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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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풍2리 해제면 진목 작성
  • 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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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57세대, 총94명(남43, 여51) / 2024.5.기준.
자연마을 구성
이 마을은 진목 속동, 산너매, 새모실로 이루어졌으며 해제면에서 도리포로 가는 만송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을 경계로 속동과 큰동네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문헌인 《호구총수》에 견주어 풀어보면 속동은 내진목리에 해당되고 큰동네는 외진목리에 해당된다.
지명유래
「진목」은 지명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마을유래지》에는 ‘마을 앞에 입향조가 심었다는 참나무가 번식하여 12그루가 무성하게 자라 마을 이름을 참냉기라 불러왔다. 이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개편으로 참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진목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냉기는 참나무 참남기에서 변형된 발음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참나무가 아니라 참죽나무가 있었으며 12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만 참죽나무고 나머지는 팽나무였다고 한다. 참죽나무는 가죽나무라고도 부르며 새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목재는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재로 쓰인다. 현재 참죽나무는 없고 어린 묘목만이 몇 그루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유래는 언어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마을 앞길은 도리포로 가는 길목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해제나 지도에 사는 사람들이 영광이나 함평으로 갈 때 이용하는 포구가 도리포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해제 쪽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등성이를 질목이라 불렀고 그곳에는 장승이 있어서 등성이를 장승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현재 장승은 없고 지명만 남아있다. 질목은 길목의 사투리이고 길목이 진목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세 번째는 목이 길다는 긴 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 입향조는 함양여씨 여경운(呂敬雲, 1627~1704, 자-치우, 호-해월당)이다. 원래 함양여씨들은 충청남도 연기에서 세거했다. 이 중 일부가 여천복(1574~1637) 대(代)에 정유재란을 피해 함평 고양촌으로 내려왔다. 입향조인 경운은 여천복의 아들로서 광양 현감을 지내다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화를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함평에서 이곳으로 와 정착한 것이다. 공은 학식이 높았으나 다시 환로에 나서지 않고 후손들을 가르치며 자연 속에 묻혀서 일생을 보냈다. 무안군에서 여씨들은 이 마을과 천장리 장동에 4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니성산의 줄기인 한복산을 주산으로 하고 멀리 봉대산을 마주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간척으로 형성된 농지를 바라보고 있는 와우형의 형국을 갖추고 있다. 해서 소고삐 소너매 등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또한 멀리서 보면 배 형국이어서 집안에 우물을 파거나 마을에서 우물을 파면 재물이나 좋은 기운이 빠진다 하여 우물을 파지 않았다.
마을성씨
여씨는 서너 집만 있고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미기재
행정구역 변경
1789년《호구총수》에는 함평현 해제 외진목과 내진목리로 나온다. 1912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해제면 진목(眞木)동으로 나오며 1917년엔 해제면 만풍리 진목동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은 해변산중이라 부를 정도로 바닷가에 살면서도 수산물과 인연이 없어 대부분은 사서 먹어야 했다. 예전에는 도박 등이 심해 마을이 황폐했으나 지금은 주민들이 서로 돕고 화합할 뿐 아니라 근검절약으로 가세를 일으켜 해제에서도 부자 마을에 속한다. 농협에 빚이 없는 마을이며 주민들간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화목하게 살고 있다. 특히 외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잘 적응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심이 후하고 넉넉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는 대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주민들 간 신뢰를 하고 있었던 마을이다. 시골 마을치고는 드물게 오폐수 시설을 갖춰 앞서 가는 친환경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해서 1960년대에는 무안군에서 가장 앞서가는 모범마을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주요시설
마을회관
마을변화
미기재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 입구에 만풍보건진료소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원래 이 마을은 12그루의 나무가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12라는 숫자는 음양오행설의 십이지에서 비롯된 말로 길흉을 판단하는데 쓰인다. 또한 방위신의 역할도 하는데 잡스러운 기운을 막는 수호신으로서의 숫자이기도 한다. 이런 것으로 봤을 때 이 마을에 심어졌다는 12그루의 당산목은 잡스러운 기운이나 전염병을 예방하는 방위목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지금은 두 그루가 남아있다. 참고로 무안읍 성암리 성암은 28개의 고인돌이 하늘의 별자리를 따라 놓여져 있는 마을이다.
동/식물
당산목인 팽나무는 수령이 300여 년이 넘었으며 둘레만도 5m가 넘는 수형이 잘 잡힌 나무이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소고삐, 새마실, 방아등, 소너매, 구석들, 쩍골, 뒷골, 남생이 골, 성적골, 개금곡(금 나온 골짜기) 신풍마을과 경계에 있는 곱은치(치 형국으로 주막이 있었다), 딱정기 왁새, 장승백이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예전에 영춘재라 부르는 서당이 있었 으나 현재는 없다. 또한 새샘, 속동샘, 들샘(쌍둥이샘), 골샘 등 5개의 샘 이름이 남아있다. 집안에 우물을 파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특이하게 우물터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인상이 깊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본래 마을에 참죽나무를 포함한 7당산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낼 때 이 당산나무를 찾아서 지냈다고 한다. 예전에는 뱀 형국의 주사(駐蛇)거리라 부르는 곳에서 제를 크게 지냈는데 한동안 지내지 않다가 10여 년 전부터 매년 2월 1일 마을 뒤 당산나무에서 다시 지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지내지 않는다.
유물, 유적
마을 앞 소고삐라 부르는 곳에서 옹관묘와 석곽묘 등이 발견되었다. 주민들이 밭을 경작하다 발견하였는데 이곳에서 칼 등 예전의 생활용품 등이 많이 발견된 것이다. 이 마을은 당산제를 다시 지내고 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1950(단기 4283년)년부터 쓰기 시작한 동계책이 있었으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2003년 《목포대학교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곱은치 넘어 진목저수지와 광산김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 유물 산포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적갈색연질토기편, 회백색연질 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이진표 前 교수(舊 목포사범학교 학장,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 가지치기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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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0.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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