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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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4리 운남면 신월 작성
  • 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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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89세대, 인구 135명(남66, 여69) / 2025.12.기준.
자연마을 구성
「신월」마을은 운남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운남면 내리에 속한 이 마을은 살끼미산과 솔개산을 중심으로 「농장」, 「사목동(四木洞 또는 泗木洞)」, 「나루터」, 「신월」이 합쳐져 내리 4리를 구성하고 있다. 「신월마을」과 「월악마을」을 잇는 간척지 조성사업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어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없었다. 조선조 말 다경진만호였던 「백수문(白洙文)」에 의해서 기초가 닦여지고 후에 일본인 산전(山田)이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민들은 「달애기농장」 또는 「산전이농장」이라고도 한다. 《내동 편 참고: 조선말 다경진 만호 백수문이 경복궁 중건 시 인부로 참여했는데 힘이 장사여서 큰 목재를 들어 옮기고 잘 다뤘다. 이를 보고 나라에서 상금을 내렸는데 상금으로 마을 앞 갯벌을 막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관리하여 「산전이농장」으로 불렸고 현재의 「달애기농장」이 되었다고 한다.(내동 노인회장 김성순 증언)》
지명유래
《마을유래지》에 따르면 마을의 형세가 초생달 형국이어서 「신월」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웃마을인 「월악마을」 주민들은 「신월마을」 형성이 「월악마을」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신월」이라 했다고 전한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유래지》에 따르면 ‘1700년경 나주나씨 나이관(羅二官)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과의 대담에서는 조선조 말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나이관」 씨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나주나씨 나이관 씨는 이 마을의 토호로 ‘ㄷ’자형 한옥에서 4대 8촌까지 일가를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후손들도 없고 집도 없어져 흔적이 없어지고 주민들의 의식 속에서만 남아 있지만, 햇수로 보면 그가 이 마을에서 살았던 때가 160여 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탐방에서 조사된 김해김씨의 족보에서는 김해김씨 입향조로 추정되는 김병근(1836~미상)은 1800년대 중반에 백수문 다경진만호와 친분이 있는 김백순(1806~1876)의 아들로 영광에서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또한 달성배씨 족보에서는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다던 배병린(1861~미상)의 윗대 기록사항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본다면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 조선조 말 간척지의 조성(내리 제방)과 함께 주민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최초 입향조로는 달성배씨이며 바로 뒤이어 김해김씨 김병근이 들어왔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운남반도의 끝에서 고이도를 마주하고 있는 「신월」마을은 초생달 형국이어서, 바다의 기운을 받아들여 풍요로운 해산물 자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어업기반을 갖추고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이러한 초생달 형국은 「신월(新月)」과도 연결되어 새로운 달처럼 항상 새롭게 번영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을성씨
달성배씨, 김해김씨, 박씨 등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미기재
행정구역 변경
원래 영광군 망운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에 무안군 망운면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망운면에서 운남면으로 분리되어 1987년부터는 운남면 내리에 속한 「신월」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간척지로 인한 넉넉한 농토 덕분에 운남면에서 이 마을은 부자 마을로 꼽힌다. 현경이나 무안읍에서 「운남옵빠시」라고 부를 정도로 단결심과 협동심이 강한 곳이 운남면인데 그중에서도 이 마을의 단합된 모습은 주위에서도 부러워했다고 한다.
