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은 일로읍의 중심마을로 마을의 지형을 보면 풍수적으로 쇠스랑 형국인 세 개의 골짜기 중 하나이다. 골짜기는 일로읍사무소 뒤 여내기 산을 축으로 갈라지는데 첫 번째 고랑은 일로초등학교로 가는 줄기이고, 두 번째 고랑은 일로제일교회로 가는 고랑이며 세 번째 고랑은 소전원을 포함한 강남산으로 뻗어 있는 고랑이다. 이 마을은 제일교회로 뻗은 골짜기의 마을이다. 또 다른 사람은 그물 형국이라고도 한다. 해서 이 마을에서는 돈을 벌고 명예를 가꿀 수도 있지만 마을을 벗어나면 모든 복들이 넘쳐버리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한다고 한다.
마을성씨
미기재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월암리는 일로읍 소재지가 자리한 곳이며 예전에는 영산강과 호남선을 비롯하여각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황우동, 신흥, 덕산,월암, 회인동, 강남산, 부흥정, 다복동 등 모두 8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거주 주민이 늘어나면서 분구가 시작되어 현재는 황소안, 신흥, 덕산, 월암, 강남산, 부흥동, 다복동, 중앙동, 연소동, 읍동, 취락촌 등 11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행정구역 변경
오늘날의 일로읍 소재지는 일본세력이 진출하기 전에는 매우 한적한 농촌 모습이었다. 1915년 지적원도를 보면 역전 통 부근에서 대지는 3개 지번밖에 없고 일로초등학교 근방에 조그만 마을이 있었을 뿐이다. 일제가 철도역과 소재지를 월암리에 설치하면서 비로소 신흥중심취락으로서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장항포농장과 영화농장의 조성에 이어 동척과 금융조합의 설치, 그리고 1922년 일로보통학교, 1937년 무안농업실습학교가 개교하자 일로면이 실질적으로 무안군 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갖게 되었다. 이어 1946년에 무안중학교 개교 1961년 무안농업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13년 처음 일로역이 개통될 때의 이름은 삼향역이었다. 당시에는 일로보다는 나주의 영내 삼향의 위상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이후 1924년에 일로역으로 개칭한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상가위주로 마을이 형성되어 농사는 면적이 매우 적다.
주요시설
이 마을은 1913년 일로역이 개설되면서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여러 성씨가 함께 하는 복합마을로 뚜렷한 역사나 문화는 없다. 예전에는 일로읍의 중심지로서 대부분의 기관이 이 마을에 있었다. 그러나 1990년도에 5리 강남산 마을과 分里가 되면서 남아있는 기관으로는 일로읍사무소 무안사회복지관 일로소방서 목포교도소 일로제일교회 새마을금고 의원 학원 등 중요기관이 몰려있다
무안사회복지관은 1999년에 개관하였다.
예전 시외버스가 다니던 시절 이 마을에는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처음엔 일로약방 옆에 있었는데 좁아서 일로의원 자리로 옮겼다. 일로역과 터미널이 있는 마을이라서 여인숙도 있었고 술집도 많이 있어 흥청거리기도 했다. 또 터미널 뒤에는 일로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사도 있었으며 제일교회 아래 아트전자 뒤에는극장도 있었다.
마을변화
1980년 12월에 일로면이 일로읍으로 승격되었는데 일로면사무소는 원래 죽산리 당월촌에 있었다. 이후 월암4리인 월암마을의 보해상사 자리로 옮겼다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부녀회와 노인회가 있다. 동계와 복날 행사를 한다.
공동이용시설
미기재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일로초등학교 뒤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주민들이 달바위라고 부르는 입석이다. 지형상으로 봤을 때 상당히 높은 둔덕에 위치하고 있어 개발이 되기 전에는 일로 주변에서 모두 바라보았을 선돌이다. 크기도 길이가 4미터 50에 하단의 너비는 3미터가 될 정도로 크다. 월암리라는 里名이 이 바위에서 비롯되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이 바위는 월출산에서 달이 뜰 때 달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지역이 장항포 들 너머에 있는 삼향면 용포 마을이다. 용포 마을에서는 이 돌이 마치 불끈 솟은 남성으로 보여 마을 여자들이 바람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달이 동쪽에서 뜨면 제일 먼저 그 바위에 달빛이 머무는데 아기를 밴 임산부가 그 달빛을 안으면 총명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다. 해서 똑똑한 아이를 낳으려는 아낙네들은 의도적으로 보름달이 뜨는 때면 몸을 정히 하고 속옷은 입지 않고 겉옷만 입은 채 바위 곁으로 갔다. 이런 사실이 소문이 나자 주변 마을의 청년들이 음심이 생겨 바위 주변에 몰래 숨어 있다가 달맞이하러 온 아낙네들을 괴롭히곤 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이 이런 피해를 막기위하여 달바위 주위에다 대나무를 심기도 하였다고 한다.
골목아래 동네 샘이 있었다. 큰강다리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물치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미기재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목포교도소는 1989년에 목포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 교도소는 수형자와 형이 확정되지 않은 1심 미결수 및 대법 상고수를 수용 관리하고 성폭력사범 집중교육기관 시설로서, 법질서 확립을 통하여 사회 안정을 도모하고 수용자의 성공적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국가 중요시설이다.
일로약뱡 옆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창고자리에 극장이 있어 영화를 상영하였다.
도레미사진관이 남아있다.
마을에 회칙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