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주교」마을은 망운면 소재지와 현경면 소재지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마을 앞이 바다여서 이곳까지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라 하여 「배다리(舟橋)」 또는 「배달」이라고 하였다. 망운면 동쪽의 809번 지방도로 아래쪽으로 있던 포구 내지는 다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서 깊은 자연마을로,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공동체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마을이다.
지명유래
원래 까마귀를 닮은 형상이어서 「갈머리」라고 불렸던 자연지명 이외에 「주교(舟橋)」라는 마을 이름은 1789년에 제작한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고, 1912년에 나온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서 비로소 망운면 주교리로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두 차례의 간척사업 그리고 1980년대의 창포만 간척사업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은 농경지가 되었다. 이를 통해 마을이 형성되면서 「주교」마을로 불렸는데 인구가 늘자 「윗배다리」, 「가운데배다리」, 「아랫배다리」로 나누어졌다. 이어 1980년대에 들어서 목동2리 「상주교」와 목동3리 「하주교」로 분리되었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마을유래지》에 의하면 ‘고려시대부터 창령성씨(昌寧成氏)가 거주하였다 하나 확실치 않고 그 후 성유수가 나주 기만동에 살다가 나송대의 역적모의에 연좌되어 화를 당할까 하여 함평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망운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고 전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민 중에 성 씨(成 氏)가 살고 있어서 이를 족보 등을 통해 확인하려 확인되지 않았다. 마을에는 성씨를 비롯하여 김, 최, 오, 신 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는데, 이중 김해김씨(金海金氏)는 1840년대에 신안 자은도에서 옮겨왔으며, 강화최씨(江華崔氏)는 경기 강화에서 1870년대에 옮겨왔다고 했다. 또한 광산김씨는 1890년대에 함평 나산에서 옮겨왔다고 하며, 이에 이 마을의 입향조는 1800년대 중반에 자리 잡은 김해김씨로 추정되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원래 마을의 지형이 까마귀를 닮은 형상이어서 「갈머리」라고 부른 마을의 지리적 형국은 까마귀를 통해서 풍수적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까마귀는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처럼 강인한 기상, 신성함과 권위를 상징하여 생명력이 넘치고 번영할 길지(吉地)로 해석된다. 또한, 우리의 민속신앙에서는 까마귀가 단순히 길조나 흉조로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예지를 가진 동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마을과 사람들을 지키고 재앙을 쫓는 수호신적 존재의 기능을 함은 물론, 까마귀가 옛날부터 인간에게 길흉을 전하는 신의 사자나 전령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이 마을은 마을공동체가 서로 잘 소통하고 화합하며 외부와도 원활한 교류를 통해 번성할 수 있는 기운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원래 「하주교(下舟橋)」마을은 지형이 까마귀를 닮은 형상이어서 「갈머리」라고 불렀다. 이후 1986년에 가운데배다리(中舟橋)와 합쳐지면서 현재의 「하주교」로 굳어진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하주교」라는 지명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원래 「주교」에 해당하는 마을이었는데, 인구가 늘어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면서 차라리 위와 아래의 개념에서 벗어나 「주교」와 「상주교」로 나눴으면 훨씬 어울릴 이름인데, 편의상 상,하(上,下)의 지명으로 분리된 것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행정구역 변경
「하주교」마을이 속한 망운면 목동리는 조선시대 설치된 망운목관의 동편에 위치한다고 해서 목동(牧東)이라고 불렀으며, 조선시대까지는 영광군에 속하여 인조 때 감목관 설치로 영광군 목장면에 속했다. 1914년의 군면폐합에 따라 무안군으로 편입되어 1971년에 운남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3년에 운남면에서 분면되어 망운면 목동리에 속한 목동3리 「하주교」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원래 배가 드나들었던 곳은 모두 세 번의 간척사업을 거쳐서 농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인 교본정정이 갈머리에서 맞은편 버듭살까지 막은 것이 1차 간척이고, 두 번째는 대정(大正)8년(1919)에 압창포에서 동산리까지 이어진 2차 간척이며, 세 번째로 남화토건이 막은 창포만으로 이루어진 3차 간척이다. 이처럼 3차에 걸친 간척사업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은 모두 농경지가 되었다.
