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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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남6리 무안읍 하마동 작성
  • 하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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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187세대, 인구 302명(남156, 여146) / 2025.12.기준.
자연마을 구성
「하마동」(下馬洞)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마을로 예전의 <무안읍성>의 남문 밖에 있던 시장통과 남문 인근의 마을들이 인구 증가에 따라서 분리되며 형성된 신흥마을이다. 1994년 성남3리 「만창」에서 분리된 마을이며, 하마거리라고 불렀던 거리와 <하마비> 자리로 추정하는 삼거리 좌우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지명유래
「하마동」이라는 지명은 <하마비>가 있었던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대소 인원 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쓰인 <하마비> 앞을 지날 때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야 했다. 당시 하마비가 있던 곳은 옛 옥천식당 삼거리로 지금도 하마거리라고 한다. <하마비>는 도로가 생기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땅에 묻혀 없어졌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玄風郭氏) 곽우석으로 주민들은 추정하고 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미기재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원래 하마거리로 불리면서 「만창」마을에 속하였으나, 1994년에 분리되어 성남6리 「하마동」마을이 되었다.
행정구역 변경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외읍면 만창리로 나오며, 1987년의 자료에서 무안읍 성남3리 「만창」마을로 나온다. 그 후 1994년 성남3리 「만창」마을에서 분리되어 무안읍 성남리에 속한 성남6리 「하마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황량했던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무안군이 1969년 신안군과 분군(分郡)이 되고, 목포에 있었던 무안군청이 현재의 자리인 성동리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정부에서는 그때 무안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 성남리에 주택을 짓게 되었다. 이른바 공무원 주택인데 총무처 주관으로 1970년도부터 이곳 「하마동」에 40호의 가옥을 짓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하마거리의 주택 두 가구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전부 논과 밭뿐이었다. 공무원 주택에 이어 1992년에는 승달타워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점차 마을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마을간 경계는 남산의 범바위에서 흘러내린 개천을 따라 「만창」과 분리되었다. 마을 인근에 초당대, 백제고, 무안경찰서, 산림조합 등 무안읍내의 주요기관과 가까운 생활권에 위치해 있어서 교육, 행정, 상업 기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지역이 되었다.
주요시설
공무원 주택, 승달타워아파트, 은광교회
마을변화
원래 주변에 양파밭, 논, 사료공장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신안군과 분군 후 공무원 주택단지가 조성되고 고층아파트가 신축되면서 형성된 마을로, 무안읍의 주요 기관들이 가까운 생활권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교육, 행정, 상업기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지역이 되었다. 주변에 양파밭, 논, 사료공장이 있고 농사가 주업이었던 마을에서, 지금은 대부분의 주민이 직장인, 자영업을 하고 소수 주민만 농사를 경작한다. 마을회관이 건물 2층에 있어서 주민 간 소통 및 점심식사 등을 하고 1층은 세탁소를 비롯한 상가이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동계, 노인회, 부녀회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겸 경로당
전통식품/특산품
양파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 앞으로는 예전의 국도 1호선이 지나갔고 만창마을 간 경계는 남산의 범바위에서 흘러내린 개천을 따라 분리되었다. 승달타워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에는 사료공장이 있었으며 양조장도 있었다. 승달타워아파트 뒤에는 무안군에서 운영했던 양파 저장용 냉장고가 있었는데, 개인에게 불하된 뒤에도 그 부근은 개발이 되지 않아 오랜 기간 폐허로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카페가 생겼다. 전통시장이 이전되고 마을 주위로 대단지 아파트와 무안군 보건소, 복합문화센터 등이 건축되어 상권이 활성화되고 정주 인구가 많아졌다. 마을간 경계는 정진조경 앞 삼거리-복합문화센터 사거리-서라아파트 도로-성동자원(재활용) 사거리이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무안에는 <향교>가 있는 교촌리와 하마거리인 「하마동」 두 군데에 <하마비>가 있었다. 「하마동」에 <하마비>를 세운 이유는 두 가지로 살필 수 있다. 하나는 고을 원님이 있는 읍성에 들어가기 위해 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읍성과의 거리는 상당히 된다. 특히 장승거리를 지나야 읍성이 나오는데 장승거리에서 떨어진 곳에 하마비를 세운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서원>과 <향교>를 보고 말에서 내렸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액서원인 <송림서원>이 현재의 무안읍내 한국전력 무안지사 앞마을인 「서운동」에 있었다. 사액서원은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을 말하며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도 동시에 하사되었다.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유교 이념에 입각한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던 교육기관이다. 향교가 국립 교육기관이었던 데에 비해 서원은 사학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서원은 조선조 말 ‘서원철폐령’에 의해서 없어진 뒤 지금까지 복원이 안 되고 있다. 「무안향교」는 교촌리 무안북중학교 뒤에 있다. 하마거리라 불려지는 이 삼거리에서 학문을 했던 두 기관이 잘 보이기 때문에 문(文)을 숭상했던 조선시대에 예절 차원에서 이곳에 <하마비>를 세우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하마거리는 예전에 <국도 1호선>이 지나간 거리로 6.25 한국전쟁 때 인민군검문소가 있었던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전 산림조합과 현재 농수산물검사소 사이에서 인민재판이 열렸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하마동」마을은 단순한 주거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조선시대의 유교 질서와 관행을 상징하는 <하마비>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적 마을이다. 무안의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이 마을은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이다.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1. 《마을역사자료조사》(무안문화원, 2017) 2. 《마을유래지》(무안군, 1987) 3. 《무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 박물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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