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작성자 정보

  • 덕산2리 해제면 내분 작성
  • 내분

  • 작성일

컨텐츠 정보

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47세대, 총71명(남36, 여35) / 2024.5.기준
자연마을 구성
내분(內盆)은 산고지 쥐머리와 함께 덕산2리에 속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두 개의 쥐머리산이 있다. 하나는 한자로 설두산(鼠頭山)이라 부르는 파평윤씨 문산이고, 또 하나는 순수하게 쥐머리산으로 부르는 함평이씨 문산이다.
지명유래
내분(內盆)이라는 지명 유래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두 가지 의견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원래 내분을 포함한 일대의 지명이 분매동이었으나 나중에 위치에 따라 외분, 매곡, 내분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마을형성(입향조)
원래 이 마을에는 장수황씨가 윗몰에서 살았다. 지금도 마을 뒤 황등이라는 곳에 황씨가문의 선산이 있으나 현재 마을에는 황씨가 한 가구도 없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황씨들이 마을을 떠난 것은 양매제방(내분제방)을 막으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황등이 거북이 형국인데 원을 막아 물길을 끊어버리니 더 이상 거북이가 살수 없어서 모두 마을을 떠났다고 한 것이다. 이 마을의 최초의 입향조는 파평윤씨 윤형은(尹亨殷,1647 ~1707, 자-敬老, 호-梅隱)이다. 원래 함평군 해보면 모평 마을에서 세거하였으나 입향조 대에 마을에 병이 들자 가족들을 이끌고 내분매 마을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공은 정착하면서 집 앞에 매화나무를 심고 그것으로 호를 삼았다. 공은 부귀를 멀리 하고 후손들의 교육에 힘을 쏟으니 주변 마을에서 모두 높이 받들었다. 뿐만 아니라 별도 재산으로 55마지기(두락)의 논을 마련하고, 그 수확물을 저축하여 자손의 등과(登科) 때나 흉년에 쓰도록 하는 규범을 정하기도 하였다. 입향조의 선친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의 장수 3명을 무찌르는 등 큰 공을 세웠던 분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부끄러워해 함평군 해보면 모평으로 이거하였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은 봉대산 자락 외등 잔등에 자리하고 있다. 와우형의 형국이라 뿔당골 쇠꼬리 등 소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마을성씨
김씨 이씨 윤씨 등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마을유래지》에는 ‘마을이 이루어질 때 양매리 뒤편에 자리한 마을이라 해서 ‘뒷몰’이라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에서는 윗몰, 아랫몰, 뒷몰로 불려지기도 했다. 이후 내분매(內盆梅)로 고쳐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내분(內盆)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행정구역 변경
1789년 《호구총수》와 1912년, 1917년의 자료에는 내분매 동으로 나온다. 이후의 자료에는 내분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살개라고 부르는 바닷가에서 나방이라 부르는 조개가 많이 잡혔다. 조개철이 되면 해제면 사람들이 다 왔다고 할 정도 로 사람들이 많이 와 나방을 잡으러 다녔다. 지금은 어쩌다 집힐 뿐 예전의 흥성함은 없다. 이장님 말로는 김 양식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였다.
주요시설
분매사(파평윤씨 사우)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김 양식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 앞 저수지 아래는 앞들로 불리는 간척지인데 양매제방 을 쌓기 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지금도 논을 조금만 깊게 파면 뻘밭에서 아름드리 통나무 들이 나온다. 이곳에는 녹나루(녹노루)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고 있다. 단지 산고지 마을 끝에 위치하는데 일설에는 덕산리에 백제시대 무역항이 있었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윗몰고랑이라 부르는 곳에서 도자기를 비롯한 돌도끼 돌칼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마을 북쪽 황등 앞에 있는 강선골(降仙洞이라고도 함)이 있으며 북쪽에 있는 들로서 대양갯들, 쥐머리산 앞의 절들 등의 이름이 남아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음력 1월 15일 정오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신격은 당할머니이며 마을 뒤편에 있는 팽나무이다. 샘거리제를 같은 날 지낸다. 지금은 곳곳에 지하수 개발로 샘의 물줄기가 많이 약해졌으나 샘을 식수로 사용할 때는 용천수로 부를 정도로 수량이 많았으며 물맛도 좋았다. 하지만 샘물이 말라버리자 메워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불상사가 마을에 자주 일어났다. 마을의 젊은 사람은 물론이고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이유 없는 횡액을 당하자 주민들의 총의로 다시 샘을 복원하여 그때부터 당산제와 같이 샘거리제를 지내고 있다. 이후부터 마을은 평안하고 어려운 사람을 서로 돕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주변에 예절 바른 마을로 주변에 알려졌다
유물, 유적
윗몰고랑이라 부르는 곳에서 도자기를 비롯한 돌도끼 돌칼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매곡에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는 밀양박씨열부비와 윤상순기행비가 있다. 효자 윤상순(1886 ~1929)은 어려서부터 근면하여 부모 공양함이 남달랐고 커서는 생선을 좋아하시는 부모님께 매일 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부친이 중병을 얻자 단지를 하면서까지 정성을 다해 부친의 목숨을 연명하였다. 기행비는 1971년에 세웠다.
설화
양매제방(내분제방이라고도 함)의 수문통 옆에 중무덤이라는 지명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 제방을 쌓을 때 처음에는 둑이 잘 쌓여 지다 마지막 절강 공사를 할 때 웬일인지 자꾸 제방이 무너졌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쌓아도 어느 순간이면 무너져버려 공사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그런데 마침 쥐머리산에 있는 절의 중이 지나는 것을 보고 관계자들이 중을 제방 속에 밀어놓고 제방을 쌓자 무너지지 않았다. 제방을 완성한 관계자는 중의 희생을 안타까이 여겨 수문 옆에 중을 위한 무덤을 조성한 것이 중 무덤이다. 전에 수문 보수 공사할 때 무덤을 헐어버려 지금은 지명만 남아 있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마을의 왼쪽 언덕에 분매동(盆梅祠)이 있다. 원래는 함평군 해보면 모평에서 1750년에 임천사로 지었으나 1868년에 훼철되었다. 이후 1919년에 현재의 내분 마을 자리로 옮긴 것이다. 윤길, 윤덕생, 임천(林泉) 윤예형, 기와(箕窩) 윤지원(1615~1647) 등을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2월 20일에 제사를 지낸다. 두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85년 현재의 새 건물을 구지의 서편에서 이건하였다. 원래 분매사 단청이 유명했으나 옮기면서 단청이 훼손되었다. 구지에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구분매사가 중문지와 함께 남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중문과 담장으로 둘려져 있다. 사당 전면의 우측으로 상절당(尙節堂)이란 당이 있다. 이곳은 분매사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서당으로 마을의 자손과 인근의 학동들이 배우는 배움터였다. 서두산에는 1978년에 개축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원모재가 있다. 쥐머리산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추사재가 있다. 1987년에 지었으며 재각 안에는 두 개의 현판이 있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관련자료

  • 이전
    작성일 2026.10.19 10:52
  • 다음
    작성일 2026.10.19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