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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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림 7길 청계면 격양동마을 작성
  • 격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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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정보

기본현황

세대, 인구수
마을의 세대수는 87세대이며, 총인구는 203명(남100, 여 103)이다.
자연마을 구성
주민들이 소살봉이라고 부르는 보살산 기슭에 있는 도림7리 격양동은 ‘삼거리마을’과 ‘격양동’으로 이루어졌다. 삼거리는 상마삼거리를 말하며 현재 주유소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지명유래
원래 조선시대부터 격양동(擊壤洞)이라고 불렀던 마을의 지명 유래는 용개천을 따라 바닷물이 시시때때로 범람하는 간석지였던 마을의 지형으로 인해 ‘재앙동’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렇듯이 민물 또한 부족하여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며, 실제로 당시에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만 살았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살면서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홀로 되기도 하고 일찍 죽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적을 쳐서 물리치는 격양(擊壤)’ 마을이 되었을 터이다. 이러한 ‘재앙동’에 더하여 ‘대양동’이라고 불렸던 마을 이름 역시 바다와 관련되었던 지명이라고 여겨진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의 입향조는 여산송씨 송태섭(약국 운영) 선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래 약 100여 년 전부터 송씨가문 5~6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던 마을이었다. 이후 40여 년 전에 목포대학교가 들어오며 여러 계층의 사람이 들어오면서 복합성씨의 마을이 되었다. 이어서 코아빌라를 선두로 백두그린빌, 별장아트 등이 들어오고, 운전학원이 문을 열면서 유동인구를 포함하여 많은 세대가 유입되었다. 물론 이 마을을 비롯하여 도림 1리와 4리 등은 원래 정유재란 때 의병장 송박(宋珀, 미상∼1592), 송욱(宋頊)) 형제가 나라에서 받은 여산송씨의 사패지(賜牌地)였다.
풍수지리(마을형국)
예전부터 전해오기로 ‘도림리는 승달산에서 도를 닦는 12명의 상좌가 보살봉 앞에 칠성단을 만들어 촛불을 켜서 예불을 올리고 있다.’라는 형국으로 알려졌다. 12상좌는 연곡마을을 포함하여 도림동, 청림, 양지촌, 백운정, 대흥동, 월암, 격양동, 칠성동, 입석, 유점동, 평버들 등 도림리에 속한 12개 마을 이름을 나타낸다. 칠성단은 7개의 고인돌을 갖고 있는 칠성동을 말하며, 두 개의 촛불은 승달산의 촛대봉과 보살산 아래 남성동의 장흥고씨 문중산인 촛대봉을 말한다.
마을성씨
미기재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격양동이다. 조선시대 표기는 擊壤洞(격양동)으로 했다가, 일제강점기부터는 格良洞(격양동)으로 표기되었다.
행정구역 변경
1986년에 선돌과 연곡 2개 마을이었던 도림리는 1987년 3개 마을, 1993년과 2000년에 여러 마을로 분구되었다가, 2011년에는 도림 2리를 2리와 7리로 분리하면서 ‘도림 7리’가 되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보살봉을 뒤로 하고 마을이 형성된 격양동은 아침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는 지형이다. 앞으로는 매봉산을 마주 보며 국도 1호선 도로와 인접해있다. 따라서 약 40여 년 전부터 유입 인구가 많아지면서 빌라 등 각종 공동주택이 들어서고 도림 7리로 단독마을이 되면서 마을이 발전하였다. 현재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은 직장인이며 농사를 짓는 가구는 극소수이다. 편리한 교통과 각종 편의시설 등이 밀집하여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며 주민 간에 서로 화합하며 잘 지내고 있다.
주요시설
미기재
마을변화
여기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이 목포나 무안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미기재
공동이용시설
미기재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격양동은 보살산(주민들은 소살봉 소설봉이라고도 한다) 기슭에 있는 마을 앞으로 용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국도 1호선이 도림 5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 삼거리로는 3년 전에 개통한 ‘청계-무안국제공항간 도로’가 지나고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봉화 및 기우제를 지냈던 보살봉, 매봉
설화
미기재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미기재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6.25한국전쟁 때는 보살봉과 매봉 그리고 승달산에서 봉화가 올랐다고 한다. 좌익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연락을 취하는 수단이었지만 도림리는 다른 지역보다 좌익 활동이 활발하였으며, 특히 좌익 활동에 연루되어 처형당한 사람도 많았는데 현재의 운전학원 골짜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보살봉 중턱 : 청계초/중학교 소풍 장소였다.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미기재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미기재
기타사항
미기재

본문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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