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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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풍3리 해제면 신풍 작성
  • 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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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46세대, 총89명(남42, 여47) / 2024.5.기준.
자연마을 구성
신풍은 만풍3리에 속한 마을로 아래덤, 윗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덤은 민머리, 신덕으로 불렸으며 윗덤은 신풍으로 불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신풍으로 불린다.
지명유래
신풍(新豊)의 유래는 여러 물산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예전부터 이 마을은 소금 쌀 나무 등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생산된다. 마을 앞들인 둔대들에 대한 두 가지 지명 유래가 있다. 하나는 풍수적 지형에서 나온 말인데 만풍리를 감싸고 있는 니성산의 줄기에 해제 8명당의 하나로 부르는 천마시풍의 맥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천마시풍의 혈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 말(馬)을 찾아 들판에서 둘레둘레 찾아보았다고 해서 둔대라고 했다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자리 잡은 성씨는 남양홍씨이나 지금은 한 세대도 없다. 얼마 전까지 마을에 홍씨들의 흔적인 묘가 있었으나 그마저 없다. 이후에 들어온 성씨가 아래덤은 함평 대동에서 온 광산김씨 김태열(1738~1776, 자-열지)이 들어왔다. 윗덤은 나주 다시 동당에서 온 하동정씨 정달득(1752~1793, 자-통여)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풍수지리(마을형국)
풍수적 지형에서 만풍리를 감싸고 있는 니성산의 줄기에 해제 8명당의 하나로 부르는 천마시풍의 맥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마을성씨
김씨 정씨 등 복합성씨 마을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미기재
행정구역 변경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함평현 해제 신풍리가 나온다. 이후 1912년의 자료에도 무안군 해제면 신풍리로 1917년의 자료엔 무안군 해제면 만풍리 신풍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샘골이라 부르는 곳에 샘이 있다. 지하수가 개발되기 전에는 만풍리의 진목 입석 마을에서도 모두 이 샘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물맛도 뛰어나 이 마을뿐 아니라 주변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샘이다. 주민들은 정월 보름이면 이 샘물을 지키기 위해 마을의 온 부녀자가 나서기도 했는데 이른바 ‘물 타러 간다’는 민속놀이의 한 형태다. 이 물의 약성이 좋아서 60여 년 전에 천연두가 한창 성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이 물을 떠다가 가족들의 몸을 씻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은 그 맛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토질이 비옥하고 벼가 자라는 알맞은 기후에 특히 물이 좋아 미질(米質)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주요시설
미기재
마을변화
이 마을은 점차 인구가 늘어나는 마을이다. 함해만의 풍부한 어족 자원과 김양식이 성공을 거두면서 노동력과 의욕만 있으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해서 주변 마을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 노인회, 어촌계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김 양식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은 부엉산(봉산, 부흥산으로도 불림)을 주산으로 하고 죽방산(쭉방산)을 안산으로 하며 앞은 둔대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부엉산은 하동정씨의 산으로 예전에는 아름드리의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으나 현재는 조그만 나무들과 잡목이 자라고 있다. 부엉산 정상에는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범바위 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이 산에는 지네머리와 누에머리의 지형이 있어 명당 터를 안고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산의 모양이 부엉이를 닮았을 뿐 아니라 꼭 이 산에서만 부엉이가 앉아서 울거나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저수지가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봉산과 죽방산 사이에 있는 쭉뱅이 고개, 마을에서 입석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샛잔등이 있으며 안마실, 배다리, 절터골, 큰구렁골, 곱은치, 목화 등 물산을 배로 실어 날랐던 미영퉁바위 등이 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예전에는 마을에서 2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크게 지냈다. 주염나무인 당산 하네와 팽나무인 당산 할멈(둘레 2m 50cm)이 있어서 샘굿을 비롯해 거리굿까지 지냈으나 당산하네가 바람에 쓰러지고 마을에 사람이 없으면서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특히 당산제를 지낼 때 당산독에 줄감기를 소홀히 한 해(年)는 늑대들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다시 당산제를 지내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유도 없이 젊은 사람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이 아프거나 변고를 당하기 때문이다. 당산할멈 옆에는 당산독이 지키고 있다.
유물, 유적
목포대학교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신풍저수지를 지나 남쪽으로 2㎞ 떨어진 지점에 신풍석실분 2기가 발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발견 당시 이미 도굴꾼에 의해 봉분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수습된 유물은 철도자와 토기편들이다. 범바위산의 큰 구렁골 등 두 군데서 신풍유물산포지가 발견되었다. 모두 바다와 접해 있는 지역이며 현재는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회청색과 회백색경질토기 편이 발견되었다. 죽방산 아래에는 점등 또는 사기점이라 하는 도요지가 있었다. 마을에는 1972년에 세운 노촌임공임노춘(1893~195 0)유적비와 1982년의 열부금령김씨(1902~1982)기행비가 있다. 1991년의 하동정씨세덕비와 1988년의 광산김씨 세덕비가 있으며 2002년의 하동정씨부부쌍효기적비와 1988년에 세운 함평노씨기행비가 있다.
설화
이 마을에는 두 개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죽방산의 벼락바위전설이고 다른 하나는 부엉산의 지네머리 전설이다. 예전에 죽방산에는 절이 있었다. 해서 절 토골로도 불렸는데 절 밑에는 약효가 뛰어난 샘이 있었다고 한다. 스님만이 아니라 주변 마을의 주민들도 그 물을 즐겨 마셨다. 그러던 어느 더운 날 아이를 업은 부녀자가 그 물의 시원함을 보고 무심코 옷을 벗고 목욕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아이와 엄마는 바위로 변했는데 그 바위를 「벼락바위」라 한다. 1978년 새마을 사업 일환으로 속칭 외국차관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이 돌이 손상을 입어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두 번째는 지네머리 전설이다. 부엉산에는 함해만 쪽으로 뻗은 부리가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네머리 형상을 하고 있어 지네머리라 부른다. 지네머리는 도리포 뒤 닭섬(닥섬)과 서로 마주 보고 있어 풍수에서 말하는 닭과 지네의 상극을 취하고 있어 예로부터 이곳에는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졌다. 오래전부터 어렵게 살던 함평사람이 신풍 마을의 화염(火鹽)을 사서 함평에다 팔아 연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해만을 지나면서 지네머리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그 자리에 묘를 써서 발복했다는 내용이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일제강점기 때 주민 중 의병활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북한군에게 부역했다는 잘못된 정황을 믿고 경찰에 의해서 이 마을 주민을 포함한 만풍리 송계리 주민 7명이 총살을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희생자의 후손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해 고인들이 억울하게 죽었음을 밝혀냈다. 주민인 정찬학씨를 포함한 후손들은 고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당국으로부터 배상 판정을 받았다. 마을 뒤에는 군에서 보조를 받아 설치한 하동정씨 가족묘가 있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영퉁바위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이 마을 시인 김용훈 작시 ‘해들누리(해가 드는 따뜻한 세상) 신풍’이란 시를 소개한다. <해들누리 신풍(新豊)> 머언 먼 옛날 봉산(鳳山) 솔개 바람 타고 오순도순 샘골 밑 웃덤 아래덤 산 넘어 한 몰이요 기름져 말을 풀어 둔대들 이루니 앞갯과 뒷갯 바람이 분다 머슴새 쯧쯧쯧 소몰이 하면서 여직도 곱은치 올손 갈손 넘나드니 연년세세 해들누리 신풍이어라 - 김용훈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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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0.19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