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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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도리 망운면 탄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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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23세대, 인구 40명(남23, 여17) / 2025.12.기준.
자연마을 구성
「탄도」는 망운면소재지 서쪽방향 7.5km, 송현리 조금나루에서 직선거리 3km 거리에 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남북으로 긴 섬의 면적은 16만여 평(약 528㎡)이며, 해안선 길이는 4.5km. 남북 길이는 1km가량이다.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을 비롯해 편마암, 퇴적암 등 다양한 암질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에는 주산인 왕령산을 포함하여 돌개산(석견산(石犬山)) · 용머리산 · 어바우산 · 덤벅산 · 작은 모시리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이 있다. 이 섬마을을 둘러싼 해변에는 넓게 갯벌이 펼쳐져 있으며, 이를 ‘탄도만’이라 한다. 마을의 주택 지붕에는 일률적으로 파란색 칠이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무안군에서 시공한 것이며, 마을 군데군데 벽화와 벽장식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탄도」와 송현리를 잇는 배편은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는데 물때(아침 저녁으로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때)에 따라 대략 오전 8시와 오후 3시경, 하루 두 차례 왕래한다. 편도 소요시간은 10~20분이다. 이 섬마을의 동쪽에는 원송현, 서쪽에 신안군 지도읍 태천리, 남쪽에 운남면 내리 범바위와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해제면 창마리가 자리잡고 있다.
지명유래
「탄도」는 약 450년 전 성씨 불명의 사람이 정착하면서 「여울도」라 부르다 숯을 많이 산출하므로 「탄도(炭島)」라 하였다고 한다.(《마을유래지》, 1987) 하지만 섬의 크기나 숲의 규모가 숯을 만들 정도라고는 볼 수 없다. 때문에 고문헌에 비록 탄도(炭島)라고 표기되어 있더라도 다른 관점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형상 「탄도」를 사이에 두고 서해안의 물줄기가 운남면과 망운면으로 갈리는 여울목을 이루어 원래 지명이 ‘여울도’였으므로 ‘숯섬’을 뜻하는 「탄도(炭島)」보다는 ‘여울목’을 뜻하는 「탄도(灘島)」가 적합한 표기라는 견해인 것이다. 실제로 마을 안내 팻말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또 주민들은 ‘숱도’로 부르기도 하였다. 섬 주변에 해산물이며, 생산자원이 풍부해 ‘아주 많다’는 의미의 ‘숱하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마을형성(입향조)
기록에 따른 이 마을 입향조는 김해김씨 김약휘(金躍輝: 1623~미상, 자-중문(中文), 호-도은(渡隱))이다.(《무안세적지》) 그는 병자호란을 피하여 함평군 나산면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밖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의 분수를 지키며, 자연을 벗 삼아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사람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풍수지리(마을형국)
「탄도」의 ‘용머리’는 운남 내리의 ‘범바위’와 함께 용호상박(龍虎相搏)의 지형을 이룬다. 오래전부터 이런 용호상박의 지형에는 어딘가에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는 혈처(穴處)가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마을성씨
김해김씨, 전주최씨, 강씨, 박씨, 이씨, 나주임씨, 장씨 등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여울도로 불리던 이 섬은 400여 년 전 「탄도(炭島)」로 지명이 바뀌었다.
행정구역 변경
「탄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탄도(炭島)」, 《호구총수》(1879)에서는 현화면 「탄도리(炭島里)」로 등장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자료에는 「탄도」라는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1987년 《행정구역일람》에서는 망운면 「탄도」로 나와 현화면에서 망운면으로 행정관할이 변천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마을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며, 주요 작물은 마늘, 양파, 고구마, 참깨, 해태, 굴, 감태 등이다. 요즘 주민들의 농업은 주로 자가 수급을 하기 위한 정도로 규모가 작으며, 특산물인 낙지도 작황이 불규칙하고, 수확량도 줄고 있다.
