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정 마을은 청계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쯤 가면 나오는 마을로, 행정구역명으로는 청계면 상마2리 하마정인데 흔히 용마마을로도 불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 마을은 잔등을 사이에 두고 하마전과 용계마을로 나뉘어져 있는데, 주민들이 용계의 ‘용’자와 하마전의 ‘마’를 따서 용마마을로 고쳐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명유래
하마정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관리인 송감사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하마정 마을 입구에 해당하는 죽림 지역에 송감사라는 관리가 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솔대가 서 있었고 그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 마을을 지나갔다가 상마정이란 곳에서 말을 다시 타고 지나갔다’고 한다. 즉, 말에서 내려 걸어간다고 해서 ‘하마정(下馬亭)’ 그리고 다시 말을 타고 간다고 해서 ‘상마정(上馬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에는 ‘상마전(上마田)’과 ‘하마전(下마田)’으로 나온다. 또한 198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상마리를 마전 위쪽이 되므로 웃마전, 상마전 또는 상마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드는 다른 생각으로 현재의 지명이 주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말(馬)과 관련된 지명이 아니고, 원래 마전(麻田) 곧 삼밭이 있어서 윗마을은 상마전, 아랫마을은 하마전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 때 바뀌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라고 하겠으나, 추후 규명된 내용은 아직 없다.
그러함에도 주민들이 알고 있는 송감사에 대한 개연성이 실제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송감사가 살았다는 죽림지역에서는 지금도 밭을 갈 때면 쟁기 날을 버릴 정도로 많은 쪽기와 곧 구운기와의 조각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나 송감사가 이곳에 살았다는 실제 자료나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또한 불당골로 불리는 곳에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송감사의 묘라는 큰 봉분이 있었는데, 그 묘 앞에 서 있었던 석인(石人) 두 기를 예비군훈련 때 예비군들에 의해서 현재 청계 중학교에 옮겨져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살았던 여산송씨의 족보에서 송감사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보았으나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마 다른 계열의 송씨가 살았지 않았는가를 추정할 뿐이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의 입향조는 확인되지 않는데, 구전에 의하면 여산송씨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하나 이 역시 기록이나 흔적이 전혀 없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이와 관련된 송씨들도 살고 있지 않다. 지금은 한양조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조상은 기묘사화의 화를 피해 숨어 들어와 살아온 사람들이다. 즉 조선 중종 때 조광조로 인한 기묘사화의 변을 당한 한양조씨 중 일부가 감방산의 줄기인 무안읍 매곡리 도산 주변의 돗재에서 숨어 살다가 살길을 찾아 신안군 압해면 가란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곳에서 일가를 이루어 살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160여 년 전에 이 마을로 조귀철(자-행직, 호-승곡. 1863~?)이 처음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송씨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는 ‘마을 형성 시 용(龍)의 형국을 한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물이 풍부한 곳이라 하여 하마전, 두동리 마을과 함께 ‘용계(龍溪)’라 했다‘고 하니, 뻗어 내린 산의 형세가 용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물이 좋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주민들은 ‘소쿠리형’이라는 풍수로 알고 있으며, 이는 마을의 산세가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 등이 모여서 잘 산다는 의미를 지닌 '소쿠리형' 또는 ‘삼태기형’의 명형국지(名形局地)의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성씨
여산송씨, 강씨, 한양조씨, 무안박씨, 풍천임씨, 강씨 등이 어울려 살아가는 복합성씨의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1789년의 문헌인 《호구총수》에는 지금의 한자와 다른 하마전(下마田)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에 하마(下馬)리로 나오다가 1987년에는 지금처럼 하마정(下馬亭)으로 표기하고 있다.
행정구역 변경
본래는 백제시대 이래 무안 일서방 지역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일서면 하마전리로 1910년에 잠시 목포부 일서면에 편입되었다가,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무안군 청계면으로 개칭하여, 1987년의 자료에 청계면 상마리 하마정으로 표기되어 소속되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마을의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비롯하여 양파, 마늘 등 무안의 특산물을 재배하며 살아온 전통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살기 좋은 마을환경 탓인지 얼마 전까지 이 마을에는 우리 지역에서 최고령자가 살고 있었다. 당시 103세의 강순애 할머니로 그때까지도 기력이 정정하고 총기가 있었다고 한다.
주요시설
에덴원, 무안군요양원.
