. 주민 김광조씨의 할머니인 나주 임씨로 초대 일로 면장이었던 김상면씨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또한김상면씨가 동학혁명 때 이 지역의 집강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나주김씨 족보에 집강을 역임하고 경세제민으로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執綱은 面 또는 里의 책임자를 나타내기도 하고 동학혁명 때 六任 중 하나의직책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김상면씨는 당월촌에 있는 ‘경성궁혁폐선정불망비’건립의 간사로 나오기도 한다. 이비는 1907년에 세워졌다
거처/생가/묘소
할미재 아래에는 1976년에 세워진 나주나씨 절부비가 있다.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뿐만아니라 후손인 김광조씨의 증언에 따르면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라며 ‘동학난리 때 당신 집에서 농민군들이 회의를 하고 사람을 잡아다가 벌을 주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나주김씨 집성촌인 몽탄면 사창 마을에서는 동학봉기 때 4명의 접주가 관군에게 붙잡혀 죽은 사실과 많은 사람들이 동학에 관여한 흔적이 있기때문에 같은 일가의 사람들끼리 연관이 되지 않았을까 추정되기도 한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양학당은 학교못다니시는 분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켰다.
양학당은 당산에서 오면 첫골목으로 샘도 있고 예전 마을회관 자리이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원래 '고지'는 순 우리말로 명사인데 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참나무고지'는 활을 만들기위하여 다듬어 놓은 참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해서 '죽고지 마을'하면 활을 만들기위하여 대를 다듬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본문의 내용 중 위에 인용한 내용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고지'는 때에 따라 ‘-고지/-구지/-꾸지’로도 불리는데 '-고지' 系 지명은 본래 ‘곶(串,岬)’에서 파생한 변이형태이다. ‘곶+이=고지’의 형태로 분석할 수 있다. ‘곶’은 지세환경으로 볼 때 해안선이나 육지 또는 평야지대의 산기슭이 볼록하게 튀어나온지형을 가리키는데, 해안선이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뜻하는 ‘-기미/-지미/-구미/-금’系 지명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죽산'이 원래 바닷가였던 점에 착안한다면 당연히‘곶’의 의미인 '-고지'계 지명접미사로 보아야 한다.다음은 무안지역에서 나타나는 '-고지'계 지명어이다.◦ 돌고지(운남 남촌), 청룡고지(운남 남촌), 독고지(일로 복룡)◦ 당당구지(해제 유월), 세구지(해제 학송), 뒤구지(몽탄 이산), 대삭구지(운남 성내), 진구지(해제 광산 광천)◦ 언꾸지(운남 내리 언동), 앞꾸지(운남 학례), 뒤꾸지(몽탄 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