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서리」는 위로 서해를 두고 중앙으로 77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아래로는 무안국제공항과 접하고 있다. 이에 속한 목서3리 「대곡」은 원래 목서6리 「장재」와 한 마을이었으나 1980년대에 분동되었다. 「장재」 마을은 원래 아랫마을 · 웃마을 · 건너마을 · 쑥댕이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높은 산이 거의 없는 망운면에서 이 마을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대를 이루어 목북의 「송전」과 피서의 「조산」마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지형이다. 그래서 현경면과 해제면, 운남면, 무안읍 등은 물론 날이 맑으면 목포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을의 좌측과 내륙 방향으로는 ‘공항로’가 지나고, 마을 오른쪽 중간을 가로질러 ‘서목장로’가 놓이면서 마을이 좌우로 갇힌 형국이 되었다. 이처럼 마을 중간을 가로지르는 ‘서목장로’를 기준으로 바닷가 구역은 「학실」, 기존 마을회관이 있던 구역은 「서목장」으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확장공사로 인하여 마을 부지가 유입되어 마을이 변형되고 축소되었다.
지명유래
이 마을 지명의 유래는 ‘지세가 학 같은 모양으로 학이 집을 짓고 살았다 해서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칭하였다’라고 《마을유래지》(1987)에 기록되어 전한다. 그래서 학(鶴)이 머무는 골짜기인 ‘학곡(鶴谷)’ 또는 ‘학실(鶴室)’로 불리던 것이 ‘한실’로 발음되었고,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지금의 「대곡」이 된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마을형성(입향조)
입향조는 《마을유래지》(1987)에 따르면 광산김씨가 조선초기에 이곳으로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이후 하동정씨, 전주최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제보자 김인수(金仁洙)) 그러나 《마을역사문화자료》(2017)에는 마을 입향조가 최태극(자-순기, 호-월곡, 1804~1878)으로, 그는 현경면 현화리 월명촌에서 살다 주거 환경이 좋은 이 마을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전주최씨 중에서는 주민들이 ‘최감찰 어른’이라고 불렀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여건으로 보아서 1800년대 중반에 이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유래지》(1987)에서는 이 마을의 지형을 ‘학이 날개를 펴는 모습이고, 마을 앞에는 사혈(蛇穴)과 우렁이 껍질 같은 요강도가 있어 마치 학 앞에 뱀과 우렁이가 있는 형세’라고 하였다. 한편 《마을역사자료조사》(2017)에서는 이 마을의 지형이 ‘소쿠리’형으로 해안 쪽을 향해 오목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보면 학이 먹이를 찾아 마을 주변에 있는 뱀과 우렁이를 보고 쫓아서 날아가는 형국이다. 뱀은 마을의 해안선을 따라 왼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을 말하는데, 주민들은 머리 부분에서 끊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 끊어진 부분을 이으면 마을에 불구자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우렁이는 요강섬을 말한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성씨
전주최씨, 김해김씨, 한양조씨 등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학곡(鶴谷), 학실(鶴室)로 불리다가 변형되어 ‘한실’로 발음되었고, 이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현재의 「대곡」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마을 이름이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그동안 자연마을 있었다가 1912년에 망운면 「대곡」으로 바뀌면서 행정마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행정구역 변경
망운면은 인조 대에 감목관이 설치되면서 영광군 목장면으로 편성되었다. 이후 《호구총수》(1789)에는 영광군에 속했으며,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무안군으로 편성되었다. 그리하여 「대곡」이란 마을 명칭은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부터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전형적인 농어촌마을로 간척지의 농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주요 작물은 양파와 고구마이며, 뒤에 넓게 펼쳐져 있는 갯벌에서는 낙지 등을 잡아 수입을 올린다. 예전에 포패조합 등을 운영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인력 부족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
주요시설
마을회관에는 비행기의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변화
무안국제공항의 확장공사로 마을회관과 누정 등의 위치가 변경되어 임시시설을 사용하고 있으며, 전답의 일부도 공항부지에 포함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많이 떠나버려 마을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무안국제공항 확장공사가 지속되면서 조용하고 아늑했던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한가로움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 앞의 넓은 농지는 대부분 외지인 소유로 주민들의 형편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최근 마을에서는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2025)에 참여하여 각종 생활 인프라 개선, 주민 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무안국제공항에 접한 마을로서의 미래를 향한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1980년대에는 동계(1970 창립), 부녀회(1975 창립), 상포계(喪布契, 1978 창립) 등의 마을조직이 있었으나, 지금은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등이 활동하고 있다.
공동이용시설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확대 공사로 기존의 마을회관은 헐리고, 공항도로 인접하여 대곡경로당이 건축되었다.
전통식품/특산품
마늘, 양파, 낙지 등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 위로 펼쳐진 서해바다와 광할한 황토갯벌이 풍부한 생태환경을 제공했었으나, 근래 들어 무안국제공항이 개항되어 확대되면서 급격한 도시형 생활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마을 앞에 ‘안한실’이라 부르는 들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이곳에 일본인들이 비행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기름통을 보관했다. 예전 마을회관 아래쪽의 ‘쑥댕이’는 ‘쑥당’(애당(艾堂))이라고도 하는데, 이전의 마을회관 아래쪽을 지칭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마을유래지》(1987)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7월 백중날에 당산제를 지내는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물을 마시고 당산제를 지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실제 마을 아래쪽에는 4그루의 오래된 구수나무가 있었으며, 구수나무 아래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수량이 풍부할 뿐 아니라 약효가 뛰어나 주변 마을에서도 먹으러 왔었지만, 지금은 길이 나면서 우물도 없어졌고 아름드리 구수나무도 베어져 버렸다. 또한 주민들도 이 샘에서 당산제를 지냈던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유물, 유적
주민들은 ‘쑥댕이(쑥당)’에서 수많은 기왓조각과 그릇 등이 나온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쑥댕이는 동산리 「애북(艾北)」마을의 ‘쑥 뒤’와 비교되는 지명이다. 또한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인들이 망운비행장과 비행기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 설치했다고 기억한다. 당시 미군 비행기들이 실제로 모형비행기에 폭격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설화
「대곡」마을 앞에는 사혈(蛇穴)이라는 곳이 있는데, 뱀의 머리 부분은 살아 있고 나머지 부분은 죽어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를 잇게 되면 마을에 불구자가 생긴다는 민담이 전해 내려온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6.25 한국전쟁 때 이 마을 주민 2명이 희생되었다. 이는 단순히 경찰 가족이란 사실만으로 입었던 피해이며, 이러한 비극은 망운면 인근에서 많이 일어났던 아픈 역사이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확장공사
주민요구사항
이 마을은 무안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입은 피해가 크다. 망운면 소재지와는 ‘공항로’가 막아섰고, ‘서목장로’는 마을을 둘로 갈라놓았다. 여기에 마을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변변한 집 한 채가 없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한다. 여기에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확장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마을이 양 도로에 갇히고 제한을 받는 데다, 비행기 활주로 가동으로 인해 발생할 소음과 조명시설의 물리적 · 정신적 피해에 깊은 우려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