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안」마을은 무안초등학교 뒤편으로 나있는 성안길, 면성 1, 2길을 가르며 나있는 동문안길을 따라서 상가와 주택들이 모여 있는 도심 마을이다. 원래 읍성의 동쪽 문이 있었던 곳으로 동문은 현재 무안농협에서 무안군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목포식당 주변에 있었다. 그렇듯이 현재의 「동문안」마을은 주로 무안농협 뒤쪽과 무안축협 주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명유래
「동문안」마을은 원래 무안읍성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이후 황무지로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에 해방이후 사람들이 모여들고 정착하여 「서문안」에 속하였으나, 1982년 1월18일 대통령령으로 분리되어 「해방촌(解放村)」이라고 하였다. 이후 도심마을로 발전을 거듭하며 인구가 늘어나 분구하면서 무안읍성의 동쪽에 위치하여 마을 이름을 「동문안」이라고 하였다.
마을형성(입향조)
대체로 무안읍 성내리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향반(鄕班)들이다. 읍성에 현청이 설치되면서 고을 원님을 보필하는 향반들이 세습화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씨가 안(安)씨, 함(咸)씨, 윤(尹)씨 등 향반들이었다. 이후에 들어온 성 씨들이 정(丁)씨와 박(朴)씨인데 「동문안」에는 그 성씨들이 처음 들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동문안」마을의 지형은 쥐의 형상과 닮은 ‘쥐 형국(鼠形局)’이라고 한다. 물이 잘 흐르고 지세가 낮고 평탄하면서도 감싸인 마을의 형국을 나타내며, 쥐는 12지의 첫 번째 동물로 자(子)에 해당한다. 마을 중심부가 머리나 몸통에 해당하고 길이나 하천이 꼬리나 다리 역할을 한다. 이에 생존력과 번식력이 강한 쥐와 같이 재물운이 풍부하고 지속적인 번영이 가능하다. 특히 상업적 번창에 좋은 형국으로 해석된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원래 성내리 주변을 「원두골」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예전에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배를 메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이러한 흔적은 지금도 건축공사를 하다보면 드러나는 갯뻘층과 말목은 물론 조개껍데기 등이 발견된다. 이에 ‘간양밑 아대’ 등으로도 불렸지만, 공식 행정명칭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서 읍내면에 속한 「동문내리」로 나오다가 1982년에 대통령령으로 서문안의 「해방촌」으로 마을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성내2리 「동문안」으로 바뀌어서 현재에 이른다.
행정구역 변경
원래 마한의 영지이자 백제시대에는 물아혜현 면주에 속했던 성내리는 통일신라시대에 무안군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무안현에 속했다. 이후 기록으로 보면, 1789년 《호구총수》에서 읍내면에 속한 동문내리였다가 1897년에 무안군 외읍면으로 지명이 변경되었고, 1910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목포부에 편입되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외읍면 동문내리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안읍에 편입되어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에서 외읍면 성내리 동문내리로 나온다. 1931년 면성면으로 개칭되고 1957년에 무안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이후 1979년 5월에 무안군내에서 최초로 무안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예전에는 동문안, 서문안, 남문안 등 마을의 구분 없이 성내리라는 이름으로 한 마을처럼 지냈는데, 인구가 늘어나면서 행정적으로 분리되어 주민들은 서로 소외되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주민들이 공동으로 진행했던 다매계(喪負契-상여를 모두 다 맨다는 의미)는 행정구역이 나뉘면서 시들해졌다. 또한 당산제도 같이 모셨는데 마을이 분리되면서 지내지 않고 있다. 그렇듯이 「동문안」마을은 도심마을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주요시설
무안초등학교(1915년 개교), 무안중앙교회
마을변화
이 마을은 지역의 여타 마을과 달리 공동체문화가 주로 저녁에 이뤄지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요즈음의 농촌마을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점심을 함께하는 등 마을의 공동체를 다지고 있지만, 도심마을로서의 특성을 지닌 이 마을은 낮에는 대부분 일터에 나가고 저녁에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역시 현재에 이르러 주민들이 개개인화 되어가는 도시지역의 특성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한아름골드아파트는 2022년에 건축하여 2023년 12월에 승인이 났으며 총 20층에 114세대로 이루어졌다. 임대아파트로 10년의 기간을 임대해줌으로써 「동문안」마을의 인구 증가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동계, 노인회, 부녀회
공동이용시설
동문안마을회관, 무안초등학교, 무안농협, 무안축협
전통식품/특산품
양파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현재 동문안마을회관 주변을 ‘간양밑터’라고 부르고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고 있다. 주변을 파보면 굴껍질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 껍질 등이 층을 이루어 나온다고 한다. 현재 우래정이 있는 곳도 조금만 파면 뻘층이 나오면서 말목들도 많이 나와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배를 매었던 흔적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축협 앞에 성내리 주민들이 모두 이용하던 ‘아대샘’이라고 부르는 큰 샘이 있었는데 길이 생기면서 묻혀버렸다.
