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머리」마을은 무안읍에서 망운으로 향하는 공항로 초입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톱머리항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보인다. 이 마을은 무안국제공항이 들어오기 전에는 「용호」마을의 일부였다. 2000년대 「용호」마을이 공항부지로 흡수되면서 해수욕장 주변을 나누어 지금의 피서4리 「톱머리」마을로 새로이 형성되었다. 톱머리해수욕장이 유명한 이 마을은 해변을 끼고 나 있는 도로를 중심으로 바닷가 쪽은 해송 숲과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맞은편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즐비하다. 이 상가들은 원래 있었던 해송 숲의 일부를 베어내고 조성하여 뒤로는 아직 해송 숲이 남아있다. 톱머리항 방향의 굴다리를 통해 ‘창포호’로 접근할 수 있다.
지명유래
「톱머리」마을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도로변에서 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언덕을 넘으면 오른쪽에 바위산이 있었는데, 현재의 길이 나면서 사라지기 전에 이 바위산은 동물 모양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코뺑이’라고도 부르는 이 바위 모양을 거북이 머리로 보기도 하고, 토끼머리로 보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토끼머리라고 했다고 한다.(탱크의 모양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톱머리」는 이 ‘토(兎)머리’의 음운이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에 망운면 「도무리(桃茂里)」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한자(漢字) 그대로 풀이하면, ‘복숭아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톱머리 일대는 일본인 ‘중기’의 소유였다. 공항 앞 낙지직판장에서 코뺑이라고 부르는 지역까지 약 16정(町)의 토지를 소유했던 중기는 이곳에 여러 가지 과일을 심었다. 단감을 비롯하여 복숭아, 비파 등을 대규모로 심어 많은 소득을 올렸다. 중기는 현재 비치호텔 자리(전 송죽식당)에 큰 집을 짓고 과수단지를 운영했다. 이처럼 복숭아 단지가 많아 「도무리(桃茂里)」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았을까 여기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의 자료에는 더 이상 「도무리」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으며, 2000년대에 와서 「톱머리」라는 독립된 마을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마을역사자료조사》, 2017)
한편, 이 마을이 생기면서 사라진 「피서」마을의 지명에 대한 《마을유래지》(1987)의 설명은 ‘마을에 솔개재라는 재가 있는데, 저두각(猪頭角)을 이루는 지형으로 좌우편이 만조와 저조를 이루는 호수와 같은 형국이어서, 그 좌편을 「피서(避西)」라고 불러오다 한일합방 후 「피서(皮西)」로 고쳐 현재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유래지》에 의하면 「톱머리」마을의 전신인 「용호」마을의 형성은 입향조가 신안주씨(新安朱氏)로, 조선시대 말엽 풍류객 주사집(朱四集)이 팔도를 유람하다 이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면 자손이 번창하고 가문이 융성하리라 여기고 정착하였다 한다.
한편 「톱머리」마을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진주강씨 강효복이다. 그는 원래 망운면 「조산」마을에서 살았으나 6.25 한국전쟁 이후 이곳으로 들어와 터를 닦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그 이전에는 일본인들이 재배하다 남기고 간 과수원만 있었다고 전한다.
풍수지리(마을형국)
「톱머리」마을의 전신인 「용호」마을의 지명유래로 《마을유래지》(1987)의 내용을 옮기면 ‘마을에 솔개재라는 곳이 있는데, 톱머리 쪽으로 뻗어 나와 마치 용(龍)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하단 좌우편으로 바다를 끼고 호수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하여 용과 호수의 유래에서 「용호(龍湖)」라 하였다’고 한다. 풍수에서 용은 생기(生氣)의 근원을 상징하며 이처럼 마을이 용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마을이 기운의 출발점에 위치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마을 하단 좌우에 바다와 호수 같은 형상이 있다는 것은, 물이 모여드는 지형으로 재물(財物)이 쌓이고 풍요가 이어지는 자리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이처럼 두 요소가 결합된 이 마을의 형국은 천지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길지(吉地)로 해석되어 향후 무안국제공항의 활성화와 함께 마을의 발전이 예상된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이 마을은 「용호(龍湖)」마을으로 불리다가, 2000년대 「용호」마을이 무안국제공항 부지로 흡수되면서 그 마을의 일부인 「톱머리」라는 마을 명칭을 얻게 되었다.
행정구역 변경
조선시대 《호구총수》(1789)에 피서리는 영광군 망운면에 속하여 「피서촌(皮西村)」와 「피동촌(皮東村)」으로 구분되어있다. 이후 1910년에 목포부로 편입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무안으로 편성되었으며,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에는 무안군 망운면 「피서리(皮西里)」와 「피동리(皮東里)」로 표기되어 있다. 「톱머리」마을의 전신인 「용호」마을은 이중 「피서리」에 해당하였다. 2000년대 피서4리 「용호」마을이 무안국제공항 부지로 흡수되면서 이후 피서4리 「톱머리」로 새롭게 마을이름을 얻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본래 ‘이 마을 토박이는 세 사람 밖에 없다.’라는 말처럼 현재의 「톱머리」마을 주민 대부분은 외지에서 왔으며, 거의 모두 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마늘, 양파는 물론 감 등을 재배하는 농가도 함께 하고 있다. 해수욕장의 긴 백사장을 따라 횟집과 숙박업소 등 각종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의 자랑인 톱머리해수욕장은 간만의 차가 심하여 간조 때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백사장과 보호림으로 지정된 울창한 해송 숲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교통편도 편리하여 가족 단위 피서객 등이 많이 찾으며 호젓하면서도 빼어난 경관은 물론 인근 해안에는 감태 뿐 아니라 돔, 숭어 등 어족이 풍부하여 낚시 겸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마을에서 오래 거주한 주민들은 현재 이처럼 각종 상가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갈수록 예전의 정다웠던 마을 인심이 사라지고 차디찬 도시 인심이 되어가는 각박한 세태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주요시설
톱머리항, 방파제, 등대(높이 15m, 폭 3.5m의 비행기모양의 조형 등대는 불빛이 17km까지 비춘다), 해변누정(톱머리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는 2km, 폭 100m 정도인데,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채의 누정이 놓여있다) 등
마을변화
「톱머리」마을은 일찍이 톱머리해수욕장의 갯벌과 왕모래 사장 등으로 유명했으나, 창포호 간척사업 이후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청정전남 으뜸마을 사업과 주민 주도 관광 활성화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작년에 2회째 진행된 풍경사진 전시회와 해수욕장, 해송 숲을 중심으로 한 관광자원 개발이 마을의 주요 변화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상가번영회 등
공동이용시설
해변누정, 공중화장실 등
전통식품/특산품
피서리 단감이 유명하며 톱머리의 대안단감은 국내 최초의 육성 품종이다. 원래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는데, 일본인 ‘중기’라는 이가 들어오면서 해양성 기호를 살려 앵두, 살구, 복숭아, 담감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특히 이곳의 단감은 ‘톱머리 단감’, ‘오베니’, ‘극대형 부유’ 또는 ‘대흥사’라고 불리며, 1988년 원예연구소에서 선발되어 ‘대안단감’으로 명명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내 육성 품종이다.
