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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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월1리 해제면 오류 작성
  •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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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총 52세대, 인구 74명(남40, 여34) / 2024. 5.기준.
자연마을 구성
유월리는 오류, 용산, 물암, 언창, 월암, 유투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니 《마을유래지》의 자료에도 주민들의 이야기에도 ‘이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마을 동쪽에 수양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무성히 자라고 있어서 다섯 오(五)자와 버드나무 류(柳)자를 따서 오류(五柳)라 했다‘고 한다.
마을형성(입향조)
마을은 전주이씨 집성촌으로 입향조는 전주이씨 이장길(1568 –1638, 호–어은, 漁隱)로 알려졌다. 이장길은 경기도 포천 운담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왜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그 전공으로 통훈대부 행 전의(全義)현감을 지냈다. 조정에서는 그 공을 높이 사 온훈(原勳)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라가 어지러움에 벼슬을 버리고 남하하여 이 마을에 터를 정하고 니성산(尼城山) 아래에 강학소를 지어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고 주변의 선비들과 더불어 경전을 읽고 토론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특히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화친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다 하여 밤낮을 통곡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인동장씨 장덕화가 1830년경 함평에서, 그리고 광산김씨 등이 차례로 입향하여 마을이 더욱 더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마을의 지형이 한발로 찧는 방아형국의 땅이다.
마을성씨
주로 전주이씨가 주류를 이루고, 지금은 타성도 들어와 혼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유월리(柳月里)는 니성산을 주산으로 각 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해제면소재지로부터 현경면 방면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남으로 현경-해제를 잇는 24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본래 유월리는 조선시대에는 함평현에 속했다가 조선조 말에는 목포부 해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이후 1914년 오류동 물암리, 월암리, 어은동을 합하여 무안군 해제면에 편입되었다. 오류와 월암의 이름을 따서 유월리라 불렀으며 지금은 오류, 용산, 물암, 언창, 월암 ,유투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행정구역 변경
문헌으로 살펴본 지명의 변화는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함평현 해제면 무리, 암리, 용산리, 오류동으로 나온다. 1912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해제면 물암리, 유투정리, 월암리로 나오며 1917년의 자료에는 해제면 유월리, 오류동, 물암리, 월암리, 유투정, 어은동 등으로 나온다. 1987년의 자료에는 유월리, 오류, 창등, 용산, 물암, 유투 등으로 나온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과 아랫마을인 월암마을에는 스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월암마을 뒤편에 5개의 반달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현재는 찾을 수 없음) 이곳을 지나던 한 스님이 마을 이름을 ‘월암’이라 부르면 마을에 귀인과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또한 오류 마을의 지형이 세 갈래로 뻗어 있는 것(쇠스랑형국)을 보고 지나가는 스님이 이 마을에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셋이나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주민이 들었다고 한다.
주요시설
마을에 현대영농조합과 미곡처리장이 있다.
마을변화
30여 년 전까지 마을 앞에는 똥섬(논에서 일하다가 뒤가 급하면 들어가서 볼일을 본다는 섬)이라 부르는 섬이 있었으나 지금은 논이 되어 있었고 마을 쪽으로 수로가 있어 그 주위에 많은 버드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유월리의 중심지 였으나 지금은 국도변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여성회)가 조직되어 있다.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양파음료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이 마을에는 니성산(尼城山-169.8ⅿ, 약수터 위 인동 장씨 장영수 묘비에는 이승산(尼僧山)이라 표기되어 있음)이 있다. 이 산에는 일제강점기에 금광이 개설되기도 하였으며 해방 후에도 금을 채취했다. 현재도 굴이 있으며 만풍리 쪽에도 2개의 금광 굴이 있다. 이 일대에는 지금도 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당시 채굴되었던 굴 터에서는 시원한 물이 흘러내려 여름에는 목욕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농사철에는 농업용수로도 쓰이고 있다. 지금은 그 위에 급수탑이 세워져 해제면 일원에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니성산에는 약수터가 있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약수터 위에 절터가 있어 약수터의 물을 떠다가 부처님께 치성을 드렸다고 하나 사찰의 흔적이나 샘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절에 지네가 많이 있어서 폐사가 되었다고까지 알고 있었다. 니성산의 정상에 올라보니 함해만이 눈 아래 보이고 무안반도가 훤히 보인다. 기록상에 나오는 니성산성이 이곳에 있었지 않았는가 생각하며 흔적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주민들의 이야기 중에 우리가 올라가보지 않았던 다른 봉우리에 돌들이 많이 있다고 해서 주변의 조망과 아울러 산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된다.