주요시설
신월항
마을변화
지금은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에 이장을 중심으로 온 주민이 함께하고 있다. 한때 마을 어른들이 중심이 되어 농악이 부활하였으나, 이장이 바뀌고 고령화되어 지금은 중지되었다. 마을회관에는 상장과 트로피가 많이 보관되어 있는데 모두 주민들의 단합된 힘과 협동에서 얻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마을 곳곳에 김 포자배양장이 있다. 한때는 김 가공공장도 있었으나 지금은 폐업되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신월마을회관, 신월경로당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미기재
동/식물
마을 앞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소나무 한 그루가 중원 둑방 가에 자리하고 있다. 입향조가 심었으리라 추정되는 이 나무는 한때 당산목으로 활용되었으며 마을의 형성 연대가 짧을지라도 마을의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좋은 나무이다. 나무의 모습도 잘 잡혀 있어 마을의 풍광을 살려주고 있지만, 주변이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좋은 나무의 고사가 염려되나 지금은 건강한 상태이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이 마을은 해안지대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으리라 추정된다. 주변 마을인 성내리 남촌 마을의 패총지대나 내리 원동, 신흥 마을의 도요지 발견 등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원동」이나 「신흥」의 요지에서는 신라 시대 토기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 마을 주민 박판국 씨 소유의 밭에서도 오래전에 도자기 가마터로 추정되는 두 기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이 구덩이 주변에는 그릇을 구운데서 나오는 산화된 흙덩어리와 자기 파편들을 볼 수 있어 이 지역에 폭넓게 도요지가 형성되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주위에서 회청색 계통의 토기편과 해안 및 밭에 인접한 해안 단면에 백토가 남아 있어 토기의 토태로 사용되지 않았는지 생각된다. 마을 앞 농장에 있는 내리 제방 둑 밑에는 다경진만호 백수문(白洙文)의 비(길이 185, 너비 55, 두께 12.5)가 있다. 비석의 재질이 나빠 겉면이 바스라지고 있으나 전면에 희미하나마 제일 위쪽에 방언비<防堰碑>라 쓰였고, 그 밑으로 종서로 쓴 「통정대부 백수문과 子 백락준」이라 쓰여 있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글이 쓰여 있으나 풍화로 희미해져서 읽을 수가 없었다. 전면에 글씨를 인위적으로 없앤 흔적이 있어 「산전만길랑(山田萬吉郞)」과 관련된 사람들이 둑과 관련된 사항을 일부러 지우지 않았는가 추정된다. 뒷면이나 옆면엔 글씨가 없다. 주변에 간척지를 완성한 산전만길랑의 비석도 있었지만 광복 이후 없어졌다고 한다. 둑방 밑에 있는 솔개산 중턱에는 같은 면 「둔전마을」의 사립학교와 비교되는 간이사립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있었다. 「산전만길랑」이 지은 학교로서 교실이 두 칸이나 될 정도로 규모를 갖추었으며, 내리 주민뿐만 아니라 운남 주민들 중 망운의 보통학교에 갈 수 없었던 상당수의 사람을 모아 학습을 시켰다고 한다.
설화
신월나루터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보는 맞은편 산에는 후삼국 이후 고려왕조 출범 시까지 역사적, 지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왕산성」이 있다. 이 성은 신안군 압해면 「고이도(古耳島)에 있는 산성으로 「압해도(押海島)와 「지도(智島)와 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무안반도가 건너다보이는 곳에 있다. 「왕산성」의 축조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기록과 전설이 전해온 것을 보면 후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성과 관련하여 운남과 망운의 「두무치」 「인바위」 등 지명과 함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후삼국 시대 서남해안을 주름잡았던 「수달(능창)」 장군이 이곳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솔개산」은 바닷가 쪽으로 길게 능선이 점점 가늘어지다 바다와 접한 조그만 섬이 있는데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노루목이라고 한다. 옛날 어른들이 「솔개산」에서 몰아 막다른 길목에 이른 노루를 잡아 동네 회식했다고 한다.
기록물, 문헌
마을의 역사가 짧아 마을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동계(洞契)책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왔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마을 이장의 업무 교대 시 인수인계가 잘되지 않아 관리 소홀로 잃어버려서, 마을의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가 현재에는 전하지 않아서 안타깝다.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능창(후삼국 시대 장군)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1. 《마을유래지》(무안군, 1987) 2. 《마을역사자료조사》(무안문화원, 2017) 3. 《무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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