이 마을에는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당시 무안에서 제일 큰 기름집이 있었는데, 기계틀이 세 개나 있었던 지름방 또는 기름방으로 불렀던 참기름집은 함평에서도 기름을 짜러 올 정도로 널리 알려졌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무당이 살고 있기도 하였으며, 솥을 때우러 다니는 ‘솥때우리’도 있었고 각종 철물을 다루는 대장간도 있었다. 당시까지 3대째 운영되던 한의원이 있었고 뼈를 맞춰주는 접골사도 있었다. 또한 5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망운교회의 시발점이 이 마을에서 시작되기도 하였다.
주요시설
배다리길, 동목장길
마을변화
1960년대부터 이 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야산을 개발하여 유채밭과 고구마밭을 만들었다. 망운을 비롯한 현경, 해제, 운남 일대에서는 당시 봄에는 고구마 가을에는 유채를 심어서 소득을 올렸던 시기였다. 이를 통해 소득이 얼마나 좋았던지 당시 환락가였던 속칭 ‘방석집’이 목내에 네 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그렇듯이 일제강점기에는 보리와 고구마 그리고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하였다.
하지만 이후 국가에서 실시하는 고구마 재배 장려 정책을 빌미로 농협 등지에서 가짜로 고구마 매매 영수증을 남발한 ‘고구마파동사건’이 터지면서 주민들은 농업 작목 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서 현재와 같이 소득이 높은 농업특산물인 양파와 마늘로 전환한 것이었다.
현재 이 마을은 깨끗하고 아담하다. 주민들의 화합과 협동으로 마을을 가꿔 골목 곳곳이 소박하고 안정감을 준다. 마을의 설촌 연대가 짧아 역사와 전통은 없어 보이지만 주민들의 근면함과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정자, 재활용품 수거장
전통식품/특산품
마늘, 양파, 고구마 등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1960~70년대 이 마을을 포함한 망운면 일대는 노란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이때가 되면 전국의 양봉가들이 대거 망운으로 몰려와서, 이들이 모여 있으면 팔도의 언어가 다 나와서 마치 사투리 경연장을 방불케 하였다. 일본말로 ‘나가네’라고 부르는 유채밭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이 지역 대부분의 야산이 개발되어 유채밭이 되었다. 드넓은 황토밭에 노란 물결이 출렁거리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의 노란 유채밭은 당시 이곳의 1/10도 안 되었다고 한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마을에서 망운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 ‘망재’가 있으며, 간척으로 형상된 마을 앞들을 ‘주굣들’이라고 한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예전에는 다른 마을과 달리 동계를 7월 칠석에 지냈다.
유물, 유적
미기재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한때는 전국의 양봉가들이 몰려오기도 했던 ‘창포5머리’는 창포만을 둘러싸고 있는 지명 중에 동물과 관련된 5머리를 말한다. 여기서 ‘머리’라 함은 바다를 향해서 육지의 맥을 타고 달려오는 반도 형국의 지형을 뜻한다. 닭머리(鷄頭, 동산리의 당두), 갈머리(鶴頭, 학이 목이 말라 목을 축기는 형국, 양학리의 병곡마을이다. 또는 칼머리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전후 사정을 보아 갈머리가 옳다고 본다), 새머리-쇠머리(牛頭, 소의 머리)형국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착마을의 당산머리와 함께 창포5머리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이 마을에는 ‘니머리 또는 누에머리’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이웃 마을인 상주교에는 일본인 반전(飯田, 이다)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목장이 있었으며 누에공판장도 운영했다. 이에 이 마을에서도 누에를 치기도 하였으며 베를 짜는 공장도 있었다. 갈머리 뒤 평산신씨 가족묘원 부근에 잠실(蠶室)이라는 지명이 있다. 지금은 뽕나무 두 그루가 남아 그때를 미루어 짐작게 하고 있지만, 예전엔 이 일대에서 잠업이 크게 성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누에머리(니머리라고도 함)’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