주요시설
새탄도교회, 낙지축양장, 해양탐방데크, 안개산둘레길, 다목적 방문객센터, 여울공원, 감탄점빵, 섬마을펜션(상업인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운영되지는 않는다)
마을변화
이 마을의 교통수단은 경운기와 오토바이로 자동차가 없다. 골짜기며, 계곡, 해변가 어디에도 쓰레기나 오물이 없다. 또 집집마다 나오는 생활하수는 하수처리시설을 만들어 처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울력으로 매달 섬 전체를 아우르는 환경정화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을노인회에서 그 일을 맡아 하고 있다. 1970년대 「탄도」마을의 새마을운동 사업은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탄도 새마을지도자 이남주씨와 주민들은 가난과 실의에 차 있던 외딴 섬마을을 선착장, 복지관, 메탄가스, 지붕개량 등으로 마을환경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 1972년 11월 21일 ‘유신헌법 국민투표일’에는 2km 바다를 건너 전 주민 100%가 참여하는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이 마을은 2022년에 무안군 ‘어촌뉴딜300사업’의 ‘여객선 기항지 사업이 선정됨으로써 선착장 연장, 부잔교설치, 탄도항 대합실 신축 등 여객선 계류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1980년대까지 상부계(相扶契, 1965 창립), 청년회(1968 창립), 부녀회(1969 창립)가 있었다. 지금은 노인회와 부녀회가 활동하고 있다.
공동이용시설
탄도복지회관, 마을누정, 여울공원, 탄도항대합실
전통식품/특산품
탄도를 에워싸고 있는 갯벌은 주민들에게 귀중한 농장이다. 오염원이 없을 뿐 아니라, 황토와 갯벌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맛과 질이 전국 최고였다. 이 뻘에서 생산되는 낙지와 감태는 오래전 수산부가 주최하는 전국 맛 품평회에서 당당히 최고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탄도감태’와 ‘탄도낙지’라면 최고의 값을 받고 팔렸고, 조선시대 진상품 목록에도 들어갔었다고 한다. 이처럼 탄도만 일대에서 나는 각종 어패류는 무공해 건강식품으로 사람들로부터 각광받았다.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왕령산(안개산)’은 섬의 북쪽에 있는 야트마한 산으로 주민들에게는 안개산이라는 지명이 더 익숙하다. 산에는 소나무숲-스레피나무숲-대나무숲으로 구성된 2km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야광주’는 이 섬에 딸린 작은 섬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불을 밝혀 주변을 왕래하는 배의 항로를 밝혀준 적이 있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머리’는 이 섬에서 보면 칠산바다 쪽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는 맥(脈)을 지녀 ‘용머리’라 부르는데, 그 앞에는 둠벙(용샘)이 있고, 그 너머에 작은 섬이 있어 마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놀고 있는 듯한 지세(地勢)를 갖추었으므로 ‘여의주’라고도 부른다. ‘왕령산 생수’는 왕령산 뒤쪽에서 나오는 생수로 칠산바다로 나가는 어선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식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물은 한 달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메워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어바우샘’은 마을 서쪽의 어바우산 아래에 있던 우물이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 하는데, 지금은 매몰되었다. 이외에도 왕령산 주변과 바닷가 여러 곳에서 샘이 솟았다 하나,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동/식물
마을 곳곳에서 육지에서 물을 건너 들어온 뱀이나 멧돼지, 고라니, 노루 등을 볼 수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멧돼지나 노루는 없어졌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1970년대 초 마을이장을 역임했던 이남주댁에서 《망운면 탄도리 토지대장》(1952) 나왔다. 당시 주민들의 토지소유 현황을 기록한 자료이다. 이 토지대장에는 마을 곳곳의 지명이 나와 가치가 높다. 살펴보면, ‘대포리(大浦리)’, ‘내기구(內基口)’, ‘모실리’, ‘명덕곡’, ‘촌전기전(村田基田)’, ‘동북정’(땅금이), ‘야천리’, ‘어암’(於岩, 어바우), ‘굿치석’, ‘들샘이’, ‘소모실리’, ‘용모리(용머리)’ 등이다. 이외 ‘중샘’은 왕령산에 중(승려)이 마셨다는 우물 이름으로 남아 있어 해양신앙과 가까운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산녀바위’와 ‘후녀바위’(섬에서 현경 쪽을 바라보면 두 개의 바위가 아스라이 보이는데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열목’(여울목)은 예전에 배가 다니기 전에는 섬에서 송현까지 걸어서 가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부르는 이름이다. 뱃길이 나기 전, 마을사람들은 여울목에서 송현을 거쳐 함평 장(場)까지 걸어 나가, 섬에서 채취한 감태를 팔며 생계를 꾸렸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왕령산 뒤쪽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그 나무 밑에는 당산제를 지낼 때 사용했던 ‘당산샘’이 있었다. 제를 지내기 전 제관들은 이 샘에서 목욕재계하고 비린 것을 멀리했다. 하지만 당산나무가 없어지면서 당산제는 지내지 않게 되었다.
