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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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수1리 청계면 신흥동마을 작성
  • 신흥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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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가구수 60세대, 인구수 91명.
자연마을 구성
청수리는 광주-목포간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로, 승달산의 사자바위산(315m)에서 시작한 골짜기가 흘러내린 모양새이다. 여기에서 청수1리 신흥동은 청수동과 신흥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수동은 승달산 기슭에 안겨있는 마을로써 청수저수지를 안고 있으며, 신흥동은 청계1농공단지를 품고 형성되어 있다. 원래 신흥동은 도로 옆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광목간 도로가 나면서 현재의 자리인 뒤쪽 깃대봉 아래로 옮겨졌다.
지명유래
청수리는 승달산의 맑은 물이 흐른다는 의미에서 지워진 지명이며, 여기에 있는 청수동은 숲이 우거지고 물이 맑게 흐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나무와 물 그리고 흙이 좋은 청수리 전체에는 예전에 도자기를 만들던 도요지 터가 곳곳에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무안 유일의 도기소(陶器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울창한 숲에서 좋은 나무가 많이 나와서 무안 관내에서 좋은 집을 지을 때는 대부분 이곳에서 벌목하여 집의 기둥으로 썼다고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청수동에는 처음에 남평문씨가 들어오고 뒤이어 전주최씨, 달성배씨들이 들어와 3성촌(三性村)을 이뤘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마을 주변에는 문씨, 최씨, 배씨의 문중 산들이 각각 있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서 사는 복합성씨의 마을이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신흥동은 깃대봉을 주산으로 하고 뒤에는 청계 제1, 제2 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깃대봉은 옥녀봉이라고도 하는데, 문화류씨와 김해김씨 그리고 나주김씨 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러한 깃대봉 기슭에는 수많은 가마터 흔적이 있어서 주민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분청과 상감청자 등의 도자기 파편들을 발견한다. 마을 앞에도 가마터가 있었으며, 청수천 너머 산척골이라는 곳에도 가마터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깃대봉 아래의 신흥동은 예전부터 경제와 생산의 중심지였으며, 지금은 청계농공단지가 들어서서 산업생산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무안군에서는 이러한 지형의 특성과 역사적 맥락을 살려 청계농공단지 일원의 86만 3000m2 규모의 대규모 <도자복합산업특구지정> 사업을 2028년까지 5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 이는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주로 선조의 묘역을 중심으로 하는 예전의 음택풍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의 양택풍수 입장에서 ‘새로이 일어서는 신흥’의 마을형국을 살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을성씨
복합성씨의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마을명칭이 처음 기록된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이서면 신흥동으로 나오며,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이서면 신흥동, 청수동, 연천리 등이 기록되었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1917년의 자료에는 청계면 청수리 청수동, 신흥동 등으로 나온다. 1987년의 자료에는 현재와 같이 청계면 청수리 신흥동으로 나온다.
행정구역 변경
백제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나주부 무안현 이서방에 속했으나, 1909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무안군 이서면으로 개칭하였다. 1910년에 잠시 목포부 이서면이 되었으나,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일서면(46개리), 이서면(22개리), 삼향면 대치, 외읍면 일부를 합하여 청계면으로 개칭, 무안군 청계면에 편입되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국도1호선인 광주-목포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신흥동과 청수동으로 이루어진 청수1리 마을은 청계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원래 도로 입구에 있던 신흥동마을은 군에서 취락구조개선사업을 통하여 깃대봉 아래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여 새로 조성한 마을이다. 따라서 이 마을은 토박이보다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청수동을 비롯한 기존의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주민들과 농공단지 등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도시민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주요시설
청계농공단지(제1, 2 단지)
마을변화
청계농공단지에 더하여 청계2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여러 산업시설이 새로이 들어오면서, 청수1리에 속한 신흥동마을은 마을 이름처럼 시골마을에서 도시형 산업마을로 급속히 변모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청계-몽탄 간에 승달산을 넘어가는 ‘만남의 길’이 지난 2020년 8월에 개통되어 사통팔달의 요지가 되었다. 따라서 각종 산업시설에 더하여 모텔과 요식업은 물론 도시에서 이주해온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농사를 짓던 선주민들에 더하여 공장과 직장에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외국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새로운 마을을 형성해가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 개발위원회.
