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촌’이란 지명은 마을이 백련동에서 분리되며 주민들이 모인 총회에서 의견을 모아 이루어진 이름이다. 마을에 학문과 교육을 하는 기관인 대학교가 들어왔으니 그에 맞는 마을이름으로 정했던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이러한 마을의 뜻과 전통을 잘 살려가면서 마을의 현재와 미래를 가꾸어가면 좋을 듯하다.
마을형성(입향조)
문화촌마을은 도림리에 목포대학교가 들어오면서 인구가 증가하여 백련동마을에서 분가하였다. 1993년에 도림1리를 1, 4리로, 도림3리를 3, 5리로 나누어 분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마을 위치는 목포대학교 사거리에서 복길리 방향으로 가다가 연곡천을 기준으로, 우측으로 연곡마을 좌측으로 백련동과 문화촌으로 나누어진다. 백련동과 문화촌은 ‘푸른솔유치원’ 앞 다리에서 다시 나누어진다. 백련동은 복길간척으로 형성된 간척지지만, 문화촌은 주로 밭으로 활용했던 농경지였다. 여기에서 복길간척지는 삼향면 왕산리 금동마을과 청계면 복길리 복길마을을 잇는 제방으로 1986년에 완공되었다. 따라서 이처럼 비교적 근세기에 들어서면서 지형의 변화와 도시의 형성에 따라서 생겨난 문화촌의 입향조는 따로 구분되지 않는 혼합성씨의 마을이라고 하겠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예전부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도림리는 승달산에서 도를 닦는 12명의 상좌가 보살봉 앞에 칠성단을 만들어 놓고 촛불을 켜고 예불을 올리고 있다’라는 마을의 형국으로 알려졌다. 12상좌는 연곡을 포함하여 도림동, 청림, 양지촌, 백운정, 대흥동, 월암, 격양동, 칠성동, 입석, 유점동, 평버들 등 도림리에 속한 12개 마을이름을 나타낸다. 칠성단은 7개의 고인돌을 가진 칠성동을 말하며, 두 개의 촛불은 승달산의 촛대봉과 보살산 아래 남성동의 장흥고씨 문중산의 촛대봉이다.
마을성씨
혼합성씨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미기재
행정구역 변경
도림리의 분구를 살펴보면 1986년에는 선돌과 연곡 2개의 마을이었으나, 이후 1987년의 자료에는 도림리가 선돌, 연곡, 백련동 등 3개 마을로 나눠진다. 다시 2000년에 도림1리를 1. 6리로 분리하고 2011년에는 2리를 2, 7리로 분리했다. 현재는 청림, 연곡, 백련동, 월암, 문화촌, 입석, 격양동 등 7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문화촌마을은 주로 복길간척지로 생긴 논농사를 주로 짓고, 밭은 별로 없어서 간단한 양념이 되는 밭작물의 농사를 한다. 주민들은 거의 상업활동과 함께 직장생할을 한다.
주요시설
연안관리기술연구소, 둥지어린이집, 푸른솔어린이집 외
마을변화
백련동과 문화촌으로 분리되면서 당시 문화촌 터에는 12가구의 취락개선 주택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이어서 여러 아파트와 빌라, 원룸 등이 건설되고 청계제일교회에서 분가한 중앙교회와 원불교 등이 들어섰다. 이에 4차선의 중앙도로가 개설되고 도로 양쪽으로 식당을 비롯한 각종 상권이 형성되면서 소도시형 마을로서의 모습을 갖추어나갔다. 하지만 농업, 상업은 물론 아파트에 거주하는 상이 된 주민들 간의 교류는 약한 편이고 실제로 정주하는 유입 인구 역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최근 마을회관의 건립으로 이어진 도로가 회관 앞으로 신설되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동계를 비롯하여 부녀회와 노인회가 운영되고 있다.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청계중앙교회, 원불교당,. 빈들에 세운 교회 등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마을에는 원래 ‘딴산’이라고 부르는 석산(石山)이 있었다. 목포대 정문 앞 사거리에 있었던 돌로 이루어진 산으로 승달산과 떨어져 있다 해서 ‘딴산’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도로를 신설하고 또한 거주지와 토지 등을 만들면서 이 산의 돌을 활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우람했던 석산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평지로 변해있다.
동/식물
중앙도로 옆 주택가에 오래되어 꽃을 피운 엄나무가 있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놋정골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미기재
설화
앞의 ‘딴산’이라고 불린 석산과 관련한 ‘도림(道林)’이라는 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풍수에 능한 사람이, 이 마을에서 승달산을 바라보고 노스님 셋이 경을 읽고 있는 노승예불형(老僧禮佛形)의 길지(吉地)를 보았다. 둘러보니 인근의 남성리 소살봉은 보살산이고, 예전 목포대 앞에 있었던 석산 곧 ‘딴산’이 칠성산의 형국이었다. 그리하여 ‘보살봉의 보살할멈이 격앙동에서 밥을 지어 칠성산에 받쳐 놓으면 승달산의 스님이 공양한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왔다. 또한, 승달산의 12봉우리가 12제자가 되어 스님에게 인사를 하는 형국이어서, 때가 되면 선비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도림’이라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