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2리에 속하는 태천마을은 청계면소재지에서 서북쪽 무안공항 방면으로 약 5km 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청계만이 펼쳐져 있으며, 뒤로는 도대봉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주산인 도대봉은 원래 고림산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그래서 봉대산으로 부르기도 하며 조선시대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활용했던 산이었다. 그렇듯이 도대봉 서쪽 방향으로 바닷가를 바라보며 자리한 마을이다.
지명유래
무안의《마을유래지》에서는, 태천(台川)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태천은 강정마을의 동편에 위치한 마을로 지형이 별모양 같고 마을 앞에 인천강이 있어 태천이라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천강(仁川江)이란, 1600년대 후반에 강정마을의 입향조인 호은(湖隱) 정덕주(丁德周) 공이 벼슬을 버리고 이 마을로 은거하면서 지은 바다의 이름이다.
또한, 1789년의 《호구총서》에는 태천마을이 일서면 ‘오태천(五台川)’으로 나온다. 여기에서 태천의 ‘태(台)’는 마을의 주산인 봉대산의 ‘대(臺)’와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이칭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마을 앞에는 복룡리 장자산에서 발원한 큰 하천인 복룡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에 태천의 지명유래는 ‘봉대산 아래의 마을로 큰 하천을 안고 있는 마을’로 정의할 수 있겠다.
마을형성(입향조)
예전 마을조사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는 원래 신씨(申氏)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전 괴질이 휩쓸고 간 이후에 신씨들은 모두 나가버리고 현재는 마을에 몇 기의 신씨 묘가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도 당산길이라 부르는 곳에 신씨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나주정씨들이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다. 그리하여 이 마을의 입향조는 정덕용(丁德容, 1644-1705, 자-자용, 호-윤재) 공으로, 압해에서 옮겨와 봉대산 아래 강정과 태천의 중간지역인 ‘봉산’이라는 곳에서 살았으나, 분가하여 형인 정덕주 공은 강정마을로 가고 공은 태천으로 왔다. 공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주경야독을 실천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좋았다고 한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 앞으로는 개꼬리명당이라 일컫는 개(犬) 형상의 전주이씨 문중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앞의 강정로 너머에는 부섬산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공항도로와 석산개발 등으로 차가 많이 다니지만 산림이 우거져 있을 때는 소쿠리 형국의 지형으로 잘 형성된 좋은 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개 형국의 산은 꼬리가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는 복룡천에 닿아있다. 예로부터 짐승의 꼬리 부분은 혈(穴)자리가 있다하여 풍수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이곳에도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까지 주막이 있던 곳이면서, 개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은 지금 공항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이다.
또한, 마을 앞 강정로 너머의 부섬산은 두꺼비 형국의 산이다. 두꺼비가 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해충을 잡아 먹듯이 태천마을을 감싸 안고 있어서 이 지역은 겨울에도 싱그러운 풍경을 자랑하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안온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성씨
혼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마을명칭은 원래 오태천에서 1912년경에 일서면 태천리로 변경했다가 1917년에 청계면 태천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구역 변경
태천마을의 행정구역은 1789년의 《호구총서》에서는 무안군 일서면 지역에 속했으나, 1910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목포부로 옮겨져서 1912년에 일서면 강정리, 태천리로 정리된다. 그 후 1914년에 태천, 개꼬리마을을 합하여 무안군 청계면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예전에는 이 마을이 짐이 펄펄났다는 주민들의 말처럼 부자마을이었다고 한다. 속된 말로, “주변마을에서 쌀을 빌리려 오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 마을들이 더 잘사는 곳이 되었다.”라고 하지만, 이 마을은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예전 조사할 당사에도 90대 이상의 노인들이 세 분이나 있었고, 80대 이상의 노인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하지만 바닷가마을이라선지 물이 매우 부족하였다. 마을에 바위샘, 윗샘, 새샘 등이 있었으나 늘 부족하였다. 또한 샘에서 나오는 물이 간기가 빠지지 않아서 짠 경우도 많아서 식수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장수하는 노인이 많은 것은 가정에 커다란 어려움이 없고 나라에서 주는 의료혜택도 좋았겠지만, 무엇보다도 마을의 자연생태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말을 모은다. 그리고 예전부터 여전히 좋은 농경지에서 무안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무안양파 재배를 통하여 년간 1억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농가가 탄생하기도 했으며, 지난 2023년에는 마을사업으로 꽃마을만들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주요시설
