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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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학3리 해제면 이방 작성
  • 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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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33세대, 총48명(남27, 여21) / 2024. 5. 기준.
자연마을 구성
용학3리는 동산 지사지 이방마을로 이루어졌는데 통칭 이방 마을로 불리고 있으며 70년대 초 옆 마을인 장성마을에서 분리되었다.
지명유래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을이름인 이방(梨芳)은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의 형성은 옆 마을인 장성마을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장성마을은 1670년 무렵 주철의 후손인 주연일이 들어와서 마을을 이루었는데 이 마을은 주연일의 후손인 주성로가 1700년대 중반에 장성마을에서 이 마을로 이주하면서 이루어졌다. 신안주씨들의 가승보에 나오는 주성노(朱聖魯 31세. 자-건조, 호-이암.1739-1799)는 영조 때 사람으로 예빈시주부라는 벼슬을 증직 받았다. 하지만 《마을유래지》에는 ‘1890년경 장성 마을의 입향조 주철의 후손인 주성로(朱星老)가 이곳으로 처음 입향하였으며 그 후 1910년경 밀양박씨 박덕규가 해제 양매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또한 《무안세적지》에는 최초 입향자로 밀양박씨 박경환(자-지원, 영조 代, 밀양인)으로 장흥 고읍에서 세거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입향조의 한자도 틀리고 입향 연대도 틀려서 믿기 어렵다. 참고로 무안에 온 신안 주씨의 가계를 보면 신안주씨 삼강비에 나와 있는 주몽룡(朱夢龍 22세. 1561-1633, 자-雲中, 호-龍巖)의 뒤로 주혁달(23세)-주봉명(24세)-朱喆(25세. 자-明仲, 호-海山, 효종 代)-주연일(27세)-朱聖魯(31세. 자-건조, 호-梨庵. 1739-1799)로 이어진다. 주철은 주몽룡의 증손으로 나주에서 세거하다가 시절이 어지러워 장성마을에 정착하였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이 마을은 동산(東山)을 주산으로 하고 마을 앞에는 1983년에 간척으로 형성된 넒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뒷산인 동산은 옥토망월(玉兎望月)형국(암토끼가 달 속에 있는 수토끼를 바라보는 형국으로 옥토가 달을 바라보는 것은 수토끼에 의해 잉태하기를 원하고 있는 의미의 명당이다)으로, 이산을 바라보고 있는 양매리의 토치 마을에서는 망월산(望月山)이라 부른다.
마을성씨
혼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조선시대 문헌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배꽃과 관련이 없는 이방(移方)리로 나오며 1912년과 1917년의 자료에는 이방리(二方里)로 나온다. 하지만 1947년에 만들어진 신안주씨 가승보에 처음으로 배꽃을 나타내는 이방(梨坊)으로 나온다. 하지만 주민들은 왜 배꽃과 관련된 이방(梨芳)이라 표기하고 있는지 지명의 유래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단 예전 마을 뒷산에 독배 나무가 있어 그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으로 지명의 변화를 살펴보면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함평현 해제면에 도성리 이방리가 나온다. 1912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해제면 기룡동, 도성동, 장성 등 이방리 학천동 등이 나온다. 이어 1917년과 1987년의 자료에도 해제면 이방리 학천동으로 표기되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마을의 주된 소득원은 양파와 양배추이며 간척으로 인한 농지가 많아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또한 30여 세대 가운데 기업농을 추진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으며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많은 장수 마을이다. 키우는 축산농가가 9농가(박성순, 이광준, 서정례, 박만순, 박종운, 이병럐, 이병민, 윤영옥)이며,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이주 와서 사는 주민도 있다.
주요시설
소를 키우는 우사가 많은 마을이다.
마을변화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였다. 마을 옆 점등이라 부르는 곳에서 구운 질그릇과 옹기들을 실어 외지로 나르고, 주민들이 목포 등지로 나갈 때도 이용했던 나루다. 동산재 주변에 있었던 점등은 가마가 두 개가 있을 정도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바닷길을 이용한 운송수단과 질 좋은 흙들이 있어서 한때는 크게 번창하였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가 있다.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 앞 간척지는 1950년대에 나판수씨가 용학리와 죽도 천장리를 연결하는 매립공사를 시작하다가 1965년 이를 이어 제주출신 재일 동포인 김문평(금산전자사장)씨가 5억여 원을 투입하여 1982년에 완공한 것이다. 이로써 850ha의 농지의 농지가 형성돼 용학리는 물론 천장리, 광천리, 양간리, 주민 등이 큰 혜택을 보았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마을 뒤를 가리키는 뒷골 지사지 점등 방아들이 있으며 초분골인 아강골도 있다.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마을에 남양홍씨 효열문과 일산 주선태 선생 공적비가 있다. 효열문의 주인공인 홍씨는 신안주씨 가문에 시집 와서 젊은 나이에 홀로 되었지만 일심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가문을 번성시켰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삼문을 포함한 전면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파평윤씨 재각인 동산재가 있다. 재각 안에는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재각은 동산에 있는 소나무들이 태풍에 쓰러졌을 때 그 나무로 지은 것이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농수로(현가수)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뒷골에 조그마한 둠벙이 하나 있는데 한국전쟁 때 사람이 죽은 곳이다. 해서 주민들은 날이 궂을 때나 어둑할 때 그곳에서 ‘채알 귀신이 나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주변 마을에서는 한국전쟁 때 피해를 많이 봤지만 해안가 이면서도 이 마을은 한 사람의 피해도 없었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군내버스가 마을 앞까지 들어오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동산(東山) 정상에는 복싱선수 박종팔의 선대(先代)인 무안박씨 묘가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산에는 명당이 많다고 알려져 윤씨, 이씨, 박씨, 김씨, 정씨 등 각 문중의 시제산이기도 하다. 해서 시제를 지낼 시기가 되면 온종일 마을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실지로 명당이라 일컬어지는 곳에는 아무리 추워도 그곳에 있으면 추운 줄 모르고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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