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2리에 속한 「압창」마을은 마을은 근대에 들어서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발간된 《호구총수》에도 나오지 않고 1914년 일본인에 의해서 실시된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나오지 않았던 지명이다. 하지만 예전의 마을 이름인 「압창(鴨唱)」을 통하여 갈매기 떼가 모여드는 연안의 해변지역이었으며, 이후 바뀐 「압창(押倉)」이라는 지명을 통해 곡물창고가 생기면서 마을이 성해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근처에 형성된 무안국제공항으로 해서 광주-무안 고속도로는 물론 호남고속철도 등이 건설되어 교통의 요지가 되고 있다.
지명유래
원래의 마을 이름은 「압창(鴨唱, 현재 표지석에도 鴨唱으로 표기되어 있다)」 곧 갈매기 떼가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많이 모여들어 우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갈매기 떼가 들판을 덮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압창(押倉)」으로 쓰고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곡물창고가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1923년에 내해면에 접한 만(灣)으로서 간척이 쉬운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포구가 개발된 압창과 현경면 조산리 간 간척에 이어 압창과 조산 간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나는 목화, 쌀 등 곡물을 수집하여 반출하는 조선흥업회사 사무소가 설치되고, 그것을 보관하는 창고가 세워지면서 마을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마을 이름을 「압창(押倉)」이라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형성(입향조)
초기에는 소규모의 주민들만 거주하다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는데, 본격적인 마을의 형성은 1920년대에 들어온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최초의 입향조로 보인다. 이외에 1923년에 간척이 완료되면서 조선흥업회사 등이 설립되고 이와 관련된 일본인 ‘하지모토, 시라노, 와까모도, 도미짱’ 등 일본인 4가구가 들어와 살게 되면서 차츰 여러 주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연근해 바다와 접해있는 포구로써 수많은 갈매기 떼가 들판을 덮을 정도로 풍광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차례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바다와는 멀어져 있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원래 마을 이름은 「압창(鴨唱)」이었으며, 현재 마을의 표지석에는 ‘압창(鴨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곡물창고 등이 있어서 현재의 마을 명칭인 「압창(押倉)」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단순한 창고 때문만이 아니라 망운반도와 현경면, 해제면 일대의 수탈 창구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안에서는 영산강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목포에서 화물선과 여객선이 다녔던 압창포구는 일제강점기 서남지역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중심지였다. 또한 망운에서는 제일 먼저 개설된 신작로인 마을 앞의 도로는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수탈의 통로로 이용하기 위하여 만든 도로였다. 해제와 현경 그리고 운남 등지에서 생산된 곡물과 면화 등을 이 도로를 이용해서 실어다가 흥업회사 창고에 일단 보관했다가 순차적으로 압창포구를 이용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행정구역 변경
「압창」마을이 속한 망운면 목동리는 조선시대 설치된 망운목관의 동편에 위치한다고 해서 「목동(牧東)」이라고 불렀으며, 조선시대까지는 영광군에 속하여 인조 때 감목관 설치로 영광군 목장면에 속했다. 1914년의 군면폐합에 따라 무안군으로 편입되어 1971년에 운남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3년에 운남면에서 분면되어 망운면 목동2리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지금은 창포만이 막혀서 농지가 되었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였다. 한때는 망운에서 가장 번화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목포에서 화물선과 여객선이 다녔던 포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압창포구는 일제강점기 서남부 지역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광복 후 60년대까지만 해도 운남, 해제, 현경, 망운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를 외지로 실어내었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늘 사람으로 넘쳐났다. 특히 망운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포구가 확장되고 목내의 골목마다 사람으로 가득 차 번창하였다. 하지만 창포만이 막히면서 포구는 사라지고 망운시장 역시 우시장이 없어지면서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걸어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주요시설
마을회관, 정자, 재활용수집장
마을변화
한때는 마을이 가난해서 어려움이 겹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망운면에서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는 세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고 주민들은 자랑하기도 한다. 또한 마을에는 폴리페놀을 함유한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고기능성 쌀을 개발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는 주민도 있다. 현재 압창포어촌계가 남아 있어서 어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마을은 주변 지역이 발전하면서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여러모로 피해를 보고 있다. 우선 마을 주민들의 시야를 가리는 무안-광주 간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가리며 지나가고 있다. 또한 피서리에 위치한 무안국제공항이 활성화되어 비행기 이착륙이 많아지면서 소음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예전에 창포만이 열려 있을 때는 갯벌이 좋아 굴, 낙지, 갯지렁이를 포함하여 각종 조개류 등이 서식하고 있어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또한 염전을 비롯하여 백사장이 좋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간척이 되면서 수익원이 되는 황금 터전이 사라지고 주거환경이 자꾸 열악해지는 상황이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압창포어촌계
공동이용시설
원래 유당골프장이 마을 앞으로 오려고 했지만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아 현재의 자리로 갔는데 아쉬움이 큰 기회였다고 한다.
전통식품/특산품
마늘, 양파, 고구마 등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기업도시가 들어설 예정지로 비워 두었던 무안국제공항 인근의 농경지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가 근래 들어 태양광발전소 등이 건립되었다. 이에 주민들은 반대 운동을 통해 저지를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예전에 비파농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동/식물
마을 앞에 축사 등이 들어서 각종 가축 부산물을 비롯하여 폐기물이 버려지고 있어 심각한 오염 현장이 되고 있다. 실지로 비가 오려고 하면 돈분(豚糞) 냄새가 먼저 마을을 휩쓸어 일기예보보다 정확하게 비를 예측하는 웃지 못할 사항이라고 주민들이 하소연했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발동기를 댈 수 있는 곳이라는 ‘발동기머리’가 있는데, 이곳은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숭어가 잘 잡혔던 ‘무르들’이란 지명도 남아있고, 마을 앞 들판을 ‘압창들’이라고 한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미기재
설화
무안지역 문화자원의 하나로서 소머리, 닭머리 등 창포만을 둘러싼 다섯 머리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새롭게 발견된 또 하나의 머리로써 망운면 소재지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누에머리(니머리라고도 함)’가 그것이다. 누에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그곳은 예전에 기와를 굽는 곳이었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압창포 수문은 한국전쟁 때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으며 처형장이었다. 좌익세력에 쫓기던 망운사람들은 이 압창포 수문을 넘어서면 살 수 있었고, 넘어서지 못하면 대부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좌익활동을 하던 사람을 두릅 엮듯이 엮어 끌고 와서 수문 옆에서 죽창으로 찌르고 칼로 찔러서 죽였던 곳이다. 주민들은 당시를 기억하며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예전에 ‘말맷동’이라고도 부르는 말무덤이 마을에 있었다. 지금은 지방도로가 나서 흔적이 없어졌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송림이 우거진 곳에 왕의 무덤처럼 커다란 봉분이 놓여 있었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무안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기업도시가 지지부진해지다가 현재는 거의 취소되다시피 해서, 이 마을을 포함한 기업도시 예정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불만과 무기력이 크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섣불리 계획을 세울 수 없고 토지거래가 묶여 있어 재산권 행사 등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2년 무안국제공항 착공으로 거주지를 잃게 된 피서리 주민 10가구가 이 마을로 들어와 살고 있다. 무안국제공항 및 호남고속철도 개통 등에 따른 마을 개발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