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한 천장리(泉壯里)는 서쪽으로 금산간척지와 2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장동, 보천, 돌기, 백동 등 4개의 행정마을로 이루어진 천장리는 보천과 장동에서 이름을 땄다.
천장4리에 속하는 돌기(乭起)마을은 천장리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좌측으로 금산간천지가 우측으로 태원간척지가 펼쳐진 그 사이의 능선에 있다. 1990년에 장동과 보천동 일부를 포함해서 돌기란 이름으로 새로 만들어졌으며 돌기, 천장삼거리, 드개가 모여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지명유래
마을이름인 돌기(乭起)는 지형에서 비롯된 지명이으로, 마을이 바다를 향해서 뾰쪽하게 나왔는데 바닷물이 마을을 감싸며 지나간다고 해서 돌기라 했다. 《마을유래지》에는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드나들어 돌계라고 했는데, 그 후 돌귀(乭歸)라 부르다가 현재는 돌기라 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처럼 마을까지 들어왔던 바닷물은 지금은 금산간척지로 인하여 막혀있다.
마을형성(입향조)
이 마을에 최초로 들어온 사람은 《마을유래지》에 의하면 ‘1860년경 김해김씨가 입향하였다가 타 지역으로 이주해가고 그 후 진주강씨와 담양전씨가 입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풍수지리(마을형국)
미기재
마을성씨
복합성씨 마을이다.
마을변천
마을 명칭 변경
마을 명칭은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마을지형을 따라 원래 ‘돌계’라고 했다가 ‘돌귀(乭歸)’로 바뀌었으나, 이후 돌기(乭起)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행정구역 변경
원래 영광군 진하산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무안군에 편입되어 해제면 관할이 되었다. 1990년에 이루러 장동과 보천동 일부를 포함해서 돌기란 이름으로 새로 생긴 신생마을로 무안군 해제면 천장4리에 속한 행정마을이 되었다.
마을 성격(주업/주민의 삶)
이 마을은 해제 남부지역의 중심지로, 1941년 천장국민학교로 개교한 해제남초등학교가 있고, 향우인 강평원 씨가 지어준 <남부노인정>과 <천장보건진료소>가 있다. 예전에 천장삼거리는 해제 남부지역의 번화가로 상가가 많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다고 한다. 양월, 창매, 창산으로 가는 출발점이면서 초등학교 등 중요한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해제 남부지역 13개 마을이 참여하는 콩쿨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여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쌈거리’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주요시설
마을은 좌, 우측으로 금산간척지와 태원간척지가 인접해있다. 이는 원래 길고 큰 만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지형상 대단위 간척의 역사가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금산간척지는 원래 1950년 무렵에 일로의 나판수씨가 용학리와 죽도와 천장리를 연결하는 매립공사를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후 1965년에 제주 출신 재일동포인 김문평(금산전자 사장) 씨가 다시 시작하여 1982년에 완공하였다. 이로써 850ha의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를 개인별로 분양하였다.
또한, 태원간척지는 지도읍의 자동리와 해제면의 양월리를 막아서 형성한 농지이다. 1950년대부터 시작한 연륙공사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1974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87년에야 완공되는 난공사였다. 이를 통해 확보된 1,600여ha(330만평)의 농지 중에서 876만㎡(265만평)의 농지로 이루어진 태원농장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현재 농지임대료 분쟁으로 해제지역 주민에게는 경작 임대를 주지 않는 등 농장주와 주민들 간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마을변화
다른 마을과 달리 노인들이 적고 일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 신생마을인데다 간척지로 인한 농경지가 많다 보니 보다 나은 삶을 찾아서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청년동아리를 구성하여 마을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활용한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 노인회를 비롯하여 부녀회, 청년회 등의 모임에서는 마을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생활환경
마을조직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
공동이용시설
돌기마을회관. 천장보건진료소. 해제남초등학교.
전통식품/특산품
미기재
자연환경
생태환경(무생물,산‧강‧들)
간척되기 전에 마을 아래 성포를 거쳐 해제면 소재지까지 금빛 모래가 펼쳐져 있는 백사장이었던 이 마을에는 수산자원이 무척 많았다. 대규모 간척 공사가 완공되고 나서는 식량의 보고로 기능하였음은 물론 유리를 만드는 성분이 다량으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마을 우측 농경지에는 질 좋은 점토가 대량으로 묻혀 있어 개발을 기대하고 있다.
동/식물
미기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들
남아있는 지명으로 ‘안부원’과 ‘동산’이 있다. ‘안부원’은 마을 남쪽에 있는 제방으로 기러기가 이 원안의 갯벌을 먹으면 물에 떠 죽는다고 한국지명총람에는 기록되어 있다. ‘동산’은 마을 앞에 있는 산을 일컫는다.