이 단감은 세력이 약하여 가지가 옆으로 심하게 퍼지고 밑으로 처지는 성질이 있어 나무가 크게 자라지는 않는다. 과실 크기는 일반 단감보다 크며 형태는 편원형으로 부유 품종과 거의 비슷하나 과실 배꼽 부위에 4개의 엷은 골이 있고 꼭기접합부가 부유보다 움푹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육질이 연하여 과즙이 많고 맛이 담백한 완전 단감이다. 또한 저장성이 약하고 수확 무렵의 후기 낙과가 생기기 쉬운 단점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단감을 재배하면서 그들의 재배 기술을 감추기 위해 한국인들의 의심하고 배척했던 이야기들이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즉 이곳의 단감이 너무 맛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감을 훔쳐가거나 기술을 몰래 배울까 봐서 일꾼들을 의심하고 단속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원래는 이 마을 전체가 전형적인 반도형이었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둑이 연결되어 반도의 특성을 잃었지만, 전에는 마을 앞뒤로 모래톱이 쌓여 해수욕장으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톱머리」 앞에만 해수욕장이 형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톱머리 뒤에 왕모래 사장이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특히 ‘잔등’이라 부르는 곳에는 아름드리의 해송이 많아 인근 학교의 소풍 장소로 즐겨 찾았으며, 또한 상쾡이와 민물장어가 많아 경상도 하동에서까지 이를 잡으러 오기도 하였다는 말이 전한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막히기 시작한 창포만이 1983년도에 완전히 막힘으로써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동/식물
톱머리해수욕장 앞의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에는 여러 수중 생물들이 살며 뒤의 해송 숲은 해송 특유의 소나무 모습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인근의 ‘창포호’는 계절마다 수많은 철새가 다녀가는 도래지이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이 마을에 남아있는 명칭들로 ‘문간’(일본인 중기의 집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공항로의 낙지직판장 자리이다), ‘감틀’(톱팬션 앞 바다. 감틀이라 부르는 이유는 감태가 많이 생산되어 붙은 것으로 추정한다) 등이 있다. 또 창포를 둘러싼 지명 가운데 동물과 관련된 ‘5머리’가 전해오고 있다. 여기서 ‘머리’라 함은 바다를 향해서 육지의 맥을 타고 달려오는 반도 형국의 지형을 말한다. ‘닭머리’(계두(鷄頭): 동산리의 당두), ‘갈머리’(학두(鶴頭)-학이 목이 말라 목을 축이는 형국, 양학리의 병곡마을), ‘새머리’(쇠머리, 우두(牛頭): 소의 머리 형국으로 서호리 유당농원 입구의 산), ‘톱머리’(토머리, 토두(兎頭, 土頭): 토끼머리 형국이라 하기도 하고, 지네머리 형국이라고도 한다. ‘토충’(土蟲: 지네를 가리킨다) 등이다. 한편 망운면 피서리를 ‘피머리’라고도 하는데, 피머리가 어떤 동물을 상징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이 마을에는 무안국제공항에 흡수되어 사라진 용호동에 <사씨공덕비(四氏功德碑)>(1933)가 있었다. 이 비는 석화양식장을 세워 마을을 일군 네 사람의 공덕을 기린 비이다.
설화
피서리에는 정달호라는 사람이 꾀를 내어 거짓으로 떡감나무를 만들어, 어리석고 욕심 많은 부자친구에게 비싼 값에 팔아먹은 「떡이 열리는 감나무」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톱머리해수욕장은 간만의 차가 심해, 간조 시간대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백사장과 보호림으로 지정된 울창한 해송 숲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현재 이 마을에서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톱머리해수욕장 관광명소화(랜드마크광장)’ 조성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톱머리해수욕장 관광명소화’ 사업의 목적은 관광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주차장 및 해양휴게공간, 휴게 및 편의시설, 진입도로 정비 등을 통해 생태 · 휴양 · 체류형 관광이 가능한 해양레저관광의 거점 명소화를 조성하는데 있다. 그리고 톱머리항 도로너머 창포호 방면에서 고속철도 2단계(고막원-목포) 제5공구(피서리-구로리) 공사가 시행되고 있다.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1945년 패전한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톱머리 앞바다 혹은 목포 소지도 부근에 수많은 무기와 재물을 버리고 떠났다는 소문이 있지만, 물론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