동/식물
붉은박쥐(황금박쥐) 서식동굴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황토갯벌랜드에서 여름이면 매년 갯벌축제를 한다.
유물, 유적
함평노씨 3대쌍효각이 있다. 노병용-노순숙-노진섭으로 이어지는 삼대부부 효자각이다. 처음엔 1995년에 짓고 나머지는 2004년에 지었다. 길가에 1992년에 세운 전조합장 장연상공덕비도 세워져 있다. 미곡처리장 안에 그곳에 근무를 하다 순직한 김선호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 전주이씨 재각이 있다.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동학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 마을 출신의 배종열(전 전국농민회 의장. 전 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님의 증언에 따르면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이 마을에 살았던 배용보(배종열 조합장의 조부), 주민인 노진섭씨의 할아버지, 그리고 오씨라고 알려진 분이 동학의 봉기 때 깃발을 들고 함평 고막원까지 나갔었다고 한다. 특히 현재는 고인이 되었지만 마을의 훈장으로 계셨던 이병수씨와 이달식씨는 학동들에게 교육할 때마다 동학의 사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은 무안의 동학군이 해제 석용리 연병장에서 출발하여 현경을 거쳐 무안읍을 지나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좋은 증언이다. 농민운동의 대부 배종렬 회장, 이병수, 이달식 훈장, 이병현초대면의원 등이 있다.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윤윤병(1917~1974, 해제면의원)
거처/생가/묘소
전주이씨 납골묘가 재각 옆에 있다.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한국전쟁 당시 집단 학살이 있어 마을의 유지들이 많이 희생을 당했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마을경관사업을 하여 정자가 여러 곳에 있고 함해만과 앞 물바위쪽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마을 이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양파음료를 생산하는 현대영농조합과 미곡처리장이 있다.
주민요구사항
지금 진행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이 마을에는 장사(壯士)가 많이 배출되었다. 해서 面에서나 郡에서 공사를 할 때 오류 마을 사람이 들어오면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큰 장사 작은 장사의 이야기(무안의 전설에서 자세히 소개)가 전해지고 있어 예로부터 이 마을에는 힘이 센 사람들이 많이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기타사항
자연마을명 '오류,월암,어은동'에 대한 이견 ‘오류(五柳)’는 ‘오리’가 ‘외(孤)’의 의미를 상실한 후대에 음이 비슷한 한자음으로 표기하면서 도연명의 생애와 연관 지어 미화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이곳 언중의 발음을 유심히 들어보면 ‘현경면 오류동’을 [오리동]으로, 해제면 유월리 소재의 오류는 [오리촌]으로 발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아래의 경우에서 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다. ㄱ. 오류곡(梧柳谷) [오리실] : 전남 보성군 보성읍 주봉리. ㄴ. 오류동(五柳洞) [오릿골] : 충남 공주시 현곡면 오류리. ㄷ. 오류굴[오이동(梧伊洞)] : 충남 서산군 음암면 신장리. 또한 ‘둥글다’는 의미를 지닌 ‘두리, 도리, 두루’와 ‘두류’의 대응을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도 비슷한 한자음으로 표기하면서 미화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출처

각주
미기재
참고문헌
미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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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11.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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