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간리는 해제면소재지로 현경면에서 신안군 지도로 향하는 2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양학마을은 1987년에 양간2리에서 양간4리로 분리되면서 탄생한 마을로 행정구역 상 신정5리에 속한다. 학머리(학의 머리)는 해제면사무소가 들어있는 또뚜레미를 향하고 있으며 부리는 돌개저수지에 접하고 있다. 특히 또뚜레미는 두 마리의 두레미가 있다는 말로 면사무소 아래에 샘이 있었는데 그곳에 두레미가 살았다고 한다. 금광이 활성화될 때는 면사무소 아래에 난장을 트기도 했다.
지명유래
마을이 봉대산의 지맥을 이어 받은 곳으로 두 마리의 학이 어울려 비상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양학(兩鶴)마을이라 하였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의 입향조는 6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는 전주 이씨 이병무이다. 특히 60여 년 전까지는 마을의 대부분이 갯벌이어서 몇 가구 살지 않았다. 그러나 광산리 성포에서 용학리 이방까지 둑이 막히고 농지조성과 매립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봉대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의 지형이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모습인데 한 마리는 이방 마을 쪽을 향해, 또 한 마리는 대천동 쪽으로 비상하는 형상이다.
마을성씨
이씨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양간이란 지명은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다리를 중심으로 동쪽은 개니(가양이란 마을 이름에서 변화, 개웅의 끝이라는 개미의 뜻을 지니고 있음), 서쪽은 고읍내라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시 마을의 중심인 현재의 동아약국 앞에 나무다리가 있어 양간이라 하였다. 주민들은 다리독으로 부르기도 했다.
행정구역 변경
행정적으로 해제면소재지를 중심으로 양간리라 불러왔으나 점차 인구가 늘면서 분리하게 됐다. 즉 30여 년 전부터 구도로를 중심으로 양간1, 양간2, 양간3, 양간4로 나눴다. 현재는 별도로 양간리라는 법정리를 두지 않고 양간1 양간2는 양매리로, 양간3 양간4는 신정리에 속하게 했다. 양학마을은 1987년에 해정구역 개편으로 양간2리에서 양간4리로 분리되었고, 행정구역 상 신정5리에 속한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해제면의 중심지로서 농업과 상업이 어우러지며 비상하는 학의 모습처럼 날로 발전하고 있는 신흥마을이다. 해제면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로 협조와 단합이 잘 이뤄지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빈 집이 없다.
주요시설
면사무소, 무안공공도서관, 농협, 보건소지소, 의원 3곳, 약국 3곳, 마트 3곳 등이 있다. 버스정류장과 해제고등학교 신정교회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해제면의 중심 마을이 되었다.
마을변화
양간마을과 양간4마을 도로변에 형성되고 있는 해제시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경 처음 양간2마을인 우체국 밑에서 시작하였다. 그 후 중앙교회 옆으로 옮긴 후 활성화되었다가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시장기능이 폐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시장의 형태는 남아있어 현재의 도로변에 개설된 것이다. 금광이 활성화되던 시기에는 면사무소 아래에서 난장을 트기도 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공동이용시설
우체국, 무안공공도서관, 농협, 보건소지소, 면사무소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원래는 마을주변이 갯벌이었으나 60여 년 전부터 둑이 막아지면서 육지가 되고 농경지로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는 매립하여 주거지로 이용하였다. 이후 1981년도에 새마을 소도읍 가꾸기 사업의 일환인 취락구역으로 지정되어 주거지역으로 고시되었다. 개발되기 전에는 8가구 정도 모여 살았으나 외곽도로가 개설되고 「소도읍가꾸기」 사업이 결실을 맺으면서 점차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는 또뚜래미가 있다. 또뚜레미는 앞으로 또 뜰(들)이 생긴다 해서, 혹은 또 ‘두레미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따박재(땁박재)가 있다. 해제고등학교 뒤에 있는 재로 예전에는 재가 높아 힘들게 넘어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땁박 넘어간다 해서 땁박재로 부르기도 한다. 다른 주민은 고읍내에서 호행이 고개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고도 한다, 해제고등학교 터를 고내(고니)곡이라 한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내곡이라는 지명은 알고 있다. 호행이(回雁)가 있다. 지형이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앞에 있는 들을 호행잇들이라 한다. 예전에는 독배기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마을의 역사가 오래지 않아 당산제 등 전통놀이는 없으나 정월 보름에는 지신밟기 행사를 한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이 행사는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전체의 놀이다.
유물, 유적
면사무소 앞을 비롯한 마을 내에 김복수공덕비, 윤형중송덕비, 옥만호공적비, 김채수기념비, 노인상기념비, 윤상식유적비, 이화백행적비 등 7기의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