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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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산3리 해제면 사야 작성
  •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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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26세대, 총39명(남20, 여19) / 2024.5.기준.
자연마을 구성
사야는 덕산3리에 속하는 마을로 광산김씨의 동족 마을이다. 원래 마을 이름이 샛들로 불렸다. 샛들은 슬산과 내분마을 사이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사잇들의 의미다. 샛들이 현재의 마을 이름인 사야로 변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로 보인다.
지명유래
사야(沙野)의 지명 유래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사잇들의 음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마을의 지형적인 이유로 모래가 많이 쌓인 데서 비롯된다. 마을에서 대양갯들이라고 부르는 저수지 밑의 들판은 일제강점기 때 간척사업으로 이루어진 들이다. 간척사업 이전까지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유난히도 모래가 많이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간척이 된 지금도 비가 조금 많이 오면 마을 앞 저수지에 모래가 가득 차 버린다. 해서 모래가 쌓인 들이라는 의미인 사야(沙野)로 마을이름을 정한 것이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에 처음 자리를 잡은 사람은 광산김씨 김수정(金守渟)이다. 김수정(1759~?, 자-자직, 호-직재)은 김국광의 9세손이며 영암 금정면 연보리에서 대대로 살았으나, 집안 우화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 마을로 들어온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수정은 가난하지만 극진한 정성으로 부모님을 공양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 마을의 설촌(設村) 연대를 보면 1700년대 후반으로 보인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덕산리 일대가 소(牛) 형국이다. 마을 입구는 뿔당골이며 앞에 있는 잔등은 소의 등에 해당한다. 소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손고지라고 부르는 곳이다.
마을성씨
광산김씨 동족마을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소가 풀을 밟고 있는 형국에 마을이 있다고 해서 처음엔 사야(莎夜)라고 했다가 사야(砂野)로 그리고 현재의 사야(沙野)로 변했다고 한다.
행정구역 변경
1789년의 《호구총수》나 1912년, 1917년의 자료에는 사야라는 마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1987년 행정구역 개편이후 자료에 사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은 20여 세대 중 한 세대만 능주최씨일 뿐 모두 광산김씨이다. 마을에 자랑거리가 많이 있다. 우선 주민들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 한때는 40명의 남녀가 대학에 다닐 정도로 대학생 마을이었다. 이러한 교육열이 고시 합격자를 4명이나 배출하고 이 마을 출신들이 정 재계에 진출해서 고향의 이름을 빛내게 하였다. 두 번째는 근면하고 부지런하다. 아끼고 절약할 뿐 아니라 농번기가 따로 없을 정도로 모두 부지런히 일해 80이 되어도 노는 사람이 없다. 세 번째는 부부의 금슬이 좋다. 다른 마을에 비해서 이 마을에는 홀로 사는 노인이 몇 세대밖에 없다. 70이 넘은 노인들이 많아도 대부분이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살고 있다. 네 번째는 주민들이 단합이 잘 된다. 마을에 현안이 있을 때 미루는 적이 없었다. 마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로 양보와 협조를 해 주민들 간에 서로 얼굴을 붉힌 적이 없다. 다른 마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화합이 잘되고 있다. 해서 해제면에서 가장 먼저 새마을 사업을 시작하였다.
주요시설
미기재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은 옥녀탄금의 전설을 안고 있는 옥녀봉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앞에는 산고지라 부르는 내분 마을의 뒷산이 있다. 현재의 옥녀봉은 토사 채취로 예전의 모습을 잃었지만 덕산리의 주봉(主峰)으로서 형태는 갖추고 있다. 마을 왼쪽에 구미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두세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한 가구도 살지 않는다. 전부터 덕산리 일대의 바다는 황금어장이었다. 살캐라고 부르는 곳에서 잡히는 나방(조개의 일종)은 봄이면 해제면의 전 주민들이 와서 캐 가는 귀물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잡히는 낙지는 해제 갯벌 낙지의 명성을 잇게 했다. 주민들 중 대부분이 상가래(낙지를 잘 잡는 사람. 가래는 낙지잡이 도구)에 해당됐다. 농지가 별로 없는 주민들은 낙지잡이를 통해서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토지를 사는 등 재산을 형성했다. 부부가 같이 나가면 대체적으로 5접 이상씩 잡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도리포에서 닭머리까지 이어지는 해태 양식으로 인하여 예전의 황금어장은 찾아볼 수 없다.