동/식물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던 마을숲인 ‘숲띠’가 있었다. 성내2리와 옆 마을인 성동리 그리고 성내1리에 연결되어 있었던 ‘숲띠’는 현재 마을회관 옆 작은 길에서부터 한아람골드아파트 뒤쪽으로 하여 오일장 뒤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명칭으로는 성들집, 성너머, 간양밑터, 아대샘 등이 있으며, 동문 밖에는 마기곡 또는 마구실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당시 읍성에 찾아온 손님들의 말을 매어놓거나 말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서문안, 동문안으로 마을이 나눠지기 전까지만 해도 서문다리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 샘굿을 포함하여 거리굿 등을 지냈는데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느티나무는 500여 년의 수령을 갖고 있으며 나무의 잎이 한꺼번에 피면 그해의 농사는 풍년이 든다고 주민들은 믿었다. 당산제를 지낼 때 주민들이 얼마나 엄격하게 지냈던지 마을 안에 임신한 여자가 있으면 다른 마을로 피정을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물, 유적
무안읍성은 현재 거의 원형이 파괴되어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온전한 기록과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안현감이 머물던 동헌(東軒)은 현재 전매서였다가 농협과 축협이 된 곳에 있었고, 무안초등학교에는 객사인 면성관(綿城館), 동편에 연빈관(延賓館), 연빈관 옆에는 읍창(邑倉)이 있었으며 식량 등을 보관했던 곳이다. 축협 앞의 영창보일러 주변이 감옥(監獄)터였다. 감옥에서 사용했던 형틀석은 예전 바른공원식당의 장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예전에는 전매서와 농조가 있었으나 현재는 무안읍농협과 목포무안신안축협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터 출입문에 성벽을 이루던 큰 돌이 많이 있었으나 도로개설 및 성동저수지 축조 시에 들어갔다고 한다. 동문 안에는 곳곳에 성터가 무너진 채 남아 있다. 무안읍성을 나타내는 각종 기록이나 자료에는 무안읍성 터가 조금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확인해 본 결과 5~6군데가 넘었다. 동문이 있었던 곳에는 샘이 있었으나 현재는 메워진 상태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무안읍성 관련한 기록물과 문헌이 많지만 체계적인 수집이나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안규섭(전 면장), 박용규(전 면장), 손영준(무안군 번영회장)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주민들은 마을이 발전에서 소외되었음에 불평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로 오기로 했던 버스터미널이나 무안 5일장 등의 이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서문안마을 등 근처 마을에 비하여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었으나, 지금은 다양한 마을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읍성 동문은 무안농협에서 무안군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목포식당 주변이었고, 동문밖에는 마기곡 또는 마구실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읍성에 찾아온 손님들의 말을 매어놓거나 관리하는 곳이었다. 무안읍사무소-무안초등학교-덕신이발관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예전 국도 1호선이자 버스가 다니던 길이었다.
그리고 성내1리와 성내2리가 법정리로 분리되어 오다가 인구 유입 및 주택 증가로 행정 분리할 때 성내1리와 성내2리 각각의 마을에서 읍사무소를 기준으로 하여 남쪽으로는 성내3리로 분리가 되었다.
기타사항
성내2리의 경계지역은 대체로 무안초 정문-읍사무소 옆 삼거리-SG빌리지-나두리상회-한아름골드아파트 후면-목포신안농협-무안초등 옆으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