유물, 유적
‘탄도분교’는 바닷가를 마주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망운서초등학교 탄도분교는 1956년에 설립되어 2001년에 폐교되었다. 한때 40여 명의 학생들이 수학하는 곳이었다. 마을이 작고 주민이 적은 이 마을에서는 소풍날이나 어린이날, 학교 운동회와 같은 행사 날이면 마을 전체 주민이 참여했다. 심지어 자녀가 없는 어른들도 이 행사 대열에 끼여 즐겼다고 한다. 탄도분교는 폐교 후 개인이 매입하여 리모델링한 모습이다. 목포대학교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바다와 접한 경사면에서 다량의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유의미한 유물을 본 적 없다고 한다. 또 용머리를 볼 수 있는 왕령산 기슭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래전에 없어졌고, 다만 그 주변에서 깨어진 기왓조각이 많이 나왔다 한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예전에 초장(草葬: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이엉 등으로 덮어 동물로부터 보호한 뒤, 일정 기간 두었다가 뼈만 추려 매장하는 전통 장례 방식)을 지내면서 기왓장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장(移葬)하면서 그 기왓장을 그대로 두고 간 것이 더 설득력 있다며, 이 마을의 규모나 형편상 사찰의 존재는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설화
탄도와 마주 보는 육지가 운남면 내리의 ‘범바위’, 탄도의 ‘용머리’, 그리고 송현리 ‘조금나루의 칼(청룡도)’ 사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서해안을 건너 한양으로 올라가 꿈을 펼치려는 ‘운남의 호랑이’와 이제 막 100년을 기다려 하늘에 승천하려는 ‘여울도의 이무기’가 서로 상대를 겨누며 마주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용호상박의 절체절명 순간이었다. 이때 조금나루의 청룡도가 나서 둘 사이에 칼로 갈라버렸다. 그 덕분에 둘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탄도 왕령산에서 지내던 당산제가 중단된 것은 어느날 주민 중 한 사람이 당산나무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그 사람이 나무를 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 그 사람에게는 후손이 생기지 않아 단손(斷孫)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지금 주민들에게 그 설화에 대해 묻자,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뭐하러 나무를 베겄소?”하며 오히려 반문한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임현직(시인)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이남주(마을이장, 탄도 새마을지도자, 19​73년 대통령훈장서훈)을 비롯하여 작은마을이지만 판사와 변호사 등 3명의 고시합격자를 포함해 광주씨티병원장, 삼성병원의사, 교사와 공무원 등 여느 마을 못지않은 굵직한 직업군 인물들을 배출했다.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이 마을은 현재 잘 알려지지 않고, 외지 사람의 방문도 적지만 피서철이 되면, 이곳의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준나리 언덕과 대포리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은 천연 해수욕장을 이루며, 노을이 질 때면 준나리 언덕에서 야광주산으로 이어지는 비단길이 금빛으로 빛난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연령대로 의료서비스가 간절하지만, 제대로 혜택을 입을 수 없는 여건이다. 따라서 병원(보건소)이 들어섰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폐교된 ‘망운서초등학교 탄도분교’가 운영되던 시절, 1970년대 도시에서 온 학교 선생님과 마을 처녀가 서로 사랑해 결혼까지 성사된 경우가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의 이름을 들며 당시를 회상하였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유행가요, ‘섬마을 선생님’의 실화 사례이다. 마을 주민은 이외에도 신안공비사건(1969)을 계기로 한때 섬마을에 주둔하던 경찰과 결혼한 마을처녀 사례도 곁들여 들려주었다.
기타사항
탄도를 향하는 조금나루를 시각적이고 정감있게 묘사한 나천수 창작 시(詩), 「조금나루 해수욕장」이 있다.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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