동/식물
당산목(팽나무)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마을 북쪽에 종이장수가 겨울에 종이를 팔고 가다가 얼어 죽었다 해서 종이장수 고랑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마을에서 별도로 지내는 당산제 등은 없지만 5월 8일에는 경로의 날로 정해 주민들 모두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한다. 또한 여름철에는 복달임으로 두세 차례씩 행사를 한다.
유물, 유적
마을 중앙에 보호각을 갖고 있는 두 기의 비가 있다. 하나는 「삼성당광산김공유적비」다. 삼성당의 휘는 재관이며 자는 이율(而栗)로 1944년에 건립되었다. 또 하나는 「도암광산김공효행비」다. 도암의 자는 원일이며 1944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그외 1974년에 제자들이 세운 「사은김공(1879~1947)유허비」, 1967년에 세운 「효자김영두(1891~1967)실적비」, 1962년에 세운 「나주정씨(1891~1975)절효비」, 1967년에 세운 「효부 유인노씨(1887-1959)실적비」 등이 있다.
설화
오래 전 마을에는 아름드리의 당산나무가 있었다. 당산제도 지내고 주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100석 지기나 하던 부자가 당산나무를 베어버리고 그곳을 농경지로 만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날 저녁부터 그 부자에겐 이상한 일이 생기더니 급기야는 몇 년 가지 못해 가지고 있는 전답을 모두 잃었다. 주민들은 마을의 수호목인 당산나무를 베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지금은 마을 뒤에 새로운 당산나무가 있는데 앞마을인 내분도 뒷잔등에 당산나무가 있다.
기록물, 문헌
김용술 전 이장 댁에서 많은 자료를 발견하였다. 우선 『공목(共睦)이 짝을 지어 한성(漢城)을 날라가다』라는 기행 문집이다. 1974년에 해제 주민들이 서울에 갔다 온 느낌을 주민 인 김옥수(호-옥봉)씨가 기록한 것이다. 또한 세 권의 유고집이 있다. 하나는 광산김씨 김상은이 지은 『우석유고』이다. 김상은은 동해 김훈의 문인이다. 두 번째는 파평윤씨 윤상대가 지은 『완재유고』이다. 윤상대는 중암 김평묵의 문인이다. 마지막으로 이 마을 주민인 김경현이 지은 『사은유고』이다.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사은(沙隱) 김경현(1879~1947)은 산길리 신등 강율수, 학송리 학암 춘사 김원표, 양매리 매곡 잠와 김용수와 함께 해제 4선생에 해당 될 정도로 학문이 깊은 사람이다. 특히 사은 선생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질과 기풍을 지녀 주위의 칭송을 얻었고 평생 동안 효제 충의 돈후 주신(周愼)을 삶의 신조로 삼았다. 경서는 물론 문학과 역리에도 밝았으며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선생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예의를 다했다고 한다. 또한 백학산, 월송제, 취매정 등의 경관을 읊은 『해산시사』가 있었다. 주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중요한 자료인데 당시에 내로라는 문인들이 해제의 자연 경관을 보고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향교에 올리는 효부 천장도 있었다. 주민 중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의병운동을 했던 독립유공자도 있었다. 사은 김경현 선생의 동생인 김두현(1881-1917. 자-성칠, 호-절산)이다. 전북 순창지역에 서 활동하다 순절했으나 그의 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최근 인물로는 문재인 정부 때 재경부차관으로 퇴직했다가 이재명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 중인 김용범(1962년생)이 있다. 김용범은 해제초등학교, 광주 대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워싱톤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하였다. 행정고시(30회)로 1987년부터 공직을 시작하여 2025년 6월 6일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되어 공직을 수행 중이다. 김용범 실장과 대동고 동창인 송영길(전 민주당 대표)의 말에 의하면 고교시절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하였다.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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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0.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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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0.19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