공동이용시설
미기재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현재 청계제1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는 외얏골에는 ‘바둑산’이라 부르는 곳에는 바둑돌같이 조그만 돌들이 많이 나와서 주민들이 붙인 지명이다. 여기에서 나왔던 조그만 돌들은 도자기를 구울 때 받침돌로 쓰였는데 주변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이 골짜기에서는 질 좋은 점토가 많이 나와서 이를 파내면서 커다란 골짜기가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그래서 옆 마을인 신흥동 주변 등에도 가마터가 많이 있었던 것을 보면 조선시대까지 커다란 도기소가 있었다. 이는 얼마 전 무안도자산업특구사업을 위해서 진행된 용역조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그리고 이 마을 앞으로는 거대한 석회층의 수맥(水脈)이 지나고 있어 가끔 지반이 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수맥은 무안읍 중사지의 ‘못샘’을 거쳐 화설당샘-농공단지샘-상마정샘-그리고 남성리의 ‘시여샘’으로 연결되는 수맥의 흐름을 갖고 있다. 지금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샘물이 나온다. 또한, 청수동 안 골짜기를 ‘검은들’이라고 부른다. 주민의 말로는 숲이 우거져 낮에도 컴컴해 검은 들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마을조사에서는 이 검은들 골짜기가 ‘용지봉을 주산으로 하고 삼열이등이 있다. 전해오는 말로는 짐승들이 이 등을 벗어나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삼열이등’에 대하여 조사해보았으나 풍수지형을 뜻하는 용어로는 나오지 않았으며, 말라리아의 한 종류인 ‘삼일열 말라리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삼일열 말리리아는 감염된 모기에 물려 발생하며, 약 3일 간격으로 주기적인 발열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위험한 말라리아를 주의하라는 뜻으로 ‘검은들’이라는 지명을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여기 검은들골짜기 안에는 ‘꼬막바위’와 ‘남근바위’가 있어서, 아이를 낳지 못한 부부가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면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꼬막바위 아래에는 오소리굴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사냥하러 오기도 했다고 한다.
동/식물
청수동 마을 입구에는 ‘청수제’로 부르는 저수지가 있는데, 주민들의 말로는 1960년대에 조성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저수지 안에는 마을의 설촌 연대를 알 수 있는 500여 년이 훨씬 넘는 팽나무가 있었다고 전한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지난 마을역사자료조사에서 ‘마을 곳곳에 가마터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청수1리를 칭했듯이, 마을 곳곳에는 가마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깃대봉 기슭의 신흥동은 물론 청계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는 외얏골의 바둑산 골짜기와 청수동 마을의 청수천 너머 산척골과 청수저수지 위의 예전에 중들이 살았던 절골 등에서 가마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무안 유일의 도기소(陶器所)가 있었다고 기록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초하여 문화지표조사를 통해 역사적인 실체를 밝힘은 물론 이를 근거로 ‘무안도자복합산업특구’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최한규(청계면장, 산림조합장)
거처/생가/묘소
청수저수지의 청수동 골짜기에 약 20여만평에 이르는 이천서씨 소유의 산에 ‘서씨묘역’이 있었다. 이는 서상록이라는 제일교포가 임야와 토지를 구입하여 조성한 묘지였는데, 한때는 ‘서씨묘역’이라 해서 무안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기도 했다. 묘지가 잘 다듬어져 있을 때는 사전예약을 해야 만이 묘역을 이용할 수가 있었다. 특히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널리 알려져 교육청이 나서서 날짜를 조정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아와 즐겼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묘들을 나주 납골당으로 옮긴 후부터는 묘역의 관리가 되지 않아 방치된 상태다.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해방 이후인 1949년 9월 14일에 발생한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이 집단으로 탈옥한 사건때, 청수리의 검은들골짜기로 숨어들었다가 많은 죄수가 발각되어 즉결처분받기도 하고 다시 잡혀가기도 하였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지난 2020년에 개통된 청계-몽탄 간에 ‘만남의 길’을 승용차로 드라이브하거나 도보 트레킹을 하면 수려한 승달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청계농공단지, 수영산업(정미소).
주민요구사항
청계면 내에 마을회관이 없는 네 개 마을의 하나인 청수1리 신흥동마을에 마을회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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