마을변화
기후 위기, 인구소멸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여타 시골마을과 달리 평온한 마을 분위기와 주민들의 생활에 굴곡이 없는 마을이 자랑이라고 한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동계, 노인회, 부녀회
공동이용시설
마을회관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용계마을의 왼쪽에 있는 불당산을 흔히 ‘붓단산’으로 부르며, 또한 앞산에는 ‘한새꼬빼기’라는 지명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그리고 ‘한새’는 황새를 가리키는 말로 앞산의 지형이 황새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산의 입구가 황새의 코에 해당하는 곳이며, 따로 ‘매장등’이라고도 한다. 현재 에덴원이 있는 자리를 이유는 모르지만 ‘도독골’이라고 부르며, 이외에 ‘밤작골’이 있으며 하마정 마을 뒤를 ‘서그태’라고 한다.
또한, 마을 아래쪽 너머에는 소살봉이 있다. 현재는 보살봉으로 부르고 있지만 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봉우리가 솟아올랐다 해서 소살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 뒤에는 달바위가 있으며 마을 앞에는 ‘땅 솟은 산’이라는 지명이 있다. 에덴원 쪽에 ‘도골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동/식물
마을 앞에 팽나무가 있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미기재
민속환경
축제/제전/의례
미기재
유물, 유적
이 마을에는 학계에서 확인되지 않은 선사시대를 비롯한 고대의 고분들이 주민들에 의해서 발견되거나 도굴꾼들에 의해서 파헤쳐진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40여 년 전에 용계마을의 왼쪽에 있는 서당골에서는 전문 도굴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의하여 수십 점의 백자와 수저, 젓가락, 그릇 등이 발굴되어 무단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 전인 50여 년 전에도 이 마을 주민에 의해서 분무골 또는 분모골이라고 부르는 마을 뒷산 정상에서 옹관묘가 발견되었다. 커다란 옹관을 중심으로 작은 옹관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는데, 현재도 발굴해보면 많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이뿐만 아니라 학두봉 또는 깃대봉이라고 하는 산의 정상에선 석곽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이미 발굴된 흔적이 있었다. 또한 주변에는 토기(土器)로 보이는 상당수의 그릇이 발견되었었으나 현재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설화
마을의 주민들은 송감사 가문이 멸문한 이유를 전설로 간직하며 구전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피곤하고 배고픔에 지친 중(僧)이 송감사 집으로 시주를 하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집에서는 불쌍하고 짠하다 해서 정성으로 시주해주었는데, 송감사 집에서만 어떤 이유에선지 중을 기둥에 묶어놓고 벌을 주었다. 그래서 중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송감사에게 제안하였다. 나를 풀어주면 이 집안이 대대로 부귀하고 장수할 수 있는 명당을 잡아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중이 잡아 준 명당이라고 하는 곳은 생선의 지형을 가지고 있는 땅이었다. 그곳에 조상을 옮겨 모신 송감사 댁은 한동안 잘 나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그 지형이 반토막이 나면서 송감사 가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민들은 송감사가 중을 못살게 굴어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기록물, 문헌
미기재
인물
장인/명장/기능보유자/예술인
미기재
유명인/역사인물/고위공직자
1950년대 이후 각종 선거 때마다 불법 선거운동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홍역을 치른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선 지금까지 사전 선거 운동이나 부정 선거 운동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마을의 규모는 작지만 집집마다 공무원들이 있어 부정 선거 운동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마을은 공무원들이 많이 배출된 지역이기도 하다. 그처럼 마을에서 배출된 주요 인물로는 임갑재(용산소방서장), 강대연(전 전라남도 보건과장), 박석진(무안군 기획예산실장), 조윤석(보성 등기소장) 등이다.
거처/생가/묘소
미기재
특이사항 및 추가내용
주요사건사고
미기재
마을자랑거리(경승지, 공원, 경관, 풍경)
미기재
주변개발사업, 기업체
미기재
주민요구사항
마을길이 너무 좁은 골목길이어서 길을 넓히는 공사를 했으면 한다.
넓은 지역, 타지역이야기
청계에서 하마정으로 들어오는 곳에 배다리가 있고 그 아래에 ‘가매배다리’라는 지명이 있다. 예전에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는데 청계 쪽으로 나가려면 건네야 하는 다리로, 함평 고막천의 다리처럼 커다란 돌로 정교하게 쌓았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가매배다리에는 슬픈 전설이 어려 있다. 옛날에 신혼의 단꿈을 안고 가마를 타고 가던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개울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