강정제일교회, 마을공동창고(각종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창고)
마을변화
마을 앞에 있는 부섬산은 두꺼비 형국의 산으로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 산이다. 그런데 이 산 기슭에서 진행된 석산개발로 마을이 한동안 몸살을 겪었었다. 또한, 인접한 바다와 갯벌도 환경오염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생태의 온전한 복원과 유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시골마을의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하다. 다행히 마을의 자연풍광이 좋아서 도회지의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개발위원회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노인회관, 쉼터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 뒤편을 받치고 있는 도대봉과 마을 앞의 부섬산 사이에 널찍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복용천이 흘러서 적시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마을에서 도대로 넘어가는 잔등을 ‘국수댕이’라고 하며, 마을 앞에 있는 들을 ‘염밭들’이라고 하는 데 예전에 염전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염밭들 앞에 있는 버선 같은 지형으로 ‘버선배미들’이 있고, 그 주변을 ‘번짓들’이라 한다. ‘씨암’과 ‘안씨암’ 그리고 봉대산에는 ‘마당바위’, ‘여시바위’, ‘병풍바위’, ‘주롱바위’, ‘꽁에바위’ 등이 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늘 물이 부족했던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물과 관련한 여러가지 마을 의례를 진행하였다. 가뭄이면 도대봉에서 기우제를 지녔음은 물론 정월보름에는 전 주민들이 나서서 물을 뜨러다니는 민속행사를 진행하였다. 즉, 물이 나오는 이웃마을인 도대마을로 찾아가서 몰래 물을 길어 오거나 물길을 태천마을 방향으로 돌려놓고 오기도 하였다. 이처럼 물이 귀한 마을끼리 서로 수맥을 자신들의 마을로 돌려놓으려는 마음을 담은 속칭 ‘물싸움놀이’를 하였다. 당시에는 물을 가져오려는 마을사람과 물을 지키려는 마을사람들이 켜든 횃불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회상한다.
또한, 여러 마을을 안고 있는 도대봉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특히 추석 한가위가 되면 인근 마을의 선남선녀들이 각기 좋은 옷을 입고서 도대봉의 보름달빛이 좋은 산에 올라, 서로를 만나 안부를 묻고 놀이를 하는 등 즐거움과 회포를 풀었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유물, 유적
마을의 주산인 고림산은 조선시대 봉화를 올렸던 봉대산이다. 고림산이 일제강점기 때 도대봉으로 불리면서부터 ‘도대봉 봉수’라고도 하였다. 고림산은 신안을 비롯한 목포의 유달산과 광주의 무등산까지 모일 정도로 사방이 트여 있어 주변 관측이 용이한 곳이다. 예로부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며,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들이 봉화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해방 직후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축대와 우물터 등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봉수대를 쌓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자연석만이 도대봉 중턱에 흩어져 있다. 그러함에도 ‘무안 고림산 봉수 유적’은 전국 봉수의 제5호 직봉의 19번째 봉수이며, 고지도 및 고문헌 등에 기록되어 역사성을 지니고 있고, 연대와 토단의 방호벽이 있어 연속유산으로서의 가치성을 인정받아 지난 2023년 11월에 ‘국가지정유산’으로 지정받았다.
또한 마을에는 ‘경주이씨열녀각’이 있다. 열녀각의 주인공인 경주이씨는 23세에 남편 정규몽을 사별하고 세 살짜리 아들을 키우며 주변의 거듭된 권고에도 재가를 하지 않고, 끝내 가난한 시부모를 모시며 어린 아들을 장성하도록 키워내니 주변에서 모두 감동하였다. 이에 아들 행진은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을유년인 1945년에 마을 앞에 열녀각을 세우고 매일 아침 돌보았다고 한다.
설화
마을 앞 강정로 너머에 있는 부섬산은 두꺼비 형국의 산이라고 하는데, 지난 마을조사에서 이에 대하여 ‘우리말 어휘에 따른 동각할매의 깔따구 전설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민들을 대상으로 물어보았으나 그 내용을 아는 이들이 없었다. 대신 주민들은 ‘여시바위’의 여시 곧 여우가 울면 반드시 주민들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전설도 있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