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군청을 품고 있는 성동2리 「여트물」 마을은 원당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다. 원당산은 무안읍의 후주산으로 공산(현재 무안 성동공원)을 옆에 두고 있으며 예전에 활터(射亭)가 있던 곳이다. 마을 앞으로는 국도 1호선이, 옆으로는 무안-해제 간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현재의 마을구역을 살펴보면 군청 앞의 광주-목포 간 도로 아래 부분에서 목포식당-덕신이발관-백악관모텔-제일병원-지적공사-청담주상복합아파트-황토클리닉을 포함한 마을이다.
지명유래
「여트물」이라는 마을 이름은 영산강의 지류인 무안천 등의 수로를 통해 현재의 불무공원 자리에 있던 불무제(佛舞提)는 물론 유산정(遊山亭)까지 흐르던 강가의 마을 또는 물가의 마을이라고 해서 근래 들어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의 입향조는 추정하기 어려운데, 이는 무안읍성이 생기면서 형성된 마을의 특성상 친족 마을의 구성이 어렵고 또한 오래 자리를 잡고 산 성씨나 문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주로 이천서씨, 제주고씨, 무안박씨 등이 많이 살았다고 《마을유래지》에 전한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의 주산인 원당산 또는 원당뫼가 <서서 읍내를 살펴본 발자국이 남아 있다.’라고 하는 구전이 전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불리한 마을의 풍수적 지형을 타개하려고 조성한 비보 진압 풍수에 의해서 조성되었던 숲이 있어서 흥미롭다. 예전의 동문 밖 용산마을에서부터 중들(중평)을 지나 닭삯골을 거쳐 차밭머리까지 울창하게 우거진 숲띠가 있었다고 한다. 풍수지리로 봤을 때 무안이 쥐형국이고 오리정(개설피)마을이 고양이 형국이어서 쥐가 마음껏 활동하려면 고양이에게 보이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보 진압 풍수에 의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개발로 예전의 숲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만 생생히 살아있다.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예전에는 무안읍성의 동문 밖에 있다고 해서 「동문외리」(《호구총수》, 1789) 또는 성안으로 찾아온 손님이 말을 매어놓던 고마청(雇馬廳)이 있던 곳이어서 「마구실」 또는 「마기곡」이라고 불렀다. 모두 무안읍성이 생기면서 형성된 마을의 내력이 담겨있는 마을 이름이다. 하지만 영산강 물이 유산정 앞까지 들어왔던 무안천을 비롯한 수로에 해당되는 곳을 파면 지금도 어김없이 뻘과 모래가 나온다. 그래서 근래 들어 바뀐 「여트물」(1987)이란 마을 지명은 「물안골」이라고 불렸던 무안의 오랜 지리적 특성과 역사를 온전히 살린 것이라 하겠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기록을 통해 행정구역의 변경을 살펴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읍내면에 속한 「동문외리」와 「마기곡리」로 나오고, 1912년의 자료에서 무안군 외읍면 「마기곡리」만 나온다. 1917년의 자료에서 외읍면 성동리의 「동문외」, 「마기곡」이 나오며, 이후 1987년의 자료에서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의 「여트물」마을이 나와서 오늘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원래부터 무안읍성 안의 마을이었으나, 원당산 기슭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농업에도 종사했던 주민들은 주로 양파, 마늘 등을 재배하였다. 이외의 도회에서는 여러 종류의 상업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무안읍성이 철거되는 근세기를 거치면서 마을의 부침이 계속되다가 마을 맞은편으로 무안군청이 신축될 때는, 주민들이 ‘이제 우리 마을도 발전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주민들 스스로 재원을 갹출하여 기쁜 마음으로 마을잔치까지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듯이 비슷한 환경인데도 옆 마을인 서문안마을은 많이 발전하였지만, 무안군청을 품고 있는 이 마을은 별다른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주민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많이 지니고 있다.
주요시설
무안군청
마을변화
최근 들어 발전하는 마을의 변화가 많이 보이고 있다. 원래 군청 앞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무안읍 내에서 가장 발전이 안 되어 있는 곳이라는 주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실제로 50여 년 전의 모습에서 별로 변하지 않아 마을 안에 10여 호 이상의 폐가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폐가들이 정비되고 옛 도로들이 정비되고 새로운 상가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무안군에서도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으로 여겨진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 노인회, 동계, 개발위원회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경로당
전통식품/특산품
마늘, 양파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원래 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같은 <여트물샘>이라 부르는 조그만 샘이 있었다. 주민들은 그 샘에서 ‘물을 대려 먹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대려 먹는다’라는 말은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먹는다는 말이 아니고, 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오랫동안‘기다려서 먹는다.’라는 말이었다. 드물게 듣는 지역 사투리이면서 소중한 물을 기다렸던 주민들의 마음이 잘 담긴 말이라 하겠다.
동/식물
현재 백악관모텔이 있는 자리에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예전에는 해마다 풍성한 당산제를 지내기도 했던 이 나무는 나무 수형도 잘 잡혀져 있어서, 여름이면 마을주민 모두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피할 정도로 넉넉했던 나무였다. 주변에는 샘도 있어서 주민들의 중요한 생활근거지가 되기도 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는 야경꾼의 초소로 이용되기도 했었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현재 황토클리닉이 들어선 자리를 「매물머리」 라고 했다. 황토클리닉은 정부의 소도읍 육성 협약체결 사업으로 2010년에 무안읍 성동리 여트물 일대에 개발면적 84,467㎡의 공사로 진행되었다. 이 주변에서는 터미널 부지로 예정된 3000여 평의 땅이 개발되었다. 매물머리에서 고절리 쪽으로 가는 쪽에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국전쟁 때 좌익 관련 사람들을 집단으로 매장하기도 했다. 또한 용산마을 「바윗등」이라 부르는 곳에서도 한국전쟁 때 집단으로 매장했던 지역이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원님이 바위에 서서 읍내를 살펴본 발자국이 남아 있다.'라는 구전이 전하는 원당산 기슭에는 하지만 ‘원님의 발자국’ 대신 약 300여 평의 차밭 등이 있으며, 무안정수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무안군청이 있는 곳은 예전에 절터였다고 한다. 군청을 세울 당시 주변에서 수많은 기와 파편이 나왔다고 한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마을의 주산이었던 원당산(元堂山)은 《호남읍지(湖南邑誌)》(1871)에 지도 형태로 전한다. 당시 무안읍성 남문의 서쪽에 있었던 원당산에는 활터인 사정(射亭)으로 육일정(六一亭)이 있었다. 육일(六一)은 육예(六藝)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중 사(射)를 뜻하는 말로, 전국의 많은 사장(射場)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1764년 부임한 무안현감 이석하(李錫夏)가 시로 읊은 기록이 전한다. ‘如含槐陰講武場 회화나무 그늘이 휘날리는 강무장에/ 臂弓腰箭列成行 팔에는 활, 허리에는 화살통을 찬 행렬들이/ 從來海國升平久 이어가는 바닷가 마을이 오랜 동안 평화로워/ 行樂青春白日長 행락을 즐기는 젊은 날들이 길기만 하노라.’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예전에 ‘국도 1호선’이 마을을 지나갔다. 그 경로를 살펴보면 ‘단골마트-현대오토바이-덕신이발관-읍사무소-서울약국-옥천식당-무안교회’로 이어지는 길이다. 현재 서울약국 앞 농약가게가 있는 자리가 버스정류장이었으며, 당시에는 전남여객 소속 버스만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